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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드래곤볼 슈퍼: 슈퍼 히어로> 리뷰

객원 이벤트 매치


<드래곤볼 슈퍼: 슈퍼 히어로>

(ドラゴンボール超 スーパーヒーロー)

★★☆


 2019년 2월 <브로리>로 4DX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추가한 <드래곤볼>이 돌아왔습니다.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의 각본을 바탕으로 코마다 테즈로가 감독을 맡았고, 특이하게도 소니픽쳐스의 손을 잡아 수입되었죠. 당초 일본에서는 올해 4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토에이 애니메이션 서버 해킹 사건이 터지면서 2개월 정도 밀렸고, 국내엔 거기서 3개월을 더 기다린 9월 14일로 개봉일을 잡아 두었습니다.



 일찍이 손오공이 괴멸시킨 악의 조직 레드리본군. 인조인간들을 양산해 인류의 위기를 초래했던 게로 박사의 의지는 천재 소년 헤도에게 이어졌고, 그 결과 새로운 인조인간 감마 1호와 2호가 탄생합니다. 불온한 움직임을 한 발 먼저 감지한 피콜로는 레드리본군 본부에 잠입하지만, 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최종 병기의 존재를 알게 되며 인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위협을 마주합니다.


 새로운 캐릭터보다는 익숙한 얼굴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큰 효율을 거두죠. 프리저를 데려온 <부활의 F>와 브로리를 데려온 <브로리>에 이은 이번 <슈퍼 히어로>는 레드리본군과 인조인간 프로젝트로 회귀합니다. 새로운 얼굴들이 몇 등장하기는 하나, 대부분은 기존 캐릭터들의 파급력이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죠. 오래된 시리즈의 최신 극장판이 내릴 수밖에 없는 결정입니다.



 이 때 이 새 인물을 기존 인물들만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세계관에 멀쩡한 자리를 하나 내 주어야 하는데, <드래곤볼>처럼 힘이 곧 질서인 곳에서는 이게 영 쉽지가 않습니다. 무턱대고 강하게 만들었다가는 기존의 균형을 뒤흔들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힘이 아닌 개성으로 승부를 보기엔 기존 인물들과의 접점을 만들기가 어렵죠. 그 미묘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의 극장판은 기존 시리즈를 바탕으로 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극장판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긴 만들어야 하니 뭘 내놓기는 하는데, 이것이 예전 인물들을 망쳐서는 안 되니 메인 스토리와는 무관한 이벤트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조금 치사다하고 볼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하지 못하겠다면 남은 방법은 아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기존 주인공들만큼의 강자를 뚝딱 만들어내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고, 그럼 지금껏 주인공을 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면 되죠. 최근 드라마 시리즈로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마블 스튜디오가 선택한 전략이기도 하구요.


 매번 손오공과 베지터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바퀴는 그 둘이 아닌 손오반과 피콜로를 향합니다. 손오반이야 예전에도 몇 번 주인공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해도, 피콜로는 소위 말하는 전투력 측정기로 전락한 지 오래인 참에 꽤 과감한 선택이죠. 거기에 오반의 딸인 팡을 더하고 레드리본군과 게로 박사의 후계자들을 내세우면 대충 균형추가 맞아 보이기는 합니다.



 애초에 줄거리를 기대하는 영화는 딱히 아닙니다. 직전의 <브로리>만 해도 영화 내내 폭주하는 브로리와 맞서 단계별 변신을 반복하는 오공과 베지터의 대결이 전부였죠. 몇 대 때리다가 유리해지는가 싶으면 브로리가 고함을 치면 흠씬 두들겨 맞고, 머리색이 변하는 변신을 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몇 대 때리는 순서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엄청난 눈요기와 볼거리 덕에 환호를 받았구요.


 포장하자면 그것이야말로 <드래곤볼>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었죠. 등장인물들도 몇 되지 않겠다, 그저 무조건 직진하며 초사이어인과 에네르기파를 번갈아 눈 앞을 번쩍이는 것도 과감한 결단입니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의 최대한을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드래곤볼>을 찾아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원하는 바를 확신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결과물이었죠.



 그런데 이번 <슈퍼 히어로>는 둘 다 실패했습니다. 헤도와 감마 1호, 2호, 레드리본군을 비롯한 새로운 인물들은 주인공 일행의 전진을 위해 선악에서의 줏대조차 없이 휘둘리며 소모됩니다. 오반이나 피콜로와 싸워야 하니 전투력도 기존의 최강자 라인에 비하면 심심한 수준인데, 신념이랄 것도 없이 말 몇 마디면 끝날 이야기를 굳이 끌었다고 생각하면 더 허무할 따름이죠.


 결정적으로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악당'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레드리본군, 헤도, 감마 시리즈,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종병기까지 따져 봐도 다들 생각이나 행동 중 한 쪽이 빠져 있죠. 힘이 있는 사람은 추진력이 없고, 목적이 있는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마당에 한 팀이라고 뭉쳐 주인공들의 뻔한 대사에 금이 가는 사이인지라 오합지졸이 따로 없죠.



 오반과 피콜로 쪽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그걸 제대로 해내야 하는데, 그마저도 팬서비스는 해야 한다는 일말의 고민과 충돌해 러닝타임을 잡아먹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오공과 베지터의 분량은 통째로 들어내도 전혀 무관하죠. 이런 지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아주 최소한의 연결점이나 등장 시점은 준비했어야 하지만, 왜인지 그런 지점에서는 또 냉정합니다.


 다행히도 오반과 피콜로, 팡을 비롯해 주목을 시켜줘야겠다고 마음먹은 원년 멤버들의 활약은 뛰어난 편입니다. 감정적 동요를 겪고 고함을 지르면 몸 어딘가의 색이 변하면서(...)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힘을 얻는 과정은 여전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드래곤볼> 시리즈만이 할 수 있고 또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죠. 오반과 피콜로의 역사 깊은 유대는 여기서도 유효하구요.



 초전박살의 향연으로 의외로 만족도가 높았던 지난 영화들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신작입니다. 난데없는 세계관 최강자급 인물들을 턱턱 만들어내며 팬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서인지, 여러모로 눈치를 보며 규모를 이리저리 조절한 것처럼 보이죠.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예상보다 미미했던 극장 수입이 북미 쪽에서 대박이 터지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데, 후속편들의 방향성에도 분명한 영향을 끼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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