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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수리남> 리뷰

합으로 유지하는 흩날림


<수리남>

★★★


 2018년 <공작> 이후 4년만의 연출작으로 돌아온 윤종빈 감독의 신작, <수리남>입니다. 한 몸처럼 함께한 하정우를 주인공으로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 등이 이름을 올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죠. 제작비로는 총 350억 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졌으며, 당초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코로나를 비롯한 사정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지난 9월 9일 공개되었네요.



 평범한 삶을 위해 오늘도 가장 역할을 해내려 노력하는 인구. 어느 날 친구 응수의 제안으로 남미의 외딴 나라 수리남에서 홍어 수입 사업을 시작하지만, 현지에서의 이권 다툼은 물론 꿈도 꾸지 못했던 마약 문제와 얽히며 사면초가에 몰립니다. 그런 그에게 각자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국정원 역사에 남을 마약왕 검거 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죠.


 복작대는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던 윤종빈 감독의 마약왕 드라마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습니다. 모인 이름들만 보아도 작품성이 어찌됐건 일단 직접 확인하고 싶죠. 회당 한 시간 정도의 6부작이면 러닝타임에 큰 부담도 없을뿐더러, 이번엔 추석 연휴와 딱 맞게 공개된 터라 한 번에 몰아 보기에도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타이밍이었습니다.



 마약왕처럼 뒷세계의 전설적인 인물을 다루는 경우 대부분은 비교적 평범한 관찰자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여기서는 하정우가 맡은 인구가 되겠죠. 매 에피소드 시작점마다 나오듯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수리남에서 활동했던 마약왕을 잡기 위한 일반인과의 공조'를 제외하면 전요환의 인물 설정이나 최후반부의 작전 마무리 등 극적 요소들은 꽤 많은 각색을 거쳤습니다.


 기본적인 얼개는 감독의 전작인 <범죄와의 전쟁>과 꽤 비슷합니다. 자신의 삶이 영 비루해 자식들에게는 좀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었던 가장을 주인공으로, 성공과 전진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도덕적 한계선은 분명하게 갖고 있기에 발생하는 내적 외적 갈등을 다루죠. 거기서는 악역이 되었던 하정우가 여기서는 선역이 된 것이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각자의 목적을 갖고 한 곳에 숨어든 사람들이 서로의 의중을 간파하려 벌이는 심리전이 주된 동력이 됩니다.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목숨이 오가는 공간에서 매 순간 자신은 물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명줄을 놓고 도박을 하듯 진행되죠. 인구가 아는 것, 요환이 아는 것, 창호가 아는 것,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아는 것이 모두 다르기에 사건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조직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려는 첩보전, 천하를 호령하는 세도가를 궁지에 몰아 잡아넣으려는 세력전이 더해집니다. 마침 전요환 역의 황정민은 <신세계>에서 조직 간부 정청을 연기하며 전자를, <아수라>에서 안남 시장 박성배를 연기하며 후자를 훌륭하게 선보인 적이 있었죠. 물론 같은 익숙함에도 구관이 명관이라며 만족할 수도, 또 다시 재현되는 기시감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되는 동력은 대부분 화려한 출연진의 연기력 덕을 톡톡히 봅니다.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유연석, 조우진, 장첸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큰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선과 악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이 있겠죠. 정확히는 순수 선이나 순수 악이 아닌,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얼마든지 균형추를 바꿀 수 있는 입체적 인물들을 표현합니다. 드라마의 다음 걸음을 쉽게 추측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죠.



 다만 이를 제외한 검거 작전 자체는 꽤나 허술한 편입니다. 상업적 긴장감을 확보하려 꽤 큰 각색을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장면에서는 입 조금 잘못 놀려 죽을 위기를 겪었던 사람이 다른 장면에서는 적진 한가운데에서 작전 진행용 통화와 문자를 아주 자유롭게 하는 등 무언가 더 큰 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밑밥을 까는 건가 싶을 정도로 헐렁한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죠.


 평범함에 수렴하는 가장이었던 인구는 유도로 다져진 기본기가 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업어치기 원툴의 인간 병기가 되어 갑니다. 마약에 신앙까지 더해 전요환이라는 인물의 광기를 극대화하려던 시도는 여신도들 장면처럼 일회용으로 몇 개 써먹고 설정 구멍으로 남는 얄팍한 수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생각보다 치밀하지 못하다는 지적의 답변으로 실화가 그랬다는 변명은 딱히 통하지 않습니다.



 무대의 크기에 비하면 사건이 다소 작은 편입니다. 여러 국가의 여러 기관이 공조해 세기의 마약왕을 잡아넣는 희대의 작전치고는 주요 단계를 움직이는 결정적 지점들이 비교적 어설프거나 허무하죠. 인구가 똑똑한 건지 요환이 멍청한 건지 모를 와중 무언가 우당탕 지나가서 그림이 완성되긴 하는데, 크지만 불필요한 설정과 인물을 덜어낸 뒤 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탄탄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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