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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블랙폰> 리뷰

초현실로 풀칠한 유대


<블랙폰>

(The Black Phone)

★★★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스콧 데릭슨 감독의 신작, <블랙폰>입니다. 조 힐 작가의 단편집 중 한 편을 장편 영화로 늘린 작품으로, 메이슨 템즈, 매들린 맥그로, 에단 호크 등이 이름을 올렸죠. 포스터만 보면 당최 짐작이 가지 않으나, <닥터 스트레인지>를 제외하면 <인보카머스>, <살인소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등 어둡고 초현실적인 감독의 작품 세계가 돌아왔습니다.



 1978년 덴버의 작은 마을,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와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곧잘 지내던 피니. 언젠가부터 검은 풍선과 함께 나타나 아이들을 납치하는 괴한이 출몰하며 마을의 분위기가 흉흉해지던 어느 날, 그의 마수는 결국 피니에게도 닿고 맙니다. 눈을 뜬 곳은 외딴 방 한 켠, 분명 선이 끊어져 있던 옆의 전화기에서 의문의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감금 납치 스릴러에 초자연이라는 변주를 시도했습니다. 외딴 마을에서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지는데, 그 중심에는 풍선을 들고 나타나 마술을 보여주는 유괴범이 있죠. 감독 쪽에서도 <그것>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설정만 보면 익숙한 내용이지만, 다행히 본편을 직접 보다 보면 그렇게까지 연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동종 스릴러는 주인공의 연령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일단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면 주인공과 악당의 직접적인 대립각을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성별이나 직업은 갈릴 수 있어도, 무시무시한 범인을 상대적으로 약한 주인공이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이겨내는 전개가 보통이죠. 초장에 예상되었던 둘의 격차가 클수록 클라이막스가 내뿜는 쾌감이 커집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어쨌든 납치범은 아이를 맨 몸으로 유괴해 올 정도로 신체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으니, 직접 부딪혀 승리하는 그림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때문에 친구나 가족이 먼저 연관이 되고,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공권력 혹은 남의 주먹을 빌리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그 정도의 기지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블랙폰>은 특이하게도 그 중간에 있는 영화입니다. 아이 내지는 청소년이 주인공인데, 납치범과 직접적인 대립 구도에 서서 맞서죠. 그 간극을 메울 수단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설정이구요. 그것도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니라, 방 안에 있는 고장난 전화기에서 먼저 실종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흥미로운 전개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또 하나의 선택을 이미 내린 상태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등장시키는 영화들 가운데 그 원인 내지는 사연을 설명하려는 영화가 있고, 대담하게 혹은 뻔뻔하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설정의 결과만을 가져가려는 영화가 있죠. <블랙폰>은 후자입니다.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긴 하나, 그 현상의 이유나 원리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로 여기가 영화가 그 어느 구간보다 조심해야 하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말이 안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멍청한 설명보다는 생략이 더 효과적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명분 삼아 정말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결과만 나열하면 영화의 설득력이 통째로 무너지죠. 특히나 <블랙폰>이 시도하는 방식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환상이나 환각을 현실과 연결합니다. 걸려오는 전화는 그 경계선에 있습니다. 벨소리는 피니에게만 들리는 것 같고, 건 사람은 다름아닌 죽은 사람들이죠. 피니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힘을 내라거나 납치범의 약점을 노리라는 등 피니의 내면이 실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도움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을 적 보고 들었던 정보를 무기 삼아 탈출과 점점 가까워지죠.



 심지어 피니의 동생인 그웬은 꿈을 통해 시간을 넘나듭니다. 어렴풋한 무의식의 기억 정도가 아니라, 미제 사건을 해결할 만한 단서들을 똑똑히 목격하는 수준이죠. 그 정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지라 처음엔 헛소리로 치부하던 경찰 아저씨들조차 나중에는 그웬의 도움을 받으러 먼저 찾아올 지경입니다. 피니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휘말렸다면, 그웬 쪽은 확실한 초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영화의 의도는 읽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규칙에 상처받은 아이들은 마침내 홀로서기와 유대를 통해 치유로 나아갑니다. 경찰과 같은 공권력, 신을 비롯한 초월적 존재들에게 기대던 아이들은 이내 스스로의 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또 받아들인 아이들은 자연히 서로에게 이끌리며 그보다 더욱 커다란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죠.



 보통 '아이들의 유대'를 떠올렸을 때 나올 법한 유치한 광경보다는 꽤나 성숙하고 섬세하게 묘사되나, 구도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직합니다. 마침 납치범이 즐기는 체벌 방식은 평소 자신들을 학대하던 아버지와 같은 것입니다. 납치범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학대를 딛고 일어서는 진전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친절한 비유죠.


 하지만 그런 메시지를 아주 탄탄하게 받치지는 못합니다. 당장 전화가 걸려오는 이유나 그웬이 꿈을 꾸는 이유 자체는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딱 거기까지죠. 죽은 아이들 가운데 피니와 직접적인 접점이, 그것도 우호적인 접점이 있었던 아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이와 어른,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하나의 차원에만 묶여 큰 도움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기승전결보다는 그를 만들어내는 의도에 더 많은 힘을 준 영화입니다.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의도를 깨닫게 하는 연출이 좋은 연출이라면, <블랙폰>은 기승전결의 부족한 힘을 의도의 강직함으로 계속해서 보충하죠. 잘못된 방식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무의미한 점프 스케어 등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으니 좀 더 뚜렷하고 정제된 영화가 될 수 있었음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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