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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프레이> 리뷰

초심을 향한 퇴화


<프레이>

(Prey)

★★★


 할리우드에서 신기하리만치 포기하지 않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프레데터가 돌아왔습니다. 2016년 <클로버필드 10번지> 이후 6년만에 돌아온 댄 트라첸버그 감독의 신작, <프레이>죠. 20세기 폭스 뚜껑을 달고 제작되었으나 디즈니의 폭스 인수로 본토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인 훌루를 통해 공개되었지만, 훌루가 서비스되지 않는 국내엔 디즈니 플러스에서 지난 8월 5일 공개되었습니다.



 300년 전 아메리카, 용맹한 전사를 꿈꾸는 원주민 소녀 나루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의 구역에서 미지의 현상들을 목격합니다. 사자도 곰도 아닌 무언가가 생전 본 적 없는 파괴력으로 사방에 피를 흩뿌리고 다니죠. 조금씩 사냥 범위를 좁혀 오는 미지의 존재를 관찰하던 나루는 최첨단 기술과 무기에 전에 느낀 적 없었던 공포를 마주하지만, 부족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합니다.


 비교적 발전한 기술과 규모로 승부했던 프레데터 시리즈의 뿌리입니다. 무대부터 300년 전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겼죠. 말 그대로 '포식자'였던 제목마저도 반대인 '사냥감'으로 바꾸었으니, 무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결심이 엿보입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범블비>를 내놓으며 초심으로 돌아가려던 광경을 보는 것 같지요.



 작은 그림에서 보면 <프레이>는 주인공 나루의 성장담입니다. 부족의 일원들은 일정 나이가 차면 목숨을 건 전투를 거쳐 어엿한 전사로 인정받습니다. 부족원들이 인정할 만한 대상을 때려잡아야 하기에 보통은 영웅담 늘어놓기 좋은 맹수들이 대상이 되죠. 주인공 나루는 하루빨리 이 의식을 통과해 전사가 되고 싶지만, 오빠와 그의 친구들은 아직 부족하다며 놀림감 삼기 일쑤입니다.


 그런 상황에 미지의 존재인 프레데터가 등장하고 나루를 비웃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니 얼개는 대강 보입니다. 누구도 시도한 적 없고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적이 다름아닌 나루의 제물 자리에 들어가죠. 모두가 나루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심지어 우리 중엔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존재가 나루와 맞서며 전설이 시작됩니다.



 한편 큰 그림은 <프레이>가 300년 전의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질서 아래 살아가고 있던 나루의 사람들을 건드린 건 비단 외계의 프레데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얀 얼굴의 침략자들은 맨 몸에 활을 들고 다니던 원주민들을 상대로 갑옷을 입고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프레데터의 습격엔 하릴없이 죽어나갔으니,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죠.


 뿌리로 돌아간 프랜차이즈답게, 가지런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물량이나 볼거리로 승부했다가 본의 아니게 피를 본 과거의 경험들을 잊지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 노력하죠. 방향성은 뚜렷하고 재료는 적으니 딴 짓을 할 여지 자체가 적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는 시리즈 최신을 달리니 순간적인 화력은 분명히 있구요.



 볼거리가 의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보니 초중반부의 호흡은 많이 느린 편입니다. 프레데터 시리즈에 기대할 만한 긴장이나 유혈 대신, 자연 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죠. 어디서 왜 왔는지가 과감히 생략된 프레데터가 등장한 이후에도 영화가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까지는 딱히 불필요한 발골(...) 장면들도 거쳐야 합니다.


 기다림 뒤에 시작되는 나루와 프레데터의 대결은 미지의 존재에 대처하는 똘똘이 주인공의 전형을 충실히 따릅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도무지 이길 방법이 없어 보이던 존재였지만, 한두 번 대치하고 나니 약점 내지는 공략법이 조금씩 보입니다. 물론 그마저도 예상대로 척척 흘러가지 않아 크고 작은 희생을 요하죠. 그럼에도 우리의 주인공은 최후의 영광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큰 문제도 없지만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으며 그토록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던 프레데터는 나루와 맞닥뜨리기만 하면 학습이 덜 된 초창기 AI마냥 허둥거리고, 사냥 한 번 해니지 못하며 유약하기 그지없던 나루는 프레데터 앞에서는 도대체 지금까지 부족장 안 하고 뭐 했나 싶은 전투력을 유감없이 흩뿌리며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해내죠.


 마치 하루아침에 생긴 초능력에 서서히 적응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수퍼히어로 영화의 전개와 같습니다. <프레이>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니고, 나루에겐 그 어떤 새로운 초능력도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겠지요. 그렇다면 최소한 그 초월적인 능력의 근원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평소 눈만 뜨면 사냥을 나서던 그녀가 이번에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니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따져 보면 완전히 동일한 기승전결 하에 프레데터를 개성 강한 백인 침략자로 설정했더라면 작품성에 좀 더 힘을 준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나루와 맞서는 존재가 프레데터여서 프레데터 시리즈가 되었을 뿐, 살인마 설정의 어떤 캐릭터를 가져다 놓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해당 시리즈의 외전 겸 기원이 되었겠지요. 기존 시리즈와 붙는 듯 붙지 않는 희미한 연결점은 장점이자 단점이 됩니다.



 프레데터 시리즈를 새롭게 이끌어갈 1편까지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시리즈에 수혈된 새로운 피 정도로는 충분히 볼 수 있겠습니다. 여전히 다른 유명한 B급 살인마 캐릭터들 가운데 프레데터의 특징이나 개성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많은 영화들을 만들어낼 정도인가 싶으면서도, 이런 식의 변주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결과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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