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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12. 2022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리뷰

허황이 된 꿈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Fyre)

★★★☆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많은 돈, 더 화려한 배우, 더 대단한 감독을 들여 제작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야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비용 대비 효율로는 서글픈 결과물들이 더 많은 것만 같죠. 그럴 때마다 넷플릭스의 진주는 다름아닌 다큐멘터리라는 작은 목소리가 이따금씩 힘을 얻고는 합니다. 지난 2019년 1월 공개된 <FYRE>도 그 중 하나였구요.



 어느 날, 인스타그램 좀 하고 팝 컬쳐에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플루언서들이 파이어 페스티벌이라는 것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세계 최고의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은 트렌드에 살고 트렌드에 죽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죠. 그렇게 파이어 페스티벌은 단숨에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얻지만, 비극은 이미 서막을 올렸습니다.


 평소 글을 쓰면서 각별히 신경쓰는 것들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중복되는 표현입니다. 했던 말을 또 하지 않으려고 하고,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어휘를 쓰려고 합니다. 여러 사전들을 참고하며 동의어와 유의어를 들여다봅니다. 가끔은 결코 단어에 국한되지 않은 채 관용어나 비유로도 범위를 확장합니다. 나아가 하나의 글 안에서가 아니라 연속된 글에서도 같은 표현은 어떻게든 자제하려고 하죠.



 언제부턴가 리뷰에 '비행기에서 보면 딱 좋은 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로 이를 다시 쓰지 않으려고 무던한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재치를 발휘하는 유튜브를 운영했다면 비디오 마지막에 도장 쾅 찍으면서 쓰기 좋은 표현이죠. '술 먹고 보면 좋은 영화', '수업 시간에 틀어주면 정신없이 보면 좋을 영화', '시험 기간에 보면 좋을 영화' 등 연장선에도 다양한 문장들이 있겠습니다.


 이번 <FYRE>는 딱 그런 작품입니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장시간을 가야 하는 비행기에서 쳐다보고 있을 건 많지 않습니다.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라니, 나눠 주는 헤드폰을 주섬주섬 끼워 눈 앞 작은 스크린을 굴리다 보면 눈에 들어올 만한 유혹적인 부제입니다. 영화를 보자니 기승전결 곱씹기는 머리가 무거울 것 같고, 97분짜리 길이도 적당한 다큐멘터리 한 편 정도는 보고 싶죠.



 빌리 맥팔랜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차세대 청년 기업가 목록에 오를 만한 인물이었고, 꿈도 야망도 컸습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자신을 포장하고 싶었습니다. 파티를 하면 유명인을 불러 자신의 지위를 올려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표현의 수단으로 옆사람을 사용하는 사람이었죠. 나 누구랑 술 마시는 사람이야, 나 누구랑 파티하는 사람이야, 나 누구랑 밥 먹는 사람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연예인 한 번 부르려면 거칠 것도 많았습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파티에 한 번 부르려면 한 세월에 돈도 만만찮게 깨졌습니다. 연예인 매니저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쯤은 거쳐야 부를 기회 한 번을 얻을까말까 했죠. 택시 잡다가 열 받아서 우버가 탄생했다고 하면, 연예인 만나려다 열 받아서 파이어가 탄생했습니다. 파이어는 처음부터 파티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서비스를 만들었으니 홍보가 필요했습니다. 일평생 남들에게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최선의 덕목이라고 생각해 왔으니, 자신의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는 첫 번째 공식 석상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화려한 파티를 열고 싶었고, 평소 자신이 누구보다 잘 하고 잘 아는 것은 다름아닌 연예인이었습니다. 더 많은 연예인은 더 많은 관심과, 더 큰 성공과 비례했습니다.


 사기꾼이 되든 유니콘이 되든, 시작 단계의 청년 기업가들은 특유의 인력이 있습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홀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죠. 빌리도 그런 초능력 아닌 초능력의 소유자였고, 자본금을 끌어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진 돈은 넘치고 꿈은 원대하니 펑펑 쓸 일만 남았습니다. 돈 쓸 구실이야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었죠.



 평생 페스티벌 기획이라는 것은 해 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결정권자가 되어 사상 최대의 페스티벌을 기획합니다. 언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와중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떠서 떠들 힘은 남아 있습니다. 이런 페스티벌이 열리고, 이런 사람들이 오고, 이런 것을 줄 테니 당신들은 돈만 내면 된다며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끝도 없이 꺼내놓았죠.


 아무 것도 없었지만 모든 게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인플루언서라는 사람들에게 수천만 원, 수억 원씩 줘 가며 해시태그만 하면 지금 이 시간 세상에서 제일 핫한 존재가 될 수 있었죠. 파이어 페스티벌은 인스타그램이 낳은 괴물입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것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법한, 누구나 한 번쯤 의심했을 법한 그 미묘한 지점이 쌓이고 모여 폭발한 유례없는 사건이었습니다.


 <FYRE>는 단순히 파이어 페스티벌이라는 허랑방탕한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전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빌리 맥팔랜드라는 인물의 어떤 심리가 이런 사태를 일으켰고, 그런 위험한 생각과 사상이 정확히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살핍니다. 그러면서 이는 처음도 아니었으며 마지막도 아님을 경고하죠.



 'SNS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고 싶지만, SNS 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은 너무나 특수한 위치에 도달해 있습니다. 일상의 조각을 모아 보여준다는 컨셉은 각자가 생각하는 '일상'의 의미가 달라지면서 순기능과 역효과의 극한으로 치달았죠. 파이어 페스티벌은 후자가 실체화된 결과물이었고, <FYRE>는 그를 파고들어 진단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손을 한 번이라도 대 본 모두를 뒤돌아보게끔 합니다.


 한편으로는 만약 더 엄청난 추진력과 실행력을 지닌 사람이 똑같은 조건에서 더 효율적인 인력 운용으로 파이어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면, 메시지는 21세기의 잠재력을 찬미하며 정반대로 뒤집혔을 겁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음이 무서운 것인지, 이처럼 정반대 상황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더 무서운 것인지 또한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겠지요.



 이처럼 어느 한 지점에 책임을 온전히 물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실패할 것이 뻔했던 사기처럼 보이는가 하면,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어진(성공만 했다면 부와 명예를 가져갔을) 도박처럼 보이기도 하죠. 시점에 따른 인물과 사건을 모두 놓치지 않으면서 축을 안정적으로 이동시킨 덕입니다. 넓은 의미의 파이어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끝없이 세상에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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