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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05. 2022

<헤어질 결심> 리뷰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렇다는 말이 아님을


<헤어질 결심>

★★★★


 <아가씨>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입니다. 이미 지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인지라, 13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수수께끼같은 장르에도 출발이 좋네요. 박해일과 탕웨이를 주인공으로 이정현, 고경표, 정이서, 김신영(!), 유승목, 박용우는 물론 화려한 카메오들이 출연진을 장식했습니다.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하게 됩니다. 남편의 죽음 앞에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태도 탓에 경찰은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리지만, 해준은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녀를 향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끼죠. 한편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합니다.


 고정된 시점에서 살짝 떨어진 인물들의 입에서는 문어체와 구어체 사이 어딘가에 있는 대사들이 흘러나옵니다.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형사인데, 담당하는 사건은 이미 발생한 뒤입니다. 분명 영화를 처음부터 보는데도 상영관에 조금 늦게 들어온 기분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보다 조금 더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글을 쓸 때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종의 꼼수가 있습니다. 글의 시작을 '그러니까'로 시작하는 것이죠. 딱 마주한 글의 첫 문장이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라면, 존재하지도 않는 앞 문장을 신경쓰면서 글을 읽게 됩니다. 소위 말해 글에 멋을 좀 부리고 싶을 때 써먹으면 좋겠다고, 반대로 생각하면 허투루 썼다가는 허세만 가득해 보이는 글이 되겠다고 생각한 방법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해준은 그녀를 만났다. 완전한 시작점은 아니지만, 놓친 앞부분이 찝찝하지도 않은 그 교묘한 지점에서 출발하죠. 관객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해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작된 무언가를 따라갑니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 보니 서래가 나타나고, 해준과 서래 사이에 그 둘도 모르게 끼어든 제 3자가 되어 둘의 관계를 지켜보죠.



 마치 문학 작품을 써내려가듯, 문학 작품을 읽어내려가듯 전개됩니다. 하나의 장은 여러 장으로 나뉘고, 그 하나하나의 장은 또 여러 장으로 나뉩니다. 장이 끝나면 죽지 않았어도 퇴장하여 돌아오지 않는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장을 관통하여 관객들은 물론 서로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인물들이 있죠. 이번 영화의 중심엔 당연히 해준과 서래가 있겠구요.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다른 영화라면 어디서든,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랑이라 규정할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남녀의 사랑은 다룬 영화의 제목은 '만날 결심'도 아닌 '헤어질 결심'입니다. 둘은 둘 사이의 어딘가에서 유랑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시선이 굉장히 특이합니다. 해준에겐 부인이 있고, 서래에겐 심지어 남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서로에게 이끌리는 둘의 감정을 나쁜 것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이라고는 없는 가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서로를 발견한 세기의 사랑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산과 바다에 안개처럼 스며들어 조금씩 서로의, 보는 이를 적시는 감정 그 자체입니다.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의 공통점을 감히 이야기해 보자면, 둘의 영화는 불친절한 영화들 중 가장 친절합니다. 끊임없이 퍼즐 조각을 단서로 던져주는데, 보는 사람은 누구든 이것이 무언가의 단서이자 일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작품의 해석에 참여하게 하고, 단서의 수가 워낙 많은 통에 누구든 자신만의 크고 작은 해설을 최소한 한두 줄은 완성하게 되죠.


 이 성취감은 호기심과 선순환하며 영화를 한 땀 한 땀 탐미하게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나 감정선은 의외로 단순하고 또 반복적임에도 이와 같은 보물찾기식 구성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키우죠. 벽지와 노트에서 파도가 보이고, 자꾸 안약을 넣고, 남편의 손마디 꺾는 버릇을 따라하고, 녹음기를 찾고, 까마귀 깃털을 매만지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글 재료를 발견합니다.



산은 땅에서부터 정상까지 높이를 재고, 바다는 땅에서부터 바닥까지 깊이를 잽니다. 출발점은 같으나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향합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해 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상대방과 멀어집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방식대로 움직이며 맞물리고 또 어긋납니다. 둘 사이 언어의 장벽을 부수지만 커다란 위기와 약점의 원인이 되는 전자기기처럼, 누군가에겐 녹색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겐 파란색으로 기억되는 원피스처럼, 하나의 존재엔 하나의 의미만이 귀속되지 않습니다. 만나는 데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과정입니다.



 어색해서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워서 어색한 그들과 그들의 단어들은 영화의 엔딩에 얹혀 머릿속을 맴돕니다. 물음표를 뭉쳐 느낌표를 만들고 느낌표를 뭉쳐 물음표를 만드는 일종의 자연 현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파도처럼 밀려와 잉크처럼 번진다는 현학적 표현을 그것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직접 말한 영화가 스스로의 평가에 그를 사용하게끔 한다니, 실로 대단한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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