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더 신난 팬서비스
니콜라스 케이지가 니콜라스 케이지로 나섰습니다. 종종 20세기 톱스타들이 온갖 B급 C급 영화들을 전전하다가도 갑자기 왕년의 존재감을 단 한 번에 회복하는 영화로 아직 죽지 않았음을 어필하는 경우가 있죠. 작년 <피그>로 평론가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니콜라스 케이지도 그랬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복귀를 즐기듯 내놓은 영화가 바로 이번 <미친 능력>이죠.
왕년의 슈퍼스타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빚쟁이 신세로 전락한 니콜라스 케이지. 그런 그에게 생일 파티 참석을 조건으로 기꺼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슈퍼 팬 하비가 등장합니다. 자존심에 갈등하던 니콜라스 케이지는 결국 파티로 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FBI로부터 하비가 악명높은 수배자임을 알게 되죠. 그렇게 여차저차 가족의 위기까지 맞이한 그의 예기치 못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국내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본토에서의 니콜라스 케이지에겐 밈이 된 이미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페이스 오프>에서 거의 정점을 찍었던 광기 어리고 과장된 연기로 수많은 농담의 소재와 짤을 양산했죠. 진중한 연기로 가벼운 이미지를 얻은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미친 능력>은 그를 전면에 내세운, 소위 말해 니콜라스 케이지 본인도 즐기는 자 모드가 된 영화입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말 그대로 정신나간 연기를 무기 삼아 질주하는 영화죠. 한물 간 스타가 되었지만 언제든 자신의 과거를 재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렇게 연기하라고 누가 말만 하면 다시 튀어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인공으로 두고 있습니다.
각본은 소소하고 깜찍한 편입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니콜라스 케이지로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니콜라스 케이지를 연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입니다. '왕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한 물 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만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여기는 엄청난 팬들이 세계 도처에 숨어 있는 스타'라는 설정에 이름표 하나를 붙인 것에 불과하죠. 결국 팬심 혹은 밈 지식과 재미가 비례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를 덜어내는 순간 딱히 새로이 즐길 만한 것이 많지 않기도 합니다. 특유의 과장된 연기를 이 때다 싶어 남발하긴 하는데, 니콜라스 케이지가 언제 이랬었나 싶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죠. 국내 관객들에겐 아무래도 후자의 반응이 나오기가 더 쉽겠구요. 그렇다고 동급 주연으로 나오는 페드로 파스칼의 인지도는 더욱 기대할 수도 없구요.
한편으로는 오히려 대놓고 과장된 연기를 하니 오히려 기대한 맛(?)이 덜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장된 연기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연기에 취해 도대체 감독이 어떻게 안 웃고 컷 사인을 냈나 싶은 그 오묘한 경계선에 있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연기가 나오는 바로 그 이질감이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라고 판을 깔아 주니 재미는 있지만 그 힘의 원천인 이질감은 없습니다. 기대한 곳에서 기대한 것이 나오니 그런 게 느껴질 리 만무하죠. 공포영화를 보는데 정확히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 지 꿰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쨌든 뭐가 튀어나오는 순간엔 공포영화 보는 기분은 나겠으나 장르적 재미를 느끼긴 어려운 것과 똑같습니다.
남은 자리를 채우는 코미디는 형식적이고 예측 가능합니다. 아저씨 둘이 오버하는 그림에 철없는 가족들과 도대체 어떻게 취업했나 싶은 특수요원들까지 붙는데, 막상 아주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은 애매함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인물들이 되어 버리죠. 이마저도 (당연하겠지만) 니콜라스 케이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처사인지라 일종의 악순환이 되구요.
애초에 타겟으로 삼을 수 있는 관객층이 너무나도 한정적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 영화를 정말 좋아했고, 그것이 왜 좋은지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는데다가, 길게는 20년 이상 잡아야 하는 기간 동안 그를 잃지 않고 갖고 있는 관객들에게 통할 영화죠.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왕왕 찾을 수 있어도,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즐기기는커녕 쳐다볼 사람도 그리 많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