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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05. 2022

<토르: 러브 앤 썬더> 리뷰

마른 하늘에 날벼락만


<토르: 러브 앤 썬더>

(Thor: Love and Thunder)

★★☆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 <윈터 솔져>가 있었다면, 토르 시리즈엔 <라그나로크>가 있었습니다. 솔로 영화와 어벤져스 시리즈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올려 가던 영웅들이 자신과 맞는 감독까지 발견해 드디어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영화죠. 덕분에 시리즈 최고작으로 어렵지 않게 꼽히는 <라그나로크> 이후 타이카 와이티티가 그대로 돌아왔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러브 앤 썬더>입니다.



 어벤져스 사건 이후 이너 피스를 위해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 천둥의 신 토르. 그러나 전설 속 무기 네크로소드의 힘을 얻어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도살자 고르의 등장으로 토르의 안식년 계획은 산산조각나고 말죠.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팀을 꾸리던 토르 앞에 옛 연인 제인이 묠니르를 들고 나타나고, 그렇게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우주적 스케일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여느 수퍼히어로 영화의, 여느 마블 솔로 영화의 전개를 그대로 따릅니다. 우리 주인공의 이야기는 세계관을 관통하고, 새로 등장한 악당의 이야기는 해당 영화에만 존재합니다. 토르, 발키리, 제인 등의 구면들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으니 새로 등장하는 악당 쪽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면서 시작해야 합니다. 때문에 영화를 여는 얼굴은 크리스 헴스워스가 아니라 크리스찬 베일입니다.



 매력적인 악당의 부재는 마블 유니버스의 초창기부터 지적되었던 문제였지만, 개중에서도 토르 시리즈에서는 그 문제가 더욱 컸습니다. 2편 <다크 월드>에서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이 맡았던 말레키스는 유니버스 전체의 단점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는 예시였죠. 심지어 당시만 해도 세계관의 크기 자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을 때였으니, 정말 문제는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같은 문제라도 뿌리가 조금 다릅니다. 주인공은 거의 10여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뿌리내린 캐릭터지만, 그와 맞서는 동일한 무게감의 캐릭터를 단 한 편의 영화에 완전히 새로 창조해 담아내야 합니다. 악당이 된 사연을 비롯한 서사는 물론, 이전까지 꽤 강력하고 또 많은 악당들을 상대해 온 주인공의 전적까지 고려해 능력을 설정해야 하겠죠.



 특히 이제 토르는 어벤져스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합니다. 묠니르 대신 들게 된 스톰브레이커는 애시당초 타노스 결전 병기라며 우주 대장간에서 찍어낸 무기였고, <라그나로크>에서는 무기 없이도 죽음의 여신과 맞설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되었었구요. 전체 세계관에서 튀지 않는 힘의 소유자가 그런 토르를 자신의 힘으로 제압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과정이 딱 봐도 쉽지는 않죠.


 바로 그 역에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어쩌면 영원한 배트맨으로 남아 있을 크리스찬 베일이 투입되었습니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던 크리스찬 베일은 대단한 연기력으로 고르라는 캐릭터를 소화합니다. 신에게 버림받아 신 도살자가 되다니, 등 돌린 팬의 무서움(...)과 흑백 비주얼의 강렬함은 역시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충분하죠.



 그러나 그는 크리스찬 베일의 고르라는 하나의 요소만 보았을 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전편 <라그나로크>에서 전 세계 팬들을 상대로 은근슬쩍 떠 본 락스타 바이킹(?) 컨셉이 제대로 먹혀들어갔음을 확인했죠.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은 사실상 토르를 상징하는 음악이 되었고, 토르의 번개를 동력으로 삼은 듯한 일렉기타 소리는 토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몇 장면은 대본 한 쪽도 없이 그냥 찍고 내보냈다는 말까지 떠돌 정도로 A급과 B급을 오가는 <라그나로크>의 연출은 시리즈의 새 정체성이 되는 듯했습니다. 이번 <러브 앤 썬더> 또한 어딘지 모르게 쌈마이하고 레트로한 부제와 포스터, 총천연색 예고편 등으로 그의 새로운 연장선을 기대하게 했죠. 나탈리 포트만, 크리스찬 베일, 러셀 크로우,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은 금상첨화였습니다.



 그런데 잔뜩 기대에 찬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데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초장부터 웃기려고는 하는데 웃기지가 않습니다. 웃기지 않으면 최소한 다르게 웃기려고 해야 하는데 꿋꿋하게 한 우물만 팝니다. 묠니르-스톰브레이커-제우스의 번개를 오가는 무기 개그나 염소 울음소리 개그 등 한두 번이면 족한 그림을 본인이 재밌다고 웃을 때까지 계속 보여주는 모양새죠.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의 연결고리는 힘이 없습니다. 토르가 된 제인, 시장이 된 발키리, 뉴 아스가르드, 옴니포턴스 시티, 하다못해 코르그의 사랑까지 봐야 하니 갈 길이 너무 바쁘죠. 제아무리 마법과 초능력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세계관이라지만 그냥 설정이 그렇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니,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묠니르를 들었던 순간의 무게감이 한순간에 무색합니다.



 이렇게 한사코 가벼운 가운데 고르 혼자서 온갖 무게 다 잡고 온 우주의 신들을 죽이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이질감도 작지 않습니다. 이제까지는 신들의 몸에 칼을 직접 찔러 죽이던 잔인무도한 악당이 갑자기 동네 아이들을 납치해 구연동화나 들려주고 있으니, 순전히 크리스찬 베일이 본인의 힘으로 캐릭터를 틀어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액션씬이 소위 말해서 골때린다고 생각해서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최후반부 하이라이트는 정말 다른 의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고르가 나오는 부분과 고르가 나오지 않는 부분의 양 극단은 고르와 토르가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하게 공존했는데, 그 둘이 본격적으로 대면하는 순간 애초에 없었던 일관성이 한순간에 무너지죠.


 그 무너진 만남의 끝은 (아주 박하게 말하자면) 거의 영화의 유일한 장점인 고르마저도 기어이 전형적이고 가벼운 캐릭터의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전 우주를 다 돌고 온갖 살육과 희생까지 무릅쓰며 인피니티 스톤 여섯 개를 모은 타노스의 고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조한 소원 설정의 끝이기도 한 터라, 영화의 부제 '러브 앤 썬더'까지도 실없는 농담거리로 써먹는 것처럼 보이는 터라 그 여파는 더욱 큽니다.



 전편의 성공 요인 분석에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가 되는 부분에 곁들여져 시너지를 내야 하는 부가적인 재미의 주객이 전도되었죠. 묠니르부터 토르의 근육까지 토르 시리즈 하면 나와야 하는 모든 것이 나오지만, 한두 장면씩 들어가 감초 역할을 해야 하는 요소들만으로 차려내니 영화의 끝까지 허전합니다. 나온 것은 많으니 본 것도 많은데, 막상 남는 것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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