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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12. 2022

<노스맨> 리뷰

세월에 굳지 않는 피


<노스맨>

(The Northman)

★★★☆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의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포스터나 예고편만 보아도 전작들의 신화적 색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듯한 <노스맨>이죠.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니콜 키드먼, 클레스 방, 안야 테일러조이, 에담 호크, 윌렘 대포, 랄프 이네슨, 비요크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본토에서는 지난 4월 말 개봉되었지만, 국내 개봉일인 8월 31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네요.



 용맹한 아버지 아우반디르 왕과 가정적인 어머니 구드룬 왕비 밑에서 자라나고 있는 암레스 왕자.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동생인 피오니르가 왕위를 노린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충격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복수를 꿈꿉니다. 권력은 내려놓은 채 오직 복수만을 꿈꾸며 피의 나날을 보내던 암레스는 누구와도 맞설 수 있는 전사로 성장하고, 마침내 평생을 기다린 그 날이 다가오죠.


 최근 감상한 작품들 중에서는 <맥베스의 비극>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듯한 문어체 대사들과 화면의 전환을 무대의 전환처럼 활용하는 방식 등이 그러하죠.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내면을 독백으로 표현하고, 그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마치 무대 한 편에 스포트라이트를 켠 듯 신비롭고 생소하게 묘사됩니다.



 줄거리는 직선적입니다. 단란한 왕족으로 자라났으나 왕위를 넘봤던 삼촌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왕자의 이야기죠. 맨 손으로 사람 몇은 찢어버릴 듯한 태초의 전사로 성장한 왕자는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순간을 맞이하지만, 더 이상 험해질 수 없고 더 이상 잔인해질 수 없으리라 믿었던 세상은 자신을 또 한 번 사지로 내몰 준비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햄릿>만 해도 지금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의 뿌리가 되었는데, 그 <햄릿>의 뿌리가 되는 이야기라고 하니 사실 이보다 원초적일 수 없습니다.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보다는 표현 방식을 하나의 스타일로 만들어야 하는 각본이죠. 다행히도 로버트 에거스는 많지 않은 전작들을 통해 묘한 시각적 매력을 증명하는 데에도 성공한 감독이고, 이번 <노스맨> 또한 그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더 위치>에서도 몇 번 써먹었던 음침한 예언자 컨셉은 여기서도 효과를 십분 발휘합니다. 이매진 드래곤스쯤 되는 락 밴드의 뮤직 비디오에 나올 법한 몽환적인 화면과 사운드도 이따금씩 삽입되며 영화의 맛을 더하구요. 전개는 예측을 벗어나지 않고 여느 할리우드 상업 영화처럼 거대한 시각적 볼거리를 준비한 것도 아닌데, 러닝타임은 137분이라 상업성은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그 떨어지는 상업성을 채워넣으려 노력합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작들의 색채를 생각해 보면 다소 의외의 선택이죠. 교훈이나 메시지보다는 이야기의 힘 자체에 기대는 영화인데, 아무래도 동력을 확보하려다 보니 볼거리와 스케일 쪽에서도 접근을 시도합니다. <더 위치>가 400만 달러, <라이트하우스>가 1100만 달러를 들였음을 떠올려 보면 <노스맨>의 8000만 달러는 상당합니다.



 입지가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노스맨>은 둘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신화적인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스케일에 기대지 않았고, 화려한 배우들을 일방적으로 나열하며 이름값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재해석도 각색도 리메이크도 아니니, 가장 최근의 방식으로 정성들여 만든 클래식 음악을 반기는 심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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