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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탑건: 매버릭> 리뷰

시대와 세대의 편대 비행


<탑건: 매버릭>

(Top Gun: Maverick)

★★★★☆


 톰 크루즈가, 매버릭이 돌아왔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제작된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기다림은 우려를 키웠고, 훨씬 큰 이름값에도 똑같은 이유로 불어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한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선례는 그에 한몫을 더했죠. 그러나 국내 개봉 2개월이 넘은 지금도 <탑건: 매버릭>은 박스오피스 다섯 손가락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고의 파일럿이자 해군의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피트 미첼, 매버릭. 오늘도 스릴을 즐기다 기어이 사고를 친 그는 자신이 졸업한 훈련 학교에 교관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외딴 곳에 위치한 테러 위험 시설을 폭격하여 무력화시킬 위험천만한 임무를 위한 후진 양성이었죠. 단 3주 안에 콧대 높은 엘리트 졸업생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는 오늘도 목숨을 건 비행에 나섭니다.


 톰 크루즈가 복귀한 곳에 <오블리비언>의 조셉 코신스키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거기에 마일즈 텔러, 제니퍼 코넬리, 글렌 파웰, 모니카 바바로, 그렉 타잔 데이비스, 제이 엘리스, 찰스 파넬, 존 햄에 에드 해리스와 발 킬머를 더했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부터 톰 크루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크리스토퍼 맥쿼리는 1편의 제리 브룩하이머와 함께 제작자로 합류했습니다.



 <탑 건>의 속편이라니. 멀쩡히 잘 있는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전편의 명성까지 망친 사례는 셀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탑 건>은 영화 자체가 손에 꼽는 명작이라기보단, 어느 장면을 보아도 그저 빛이 났던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의 의의가 더 큰 작품이었죠. 속편 찍어내기 좋은 권선징악형 액션도 아니었구요. 그런 영화의 속편은 애초에 큰 기대감을 부르기에도 어딘가 애매해 보였습니다.


 다행히도, 그리고 놀랍게도 <탑건: 매버릭>은 그 우려를 잠재웠습니다. 잠재우는 것을 넘어 뛰어넘고 초월했습니다. 모든 지표와 숫자가 그를 증명합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로튼토마토 토마토미터 96%에 팝콘 지수는 99%를 유지하고 있고, 북미 본토와 기타 지역에서 사이좋게 7억 달러씩 벌어들여 전 세계 흥행 수익으로는 무려 14억 달러를 돌파하며 톰 크루즈 출연작 중 역대 최고 흥행에 성공했죠.


 비록 다른 국가들이 5월 말에 개봉할 동안 국내엔 한 달이나 늦은 6월 말 개봉되었지만, 신예들과 함께 열 번째로 내한한 톰 크루즈의 사랑까지 등에 업고 관객수는 무려 8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개봉 전만 해도 <토르: 러브 앤 썬더>가 나오길 기다리는 2주 동안 짧고 굵은 단타를 노렸던 영화가 온갖 초대형 기대작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마치 매버릭처럼 여전한 현역으로 버티고 있죠.



 이번 2편처럼 수십 년을 건넌 영화들, 혹은 전 세계적 프랜차이즈의 신작으로 나온 영화들은 태생적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들어온 기존 팬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른 채 들어온 새로운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보통 이 균형추는 제로섬 게임이 되어 한 쪽을 만족시키려면 다른 한 쪽을 포기하거나 부득이하게 희생시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그 어려운 것을, 어쩌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해냈습니다. 모든 곳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1편이 존재함으로써 자신이 출발점에서 갖고 있는 것, 기존 배우들과 캐릭터가 복귀하면서 이어갈 수 있게 된 것, 새로운 기술과 얼굴들이 함께하면서 새로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을 면밀히 분석했죠.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리라 여겨졌던 것들을 연이어 보란 듯이 성공시켰습니다.



 줄거리는 이보다 단순할 수 없습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임무는 단 하나뿐입니다. 전투기를 타고 일정 속도를 유지하면서 협곡을 지나 두 개의 고개를 넘는 사이에 미사일을 날려 지하 벙커를 터뜨려야 합니다. 알아들을 때까지 무작정 반복하면 지루하니 말로 설명하고 조건을 바꾸어 가며 수없이 연습도 한 뒤 실전까지 달립니다. 단계를 지나는 모습을 단계로 나누어 격파하는 재미를 살립니다.


 제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라도 주인공에게 주어진 이상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흥미를 유지하고 시선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뻔할 수 없지만 눈을 뗄 수는 더 없습니다. TV라는 것이 처음 나왔을 시절에나 쉬웠을 법한 마술을 <탑건: 매버릭>은 더 이상의 볼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2022년의 관객들에게 부리고 있죠.



