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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음표로 동여매고 눈물로 풀칠한


<인생은 아름다워>

★★★


 2018년 <국가부도의 날>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최국희 감독의 신작,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당초 2020년 말 개봉을 확정짓고 극장 내 광고까지 나오던 영화가 한 번 연기를 시작하더니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당도했네요. 류승룡과 염정아를 필두로 옹성우, 박세완, 박영규, 염혜란, 심달기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목이 제목인 터라 이리저리 섞이는 이미지들이 많죠.



 무뚝뚝한 남편 진봉과 무심한 아들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세연.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무상한 인생에 서글프고 억울해진 세연은 문득 떠오른 자신의 첫사랑을 찾겠다고 선언하죠. 그렇게 세연은 이름 석자만 가지고 남편과 함께 무작정 전국을 누비게 되고, 둘은 가는 곳곳마다 투닥대면서도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를 되짚으며 추억에 잠깁니다.


 평생 내가 누군지 파악할 여유조차 없이 숨막히게 살아 왔는데 다다음 달이면 죽는다고 합니다.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가고 싶은 것도 가야 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뭐만 하면 죽을 것처럼 받던 눈치 따위는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여운 가득히 끝나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첫사랑의 추억이 떠올랐으니, 원수같던 남편을 좀 써먹을 때가 왔습니다.



 얼핏 보면 2011년작 <써니> 생각이 조금 나기도 합니다. 첫사랑을 찾는 소재만 놓고 보면 한창 유행했던 <응답하라>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이런 영화들은 보통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추억 가득한 눈망울로 바라보는데, 보통 주먹으로 다져진 우정(?)이나 몽글몽글 서투른 사랑이라는 두 길 중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죠. <인생은 아름다워>는 당연히 후자가 되겠구요.


 거기에 뮤지컬을 더합니다. 할리우드 쪽이야 손에 꼽는 명작들도 많지만, 한국 영화들 중엔 떠올리기가 쉽지 않죠. 마침 똑같이 2006년에 개봉된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이 있었으나, 아무래도 거대자본 상업 영화에서 시도하기에는 부담이 있었죠. 그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CJ의 <영웅>과 롯데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시에 뮤지컬에 도전했는데, 시국과 맞물려 서로 최초 타이틀이 애매해졌습니다.



 이에 <인생은 아름다워>는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얼핏 지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말해 자체 창작곡들을 등장시키는 일반 뮤지컬들과 달리 기존에 있었던 대중 가요들을 묶어낸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하죠. <인생은 아름다워>는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그 때 그 시절의 노래들을 개사해 러닝타임을 채우구요.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있다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상황이나 기억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붙이는 구성입니다. 연애 초기를 책임졌던 극장 앞, 회사 동료들과 회포를 푸는 술집, 학창 시절의 설렘을 안고 걸었던 길 등 특정한 장소를 지날 때마다 추억거리가 하나씩 소환되죠. 시절의 장벽만 넘는다면 너무나도 보편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지라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 무난함이 <인생은 아름다워>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세연은 '그 시절을 그렇게 지나 지금 이렇게 사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갖고 있거나 해 보았을, 혹은 갖고 싶거나 해 보고 싶었던 기억들을 모은 결과물입니다. 그를 최대한 극적으로 가공하고 또 필요할 땐 과장하여 다루는 것이 이번 영화구요. 때문에 하나의 인격체보다는 상념쯤에 가까워 보이죠.


 보통 다른 영화들은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의 친구, 연인, 혹은 적에게 이 설정들을 분산시킵니다. 좀 굵직한 것들은 주인공에게, 자잘한 것들은 주변 인물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시대라고 포장하죠. 그러나 <인생은 아름다워>는 본인이 뮤지컬 영화이기도 함을 잊지 않으려는 듯 스포트라이트를 아주 소수의 인물들에게만 유지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에 접어들면 인물과 사건 사이에서 표류합니다. 주인공인 세연은 수많은 기억들을 담는 그릇으로 기능하는데, 그 기억이 똑 떨어진 현재로 돌아오면 존재의 이유가 흔들립니다. 실컷 첫사랑 찾는 이야기로 흘러가던 영화가 최후반부엔 갑자기 우리네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며 호로록 커브를 트는 급작스러움도 바로 이 때문이죠.



 <맘마 미아!>처럼 한정된 노래들의 가사를 줄거리에 녹여내야만 하는 구성이 아님에도, <인생은 아름다워>는 무한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스스로 선을 그어 버린 느낌입니다. 그 선은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울려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그은 선이죠. 주인공의 시한부 선언으로 서서히 커져 가던 감정의 불씨에 기어이 따로 기름을 가져와 붓고 라이터까지 켜고 있으니 산통에 금이 갑니다.


 세연에게만 집중하는 것과 세연이 아닌 인물들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다름에도, 영화는 둘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영화는 매일같이 동사무소에서 민원에 시달리며 똑같이 무심한 아들딸을 키우고 있는 진봉 쪽으로는 빳빳한 고개를 돌리지 않죠. 그러면서도 좋았던 지난날엔 진봉의 역할도 크다 보니 영화가 하려는 말과 보여주는 화면의 미묘한 이질감이 계속해서 남습니다.



 마무리 단계에서 그처럼 치우친 행적들을 수습하려는 모습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쯤엔 앞서 언급한 급작스러움이 이미 먼저 생겨난 뒤인지라 이마저도 녹록지는 않습니다. 장르가 장르다 보니 사운드 빵빵한 극장에서 보아야 진가를 느낄 수 있겠으나, 무기가 되어야 할 뮤지컬의 껍데기가 방패처럼 보이는 순간이 종종 있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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