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Oct 29. 2022

<피노키오> 리뷰

이제 진짜 영화가 되어주렴


<피노키오>

(Pinocchio)

★★


 <백 투 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20세기 말 할리우드를 이끌었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 이후 2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1940년작 <피노키오>의 실사판이죠. 제페토 역의 톰 행크스와 함께 벤자민 에반 에인스워스, 조셉 고든 레빗, 키건 마이클 키, 신시아 에리보 등과 함께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시계를 만들며 두문불출하는 목공 제페토.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와 꼭 닮은 나무 인형을 만든 뒤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요정님께 소원을 빌고 잠에 든 사이 피노키오는 진짜 아이처럼 살아 움직이게 되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생긴 활달한 꼬마 아이 피노키오를 기다리는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험의 연속이었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즈음부터 시작된 실사화 프로젝트는 디즈니 플러스라는 새로운 출구의 등장으로 더 큰 동력을 얻었습니다. 기껏 만들었더니 흥행도 평가도 박살이 나면 눈물이 앞을 가리겠지만, 디즈니 플러스가 있으니 이제 최소한 흥행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죠. 지난 밤 발표된 신작들 중 <인어공주>는 극장, <마법에 걸린 사랑 2>는 스트리밍으로 향한 것만 봐도 대강의 그림이 나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피노키오>를 스트리밍으로 보낸 것은 의외의 선택이었습니다.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가 모여 디즈니의 역사를 쓴 작품을 다시 만들었는데, 공개된 예고편만 보아도 번쩍번쩍한 볼거리나 말하는 여우 등 한 장면 한 장면이 거대자본의 향기가 폴폴 나는 영화였으니까요. 주력 타이틀처럼 보이는 영화에 붙는 '스트리밍 공개'가 우려의 원인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피노키오>는 1시간 45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어쩌면 디즈니 본인들조차 그를 어느 정도 인정했음을 증명합니다. 신선함과 새로운 것으로, 독창성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영화가 그저 실사화를 기다리는 고전 리스트에서 줄 쭉 그어 사라지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화려한 이름들부터 발전한 기술까지, 누구도 구원자가 되지 못했죠.



 <피노키오>의 줄거리가 생소한 사람은 없습니다. 남자 아이를 빼닮은 인형이 생명을 얻고, 진짜 사람이 되려면 '양심'으로 통칭되는 분별력과 도덕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 피노키오는 순수함과 순진함의 경계선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 법과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배웁니다.


 이번 <피노키오>는 원작의 기승전결을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움직이게 된 첫날부터 피노키오는 여우와 고양이를 만나 스트롬볼리에게 향하고 마부를 따라가 기쁨의 섬을 거칩니다. 거기서 빠져나온 뒤 몬스트로라고 불리는 바다 괴물의 뱃속으로 향하죠. 각색된 장면이나 추가된 캐릭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사건의 구성이나 순서 등은 애니메이션을 답습합니다.



 같은 영화를 그대로 영화로 다시 만드는 경우, 제아무리 2D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 한들 각본상의 차이가 없으면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웬만한 기술력과 디자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캐릭터의 외양에서부터 원작 팬들의 외면을 받기도 십상이구요. 이번 <피노키오>는 제페토, 피노키오, 지미니 크리켓만 보아도 3D 캐릭터와 실사를 어중간하게 오가며 주춤합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어쩌면 이번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건의 구성입니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고리는 모자란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시피하죠. 여우를 따라간 다음 장면이 스트롬볼리 서커스단의 공연 장면이라거나, 기쁨의 섬에서 수영을 시작한 다음 장면이 제페토의 집에 걸어서 도착하는 장면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시간은 얼마나 지난 건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작의 줄기가 되는 덩어리들만 턱턱 가져와 이것이 피노키오의 실사화라는 티를 내는 데 급급합니다. 인물의 감정이나 특징 등 이 덩어리들 간 제대로 연결되는 것이 없어 영화의 지향점을 파악하기가 어렵죠. 개연성 쪽은 더 처참한데, 섬을 수영해서 빠져나온 직후 바다를 못 건너겠다며 갈매기의 도움을 받더니 그 다음 장면은 모터 달린 듯 빠른 다리로 헤엄쳐 바다 괴물을 앞지릅니다. 관객을 바보 취급하죠.


 각색하거나 새로 집어넣은 설정들은 기존의 것들과 전혀 맞물리지 않아 도로 통편집해도 전혀 무관합니다. 서커스단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는 파비아나만 해도 의족 등 설정 욕심만 부릴 뿐 캐릭터의 쓸모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하루아침에 스트롬볼리를 담궈서(?) 새 주인이 될 잠재력이라면 마부보다 무시무시한 추진력의 소유자가 되겠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는 의외로 맵고 독한 영화였습니다. 유괴, 인신매매, 술, 담배와 같은 소재부터 어린이들의 음주와 흡연, 몸을 비틀며 당나귀로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 마냥 어린이들만을 위한 행복한 영화는 아니었죠. 소위 말하는 충격 요법을 노렸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는 세상 물정 모르고 순수한 피노키오의 모습과 대비되어 영화의 가르침과 메시지를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고래를 웬 크라켄급 바다 괴물로 바꾸는 등 온갖 각색은 제멋대로 할 돈은 있으면서 이런 걸 보여줄 용기는 없습니다. 원작에서 기쁨의 섬에 들어간 피노키오는 실제로 비행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와 다름없는 행동을 한 뒤 뉘우치지만, 여기서는 그저 자아 확립조차 되지 않아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캐릭터죠.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가는 상황에 굳이 움직여서 추락을 자초합니다.



 기쁨의 섬에서 튀어나오는 루크 에반스의 마부는 그린스크린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CG로 눈을 의심케 하고, 어영부영 가다가 셔터를 홱 내려 버리는 결말도 무책임하죠. 톰 행크스가 제페토를 연기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건질 것이 거의 없는 영화입니다. 곳간도 지갑도 두둑하니 이런 것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이어가고는 있으나, 이러다간 유산이 바닥나는 것도 한 순간이겠네요.

작가의 이전글 <탑건: 매버릭>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