 기틀이 되는 구조는 간단하고 명료해 누가 언제 봐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영웅, 아버지의 죽음을 등에 지고 있는 아들, 삶의 수많은 순간들을 함께한 친구와의 우정, 새롭게 피어나는 사랑 등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들에 집중하죠. 거기에 1편의 인물과 사건을 양념처럼 묻히니 모르고 봐도 흥미롭고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그림이 완성됩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좋아 보이고 저게 멋있어 보여서 한두 개씩 붙이다 보면 이내 주렁주렁 묵직해지고, 결국 끝에 찾게 되는 건 아무 것도 달려있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 액션의 순정입니다. 군더더기라고는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뼈대 그대로의 각본은 온갖 발전과 각색을 돌고 돌아 제자리를 다시금 찾았습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냅니다. 십수 분에 불과한 첫 장면부터 매버릭은 모두가 벌벌 떠는 상관의 존재를 무시한 채 배짱을 부립니다. 마하 10.0까지만 도달해도 모든 것이 해결됨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그 이상을 향하죠. 단 하나의 시퀀스로 매버릭이라는 인물을 단박에 이해시킵니다. 알던 사람은 반갑고 모르던 사람은 주목합니다.


 실력과 업적은 전설적이라 상명하복의 계급 사회에서도 위아래 누구 하나 허투루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도 그를 아는 듯 책임지지 못할 무모함이 배어나올 때도 있지만, 결코 명예에 집착하거나 도덕적인 선을 넘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것도 망치고 싶지 않아 분투하는 와중 어쩔 수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아주 작은 결함에도 갈등하죠. 누구나 우러러보지는 않아도 꿈꿀 만한 모습입니다.



 단순히 극중 설정상 공훈이 대단한 군인 캐릭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은 36년의 세월을 건너 돌아온 톰 크루즈의 모습을 투영시켜 시너지를 극대화하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하고, 지난 시간 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심지어는 매 순간 아드레날린을 찾아 달리는 모습까지도 닮아 있어 캐릭터의 단단한 깊이를 더합니다.


 얼핏 봐도 진짜 날면서 찍은 듯한 20세기식 항공 액션도 엄청난 매력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전투기 조종석에 헬멧을 쓰고 앉아있는 현장감에 손바닥엔 땀이 맺히고, 레이더가 고장나거나 미사일이 날아오는 등 절체절명의 순간엔 숨을 몰아쉬게 되죠. 가짜를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려 경쟁하던 동네에 찾아온 진짜의 존재감은 이보다 새삼스러울 수 없습니다.



 보여줄 것들을 결정한 뒤에는 그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습니다. 순도 100%의 오락 영화이자 상업 영화인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한 뒤 한 점의 불순물도 용납하지 않죠. 가르침이나 메시지를 집어넣기는커녕,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일말의 여지마저 내려놓습니다. 오죽하면 우라늄 저장고를 갖고 있는 적국의 이름조차 '테러 지원국'이라는 명칭으로 대체합니다.


 이처럼 빈틈없이 기획되어 철저하게 짜맞춘 덕에 보통이라면 설정 구멍으로 지적될 법한 지점들도 구성 요소들의 시너지에 가려집니다. 내내 5세대 전투기가 무섭다는 타령을 하면서도 더 좋은 전투기를 내주지는 않고, 적기들이 쫓아오게 된 뒤에도 엄호는 없는 등 등장인물들의 위기와 극적 긴장을 위해 의외로 개연성의 큰 조각들을 포기했음에도 그를 문제삼을 이유를 알아서들 포기하게 하죠.



 그야말로 올해의 오락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습니다. 전작, 캐릭터, 배우, 관객 등 본인을 있게 한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향한 존중이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불가능하다고들 이야기했던 것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주체는 매버릭, 톰 크루즈, 그리고 <탑건: 매버릭>까지 나아갔고, 2년의 고초를 겪으며 어쩌면 끝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던 '극장'이라는 공간은 덕분에 다시금 이륙했습니다.


 아직 잊혀질 때가 아닙니다. 매버릭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파일럿이 탄 전투기가 무인 드론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이 아직은 섣부른 것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CG가 스턴트를 대체할 수 없듯, 다음의 것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이전의 것이 있습니다. 살다 보니 어느새 뒷방으로 밀려난 스스로의 모습을 삼키는 중년 관객들에게, 톰 크루즈는 이 영화를 보고 울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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