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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12. 2022

<카터> 리뷰

과속해 들이받고도 가속


<카터>


 2017년 <악녀>의 정병길 감독이 5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주원, 김보민, 정재영, 정해균, 이성재, 정소리, 마이크 콜터, 카밀라 벨 등과 함께한 <카터>죠. 감독도 오랜만의 신작이지만, 주원을 스크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 2015년 <그놈이다>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틀 전인 8월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죠.



 DMZ 부근에서 창궐한 바이러스와 맞서기 위해 손을 잡은 남한과 북한 정부. 자신의 정체를 포함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귓 속에서 자신을 '카터'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마주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전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들고, 바이러스 치료제의 열쇠가 되어 모두를 구원할 한 소녀까지 떠맡은 그는 주어진 시간 안에 기억을 되찾고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죠.


 정병길 감독의 전작 <악녀>는 평가나 흥행과는 별개로 한국 액션영화계에 족적을 남긴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악녀>의 오토바이 액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어깨 너머로라도 들은 적이 있고, 이후 <존 윅 3>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해당 장면을 오마주했다고 밝히며 또 한 번 화제가 된 바 있죠. 자부심을 가지기엔 충분한 업적입니다.



 이번 <카터>는 그 자부심을 뭉치고 뭉쳐 만든 영화입니다. 액션, 액션, 그리고 액션이죠. 주인공을 눈을 뜨고 사건에 휘말려 위기를 타개하는 기승전결을 원 테이크로 담아내려 했고, 그 과정엔 맨몸 격투부터 자동차 추격, 심지어 헬기와 헬기의 대결에 이르는 온갖 액션이 범벅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무기 삼아 강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아드레날린과 유혈로 러닝타임을 채웠습니다.


 개성이긴 합니다. 화면은 분명 원 테이크로 이어지고 있는데, 주인공을 바라보았다가 주인공의 시선이 되기도 합니다. 스테디 캠에서 드론 캠을 넘나들고, 하늘 끝까지 올랐다가 물 속으로 꺼지기도 합니다. 카터를 주인공 캐릭터 삼은 비디오게임의 스테이지를 격파하듯 정신없이 이어집니다. 몇몇 장면은 버튼 조합을 제때 잘 누른 보상으로 기깔나는 시네마틱 영상을 틀어 주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러나 그 유일한 장점을 제외한 모든 구성 요소가 단점입니다. <카터>는 더 거대한 액션 영화의 영감을 주는 단편 클립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영화의 기능을 해야 하는 영상물이죠. 그럼에도 기승전결은 이토록 단순할 수 없음에도 이토록 중구난방일 수가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유일한 치료제가 될 수도 있는 아이를 웬 박사에게 제 때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쉽고 간단하죠.


 그럼에도 <카터>는 이 단순한 길을 똑바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정확히는 액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좀 더 멋져 보이는 액션을 연출하기 위해 각본을 내던지죠. 카터가 뛰어내린 목욕탕에선 헐벗은 여자가 총을 겨누고, 갑자기 들이친 민간 치료실에서는 웬 여자가 산소 호흡기에 대고 각혈을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와 팝콘 옥수수 터지듯 튀어오르죠.



 모두 당연히 설명되어야 함에도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시각적으로 괜찮아 보이기만 하면 일단 집어넣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뒷부분에 설명해 주겠거니 하고 무의식 중에라도 기억하게 되는데, 애초에 영화 쪽에서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기에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쌓이는 이질감이 큽니다. 분명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무언가가 서서히 풀리지만, 풀리는 것보다 쌓이는 것이 더 많죠.


 설상가상으로 영화는 속편을 의도한 미스터리를, 그것도 아주 큰 미스터리를 여러 개 남깁니다. 풀려야만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것은 물론, 최종부 결말은 마치 드라마 시리즈가 다음 화 혹은 다음 시즌을 예고하듯 끝이 나죠. 문제는 이미 영화 쪽에서 나서서 들려주지 않은 물음표가 너무 많고, 그런 태도에 이미 익숙해진 이상 뭐가 어떻게 흘러가든 딱히 궁금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는 캐릭터들 또한 액션의 재료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이 액션 혹은 저 액션의 재료로 소비되고 낭비됩니다. 누가 죽어도, 누가 죽지 않아도 그 어떤 긴장감도 만들어내지 못하죠. 카터의 과거와 바이러스 치료제라는 두 굵직한 줄기가 있지만, 액션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과 공을 들이는 통에 뭐가 어떻게 되든 신경을 기울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액션뿐인데, 이 액션마저도 한계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킹스맨> 1편의 교회 난투처럼 한두 장면에서 적절히 활용하면 영화의 하이라이트나 상징이 되어 기억에 남지만, 영화 전체를 이끌기엔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사과 껍질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깎는 광경을 보는 느낌이죠. 신기하긴 한데, 중요한 건 질감이나 맛이지 껍질을 깎는 모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장면의 완성도도 서글픕니다. 감탄이 나오는 몇몇 장면은 수가 적고, 대부분의 장면은 CG가 너무나 조악해 렌더링마저도 덜 된 3D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죠. 원 테이크 욕심을 버리지 못한 편집점마저도 엉망이라 배우의 표정이 경련을 일으키듯 바뀌는 등 눈에 거슬리는 지점이 너무 많습니다. <악녀>의 박수갈채를 재현하려 롱 테이크 추격전에 또 다시 국악을 까는 시도도 이번엔 욕심밖에 보이지 않구요.



 뚝심 내지는 고집이 이렇게까지 강렬할 수 없습니다. 방향성이 너무나 명확해 이를 인정하고 높이 살 관객들도 분명 있겠지만, 어느 모로 보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사서 높인 곳이 너무 많죠. 자신감과 추진력은 무언가를 증명하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나, 그렇게 도착한 곳엔 증명할 무언가는커녕 그걸 들어 줄 군중도 모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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