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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24. 2022

<한산: 용의 출현> 리뷰

파도가 닿지 못한 하늘


<한산: 용의 출현>

★★★☆


 2014년 <명량> 이후 8년만에 돌아온 김한민 감독의 신작, <한산: 용의 출현>입니다. 무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영화의 속편이라 프로젝트 단계에서부터 큰 주목을 받았죠. 특이하게도 1편은 CJ 엔터테인먼트와 제작했으나, 이번 2편은 3편 <노량>과 함께 롯데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습니다. 개봉은 오는 7월 27일로 잡혀 있네요.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입니다. 단숨에 점령에 성공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키죠.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패배와 선조의 파천에도 불구하고 출정을 준비하고, 연승에 힘입어 한산도 앞바다까지 손아귀를 뻗친 왜군과 맞설 필사의 전략을 준비합니다.


 <명량>이 나온지는 8년이 지났지만 <명량> 3년 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보통은 속편에 속편을 거듭하다가 또 다른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나오는 것이 프리퀄인데, 2편부터 바로 이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흔치는 않죠. 특히 일반적인 각본이라면 특정한 캐릭터나 사건이 빚어내는 가상의 과거를 파헤치지만, 이 쪽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다루는지라 더욱 특이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편 제작비인 150억 원도 큰 금액이었지만, 이번엔 그 두 배에 가까운 280억 원을 들였습니다. 이미 촬영을 마친 3편 <노량>은 그보다도 많은 제작비를 들였으니, 롯데 엔터테인먼트에겐 <신과 함께> 시리즈 이후 손에 꼽거나 어쩌면 그 이상을 바라본 프로젝트겠지요. 그에 맞추어 일반적인 시사나 경품 이벤트는 물론 거북선을 모델 삼은 NFT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 등 실험적인 시도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리즈라고 하니 시리즈라고 부르지만 연결성이 딱히 짙지는 않습니다. 프리퀄이라고 해서 배우가 겹치는 것도 아니고, <명량> 3부작만의 고유한 거북선 디자인이 있는 것도 아니죠. 애초에 동일한 사건 혹은 동일한 인물들을 그리는 역사물들은 너무나 많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이순신,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이억기, 임준영, 준사 등 전편과 같은 인물들의 담당 배우는 모두 바뀌었습니다.


 이순신 대 구루지마였던 전편이 이순신 대 와키자카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의외로 영화의 톤과 방향성이 꽤 다릅니다. <명량>은 장군, 장부, 아버지 등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여러 측면에 집중했다면, 이번 <한산>은 이순신으로부터 한 발 떨어집니다. 이순신의 눈이 아니라 이순신을 바라보는 눈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자연히 인물보다는 사건에 집중하기 좋은 구조고, '한산'이라는 제목에도 충실해집니다.



 전편이 그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그 공식을 과감히 벗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결단입니다. <명량>은 흥행 성적에 비하면 평단의 평가가 썩 좋지는 못했는데, 그를 받아들여 더 나은 지점을 고민했다는 뜻이니까요. 배우가 바뀌었더라도 똑같이 이순신이라는 불멸의 소재를 갖고 있는 상황은 똑같기에, 전투만 바꾸어 다시금 그 날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열망도 분명 굴뚝같았을 겁니다.


 누군가의 위대함을 묘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직관적으로 당사자의 업적과 위용을 치켜세우는 방식입니다. <명량>이 선택했던 길이기도 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준과 어긋나면 실패할 확률도 높습니다. 설명하는 쪽만 혼자 신난 것처럼 보이거나, 이미 알아들었는데도 멈추지 않으면 질리기도 쉽습니다.



 이번 <한산>은 좀 더 영리하고 새로운 접근을 택했습니다. 명색이 이순신 영화인데 박해일 배우가 맡은 이순신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각본만 보면 주인공은 변요한 배우의 와키자카에 가깝습니다. 이 촉망받는 장수는 조선 정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순신 따위 지금 당장 들이쳐서 끝장을 보자고 하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습니다. 신중하고 계획적이며 과감합니다.


 그럼에도 이순신이라는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합니다. 와키자카는 모든 것을 대비하면서도 결단이 필요한 순간엔 주저하지 않았지만, 올려다본 하늘엔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순신은 늘상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앞을 지그시 응시하거나 침묵을 지킵니다. 주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집중합니다. 움직일 때를, 입을 열 때를, 앞으로 나갈 때를 기다립니다.



 적당한 때를 기다려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작전은 영화의 안과 밖을 관통합니다. 주인공 일행이 위기에 처한 순간 구세주가 등장하는 연출만큼 진부한 것이 없지만, 그 연출이 진부하다고 불릴 만큼 많이 사용된 이유 또한 잊지 않습니다. 구세주가 나타나는 박자만 살짝 변주해도, 나타나는 구세주의 위용만 다듬어도 내면의 함성을 유도하기엔 충분합니다.


 굳이 이순신이 학익진과 거북선을 양쪽 어깨에 끼고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바다를 호령하지 않아도, 이 그림을 바라보는 누구든 그의 바닥 모를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을 설정한 뒤 그를 한없이 아둔하고 야만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대신, 오히려 최대한의 잠재력까지 발휘했음에도 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보는 이를 탄복시키죠.



 여기에 해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를 더합니다. 쏟아지는 함포를 슬로모션으로 계속해서 담아내며 시간을 채우는 대신, 전술과 전략이 충돌하며 보는 맛의 단계를 끌어올립니다. 원거리에서 바다 위 대형을 쭈욱 훑은 뒤 근거리로 화면을 한 번에 당겨 현장감과 박진감을 키우죠. 보통 평원에서 군대와 군대가 달려와 서로 맞부닥치는 전율을 바다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한편 이순신과 맞서는 와키자카, 그리고 해전을 제외하고도 남은 것이 많기는 합니다. 출연진만 해도 박해일과 변요한 외에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공명, 박지환, 조재윤, 김민재, 윤제문, 이준혁, 박재민 등 줄줄이 이어지는데,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인원이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씩은 번갈아 받아야 하기에 기승전결 각 부분에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구간이 한 번씩은 존재하죠.



 러닝타임 129분은 여름 대작치고는 살짝 짧은 편입니다. 이 시간은 두 주인공의 대립만으로도 충분함에도 둘과 전혀 무관한 장면이 오로지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명량> 후반부 웬 인물이 갑자기 자신들이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후손들이 알아주려나 묻자 모르면 호로자식이라고 대답하는, 가르침과 잔소리 사이의 어딘가에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장면의 연장선이죠.


 그 때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음에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 순간들이 아직은 남아있습니다. 후반부 등장하는 이준혁의 의병장 황박은 대사 면에서나 상황 연출 면에서나 그 남은 욕심 혹은 의지가 뭉쳐 만든 결과가 되겠구요. 박훈의 이운룡이나 윤진영의 송희립 등 있던 비중이 없어진 듯 들쑥날쑥한 인물들도 더러 있는데, 이순신과의 시너지를 생각해서라도 이 쪽에 약간의 힘을 더 실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시간은 한 발짝 당겨졌으나 영화는 한 발짝 나아갔습니다. 영점 조정은 확실히 성공했는데, 실패를 딛고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성공에 안주하지 않은 발전이라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거북선, 학익진, 그리고 이순신에 이르기까지 보여주고 싶어서 턱끝까지 차올랐던 말들을 더듬지 않고 차분히 꺼내놓았습니다. 부디 이 출정의 기세를 감히 2천만을 바라보지 않을까 싶은 <노량>에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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