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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리뷰

열 손가락 가득 치렁치렁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The Lord of the Rings: The Rings of Power)

★★☆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용감하게도 '21세기 최고의 판타지 시리즈'라는 수식을 달았습니다. 21세기가 시작하자마자 들어간 호칭치고는 꽤 대담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나머지 80년도 은근 버티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죠. 그만큼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성은 어마어마했고, 그 연장선인 아마존 프라임의 <힘의 반지>엔 전 세계적인 기대가 걸렸습니다.



 갈라드리엘, 엘론드, 이실두르, 그리고 켈레브림보르, 두린, 노리, 브론윈, 테오. 익숙하고도 새로운 인물들은 가운데땅에서 악의 부활을 마주합니다. 안개산맥의 가장 어두운 곳부터 린돈의 장엄한 숲까지, 그리고 누메노르 섬 왕국부터 지도의 가장 먼 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왕국과 인물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다한 후에도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유산을 남길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미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말이 전혀 과언이 아닙니다. 단순히 제작비만 놓고 보아도 4억 6천만 달러를 넘게 썼다는데, 10부작이니 그냥 나눠 보면 회당 무려 6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였죠. 물론 나머지 시즌에 쓸 세트장이나 소품 등도 한 번에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무슨 구실을 붙여도 천문학적인 금액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서사시가 되는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이번 <힘의 반지> 또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와중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요정과 난쟁이 왕국에선 엘론드와 두린이, 누메노르에서는 이실두르와 엘렌딜이, 털발족 거주지에서는 노리와 이방인이, 티라라드 마을에서는 브론윈과 아론디르가 각자만의 모험과 시련을 겪게 되죠.


 그 중심엔 바로 그 갈라드리엘과 바로 그 사우론이 있습니다. 사우론의 손에 친오빠를 잃고 복수심에 불탄 갈라드리엘은 모두가 죽었다고 믿는 사우론의 발자취를 쫓죠.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기는커녕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소와 냉대를 참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우론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운명적 대결을 기다리고 있죠.



 알려진 바에 따르면 <힘의 반지> 시리즈는 총 다섯 개의 시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비록 복잡한 저작권 문제가 얽혀 있긴 하나 분명한 원작도 있고,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되었기에 시청률이라는 절대적인 지표에 휘둘리는 것도 아니죠. 물론 시청자 수 혹은 누적 시청 시간 등 다른 지표들을 가져올 수는 있겠으나, 초기 반응이 시들하다고 해서 바로 접을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덕에 이번 첫 번째 시즌은 모든 사건의 도입부이자 모든 인물들의 소개로 가득합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덕에 인명과 지명을 비롯한 고유명사들을 처음부터 가르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시청자들을 그런 전문가로 상정하는 것도 안 될 일이죠. 때문에 한두 번 들어서는 기억조차 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하긴 해도, 모든 관계도를 아주 천천히 써내려갑니다.



 그것이 이번 <힘의 반지>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아주 느린 서론이죠. 보통의 드라마 시리즈처럼 매 에피소드마다 일종의 기승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10시간이 넘는 영화를 한 시간씩 쪼개어 열 번에 나누어 감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쪼개다 보니 일부 에피소드엔 강약 조절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에피소드와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죠.


 초반부엔 이렇다할 사건이 없으니 인물들의 개성과 예측할 수 없는 복선으로 집중력을 붙잡습니다. 당연히 주인공들의 주인공인 갈라드리엘의 어깨에 걸린 책임이 가장 크겠지요. 그러나 갈라드리엘은 이토록 거대한 시리즈의 주인공이 갖춰야 할 깊이와 동력을 모두 갖추지 못했습니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절대악을 처단하려 나섰을 뿐인데, 가진 판단력이나 그릇에 비해 받는 대접이 지나치게 융숭하죠.



 이실두르나 테오 등 곁가지로 진행되던 대부분의 이야기는 후반부에 갈라드리엘에게 흡수되는 구조입니다. 조금이나마 활약하는 것처럼 보였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결국 갈라드리엘의 그림자 아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죠. <왕좌의 게임>이나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그러한 것처럼(사실 둘을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요) 주인공이라는 짐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오르크, 요정, 난쟁이, 털발 등 종족의 특징을 제외한 채 순수히 인격들로만 따져 보면 예상을 벗어나는 신선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편인데, 이 뻔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중심마저도 절대선을 향한 궁극의 신념 따위가 아닙니다. 차후의 성장을 예고한 갈라드리엘의 미숙한 선택의 연속이자 덩어리죠. 배후에서 누가 어떤 사소하고 위대한 서사를 써내려가더라도 그녀의 장작이자 재료가 될 뿐입니다.



 심지어 언급한 작품들은 워낙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사연과 개성의 인물들이 넘쳐났던 덕이고, <힘의 반지>에겐 그러지 못해서 내려야만 하는 차선책에 가깝죠. <반지의 제왕>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었던 호빗의 순수한 눈을 관객의 시선과 일치시켜 미지의 세계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다면, <힘의 반지>는 많은 면에서 그와 반대로 접근하는 통에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았던 다른 시리즈들에 비하면 오히려 머릿수가 아주 많지 않음에도 비중 배분도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엘론드와 두린은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했고, 털발족이나 브론윈, 아론디르 쪽은 절반 이상을 쳐내도 무방했습니다. 보여주어야 하는 것들은 차후 풀어낼 떡밥 등을 이유로 숨긴 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써 버렸죠.



 그것이 <힘의 반지>를 만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이번 시리즈의 최대 강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회당 600억 원을 쏟아부은 <반지의 제왕> 세계관의 영상화죠. 하나의 지역, 왕국, 세상을 한 땀 한 땀 창조하며 모든 팬들이 상상의 나래로만 봐 왔던 광경을 화면에 재현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눈을 고정한 채 팬심을 불태우며 열광할 사람들은 예상만큼 많지 않았죠.


 대략적인 관계도가 완성된 뒤의 후반부 에피소드들은 본격적인 흥밋거리들을 꺼내놓기 시작하지만, 그에 다다르기까지 견뎌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깁니다. 강한 장점들을 더 강한 단점이 가리는 격이죠. 역사적인 원작을 토대로 한 작품들은 기존 팬들과 새로 유입될 팬들 사이에서 운명적 갈등을 겪는데, 어느 한 쪽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어쩌면 필연적인 한계입니다.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는 끝없는 리스트를 적어 한아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누구를 통해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는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마구잡이로 늘어놓고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눌러 놓으니 몇몇 순간엔 박자가 맞아 보일 때도 있으나, 대부분은 분위기와 길이가 들어맞지 않아 불협화음이 이어지죠. 걸린 이름들이 워낙 크기는 했지만, 그를 떼어내고도 썩 좋은 만듦새는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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