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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놉> 리뷰

'유튜브 각'의 경고


<놉>

(Nope)

★★★☆


 <겟 아웃>, <어스> 등 대단한 잠재력으로 일찍이 할리우드의 최전선에 오른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입니다. 제목부터 예고편까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의 향연으로 영화 팬들의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린 작품이죠.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브랜든 페레아, 마이클 윈콧, 키스 데이빗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개봉은 오는 8월 17일로 잡혀 있구요.



 아버지와 함께 말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티스 주니어. 하지만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가족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아버지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오티스와 동생 에메랄드에겐 서로밖에 남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하하늘에서 도사리던 무언가가 움직입니다.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빨아들여 사라지게 만드는 미지의 존재가 말이죠.


 과연 전작들의, 자신의 색채를 이번에도 온전히 유지합니다. 조던 필은 화면과 그 안에 떠다니는 '불편함'의 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입니다. 일상적인 무언가와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의 비율을 바꾸어 가며, 심지어는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가며 그를 보는 관객들의 심리를 조입니다. 그는 시각적인 것일 수도, 청각적인 것일 수도, 나아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죠.



 이번 <놉>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장면부터 지극히 강렬합니다. 제작사 로고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괴상한 광경인 줄 알았더니, 이미 영화는 시작한 뒤였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스튜디오 안에 피투성이 침팬지가 앉아 있습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 침팬지가 이 참상을 만든 짐승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씩씩대는 숨소리에 이 광경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임을 추측하는 순간, 침팬지가 이 쪽을 봅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는 다행히도 그 무시무시한 현장에 진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돈은 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가치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앉아 있는 소비자들이죠. 시간을 쓰고 돈을 썼으니 볼 만한 것을 내놓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 볼거리를 찍는 것은 카메라죠.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 매체가 대중화된 지금엔 날이 갈수록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 수단입니다.



 주인공인 오티스와 에메랄드 남매는 말 목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놉>의 설정에 따르면 그들의 성이자 목장의 이름인 헤이워드는 다름아닌 영화의 역사와 함께하는 이름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활동 사진, 즉 영화는 흑인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리는 2초 남짓한 영상이었습니다. 바로 그 말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이 주인공 남매의 먼 조상이고, 그 말이 함께했던 목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하죠.


 먹고살기가 하루하루 어려워지고 있던 그 때, 하늘에 무언가가 나타납니다. 'UFO'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릴 법한 비행접시입니다. 마치 배가 고프면 밥을 찾는 짐승처럼 주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죠. 여느 UFO들처럼(?) 조용히 나타나 목격이나 당해 주면 좋을 텐데, 이게 나타났다 하면 오티스가 아끼는 말들이 이성을 잃고 내달리다가 하늘로 끌려들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본격적인 미스터리가 전개됩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미지의 존재를 꺼내들었으니 관객들은 모두 비슷한 것을 기대합니다. 이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해 주길 바라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놉>은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이 볼거리를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죠. 현상의 결과보다는 현상 그 자체를 바라볼 기회를 주는 영화입니다. 카메라 덕에 볼거리가 볼거리로 남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한편으로는 카메라 때문에 볼거리는 볼거리로 남을 수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를 가공하고 세상에 내놓아 주머니를 불릴 수 있게 된 순간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었죠.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놉>의 문을 여는 성경 구절, 나훔 3장 6절입니다. 변수와 우연, 혹은 자연 현상의 결과물이었던 볼거리는 어느새 자본주의라는 신의 법칙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찍어야, 자극적인 것을 찍어야 시선이 이끌리고 관심이 모입니다. 그는 돈이 되고, 자본주의에서 돈은 힘이자 권력입니다.


 찍는 것도 개인이고 보는 것도 개인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이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마치 배고프면 달려들어 배를 채울 수 있는 무엇이든 잡아먹는 짐승과도 같습니다. 하늘을 이리저리 떠다니며 먹이로 삼을 만한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원초적인 이 힘은 개인의 통제를 거부하지만,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와 항상 함께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볼거리가 합쳐진 이 미디어는 흥미로운 것을 찾아 빨아들여 씹어먹습니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삼켜 버리지만, 필요없고 쓸모없는 것은 가차없이 뱉어내죠. 뱉어내는 행위마저도 철저히, 그리고 잔혹하게 계산되어 있습니다. 가한 것은 잊어버리면서도 당한 것은 잊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힘이지만, 구름 위 존재에게 감히 맞설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스티븐 연의 주프는 과거 큰 인기를 모은 아역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커리어의 정점이었고, 이후로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전형적인 한물 간 배우로 남았죠. 다시 말해 볼거리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덕에 인생의 흥망성쇠를 겪은 인물입니다. 자신이 그 힘을 통제해서 성공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 힘이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죠. 그럼에도 주프는 성인이 된 뒤 그 사실을 망각하고 외면합니다.


 케케 파머의 에메랄드는 가족의 목장 사업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오빠만큼의 관심을 주지 않았던 아버지 탓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족 사업에 손을 대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UFO는 말 그대로 하늘이 준 기회였죠. 잘 찍어서 어떻게 잘만 하면 떼부자가 될 생각에 신이 나 있습니다.



 다니엘 칼루야의 오티스는 다릅니다. 그는 극중 거의 유일하게 자본주의의 논리를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가족 사업을 안전하게 물려받아 말들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말 먹이를 주어야 한다며 목장으로 향하는 인물입니다. 맹수를 들여다보고 읽어내 그의 눈을 마주치는 방법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인물이죠.


 얼핏 복잡하지만 비유를 읽어낸 뒤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머릿속이 뒤집히기 전에 힌트에도 관대합니다. 최후반부 드러나는 그것의 생김새는 미디어의 눈 그 자체죠. 전자제품 코너 직원인 엔젤은 돈 벌 생각에 들떠 있던 에메랄드에게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공익을 위한 것임을 인지시킵니다. 자신의 자본주의적인 의도를 일종의 사명이나 대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항상 어떤 각본에도 인종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그답게 <놉>에도 흑인들의 목소리는 진하게 묻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2초짜리 활동 사진은 그를 촬영한 사람의 이야기만 남아있을 뿐, 거기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배우이자 스턴트맨인 흑인의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죠. 그러나 이번에는, <놉>에서는 다릅니다. 백인들의 역사인 카우보이와 미디어의 대립은 다름아닌 흑인들의 손에 기록되죠.


 다만 이렇게까지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들은 파악하지 못해도 기본적인 기승전결만으로 흥미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놉>은 스스로의 메시지에 심취해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며 그를 일부러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이클 윈콧의 앤틀러스 홀스트처럼 각본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필요한 말과 동작을 생산하는, 인간적 개성이 아니라 텍스트의 집합체처럼 보이는 캐릭터들도 눈에 띄구요.



 하지만 한 번 눈을 마주친 뒤에는 시선을 떼놓기가 어려운 영화입니다. <어스>를 극장에서 벌벌 떨면서 봤던 과거를 떠올려 보면 호러 색채를 확 낮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죠. 그저 예술적이고 현학적으로 보이려는 목적으로 그럴듯한 것들이 그럴듯한 광경이 되길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일정하고 뚜렷한 의도 하에 배치해 분명한 메시지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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