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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블랙 아담> 리뷰

힘이 남아돌아 허튼 짓


<블랙 아담>

(Black Adam)

★★☆


 드웨인 존슨을 영입한 DC 유니버스의 신작, <블랙 아담>입니다. 2020년 4월부터 촬영되었으나 재촬영 등을 거치며 최종 마무리는 2021년 7월까지 미뤄졌고, 개봉까지는 1년이 더 걸렸네요. <정글 크루즈>의 자움 콜렛 세라와 드웨인 존슨이 재회하고 보디 사봉기, 세라 샤히, 피어스 브로스넌, 알디스 호지, 퀸테사 스윈델, 노아 센티네오, 비올라 데이비스, 마르완 켄자리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5000년 전 번성했던 도시 칸다크. 야욕으로 가득했던 독재자는 금지된 광물로 왕관을 만들어 악마들의 힘을 손에 넣으려 하고, 백성들은 그의 폭정에 스러져 갑니다. 그들 사이에서 피어난 희망은 이내 여섯 신들의 힘을 합친 초인을 부르지만,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는 정의감이 아니라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인터갱이라는 신흥 집단의 그림자 아래에 놓인 오늘의 칸다크에 그가 돌아옵니다.


 2000년대 초반, 코믹스 원작 영화들이 지금의 명성과 위용을 자랑하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블 코믹스 원작이라는 말도 생소해 '마벨 코믹스' 원작이라는 소개도 허다했고, 쫄쫄이 옷을 입고 만화영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며 배우 커리어의 후반기 쯤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죠. 그럼에도 견고했던 팬층 덕에 아주 경시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국민 영웅 취급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쯤은 지금도 회자되는 고전인지라 논외로 치고, 대표적으로 <판타스틱 4>와 <고스트 라이더> 등이 있었죠. 지금에야 마블 스튜디오가 직접 다시 만든다고 하여 엄청난 기대를 안고 있지만, 그 땐 만화 캐릭터들을 실사로 고이 옮긴 볼거리를 무기로 전진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뻔한 권선징악 전개에서 반전 한두 개 정도 넣으면 상위 한 자리 퍼센트는 가져갈 수 있었죠.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한다고들 합니다. <다크 나이트> 쯤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은 수퍼히어로 영화들의 수퍼히어로들은 이제 단순한 영웅이 아닙니다. 각자의 사연과 고뇌를 안고 육체적인 적과 정신적인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알아들어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맨 몸과 맨 머리(?)로 달랑달랑 들어가 딱 즐기고 나올 수 있는 영화는 점차 드물어졌죠.



 이번 <블랙 아담>은 정확히 그 지점을 겨냥한 영화입니다. 20년을 주기 삼아 어지럽고 복잡해진 수퍼히어로 장르의 원점 회귀를 노린 작품이죠. DC 유니버스의 영웅이기는 하지만, 그 어떤 예습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전의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그랬듯, 처음 보는 고유명사들이 남발되는 와중 초능력 하나로 모든 악당들을 때려잡는 우리의 주인공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약간의 비틀기는 있습니다. 영화가 소개하는 블랙 아담은 결코 일반적인 영웅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 세상을 쓸어버릴 수 있는 신의 힘 그 자체죠. 사용하기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바라보기에 따라 구원자가 될 수도 있고 파괴자가 될 수도 있는 힘입니다. 수백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역사적 전쟁에서도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믿는 신이 옳음이자 정의라고 여기며 전장에 나섰습니다.



 그런 그와 맞서는 세력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입니다. 익숙한 얼굴 단 한 명도 없이 갑자기 무더기로 튀어나오는데, 본인들도 서로 처음 보는 자리인지라 어색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호크맨, 닥터 페이트, 아톰 스매셔, 사이클론이 뭉친 이들은 세상의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목적이고, 5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블랙 아담은 지금 시점에서 그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인물이죠.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블랙 아담이 맞섭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볼거리입니다. 예전엔 볼거리를 기본으로 한 채 각본에 남은 힘을 쏟는 것이 일반적인 수퍼히어로 영화였다면, 요즘엔 그 반대가 되었죠. <블랙 아담>은 그에 맞서며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초능력 액션으로 화면을 수놓습니다. 난무하는 슬로모션만 봐도 잭 스나이더를 비롯한 여러 이름들이 뇌리를 스치죠.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처음 보는 이름과 얼굴뿐이니, 캐릭터의 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는 볼거리라고 판단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사연과 이야기를 쌓아올려 사람을 만들어내기에는 갈 길이 너무 머니 과감히 포기합니다. 싸우는 스타일만 보아도 다음 전투가 벌어진다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싸우고 있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모두 초면인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흐름이죠.



 본격적인 문제는 이 영화의 초점에서 시작됩니다. 영화의 제목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아니라 <블랙 아담>입니다. 블랙 아담은 그들과 달리 능력이나 수트로 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저 강력하고 또 강력해서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피부는 단단하고 완력은 세며 손에서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번개가 나가는 것이 전부죠. 하늘을 날며 주먹과 번개를 쏘는 광경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 년 전 독재자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가족을 잃은 인물인데, 사연에 비해 얻은 능력이 지나치게 초월적이죠. 손가락만 까딱하면 평생을 꿈꾸던 복수 따위는 한 방에 끝이 나 버리니 그 뒤로 쌓아갈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이 바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멤버들의 능력과 이야기죠.


 닥터 페이트와 호크맨의 우정, 사이클론과 아톰 스매셔의 러브라인 등이 뜬금없음을 감수하고도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자기들끼리야 안 지 오래되어 각별하고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각별하다는 핑계는 댈 수 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블랙 아담이나 누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의 중심이 되는 블랙 아담 이야기는 할 것이 없으니 시선을 돌리고 시간을 끕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 주인공들이 끼어듭니다. 칸다크의 일반 시민을 대표하는 엄마 아드리아나와 아들 아몬이죠. 포스터 왼쪽 아래 구석에 있는지도 모르게 들어간 저 둘은 모든 예고편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지만, 정작 극중에서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멤버보다 많은 비중과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갑니다. 처음 보는 영웅들 이야기만 듣기에도, 이들의 눈요기를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이들이 가득합니다.


 아무런 인간적 개성도 없이 온갖 신파와 전형성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이 둘은 수퍼히어로들 사이에서 더욱 초라합니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블랙 아담의 대립만 보아도 되는데, 어쩌면 그것만 보는 것이 훨씬 좋은데도 굳이 이들을 계속 이야기에 끼워 팔죠. 심지어 따져 보면 극중 인물들이 처하는, 극중 칸다크가 처하는 모든 위기는 그들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인디아나가 없었더라도 나치가 성궤를 찾아내 모두 죽는 결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이 생각납니다. 인디아나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다리는 영웅이자 주인공이기라도 하지, 아드리아나와 아몬은 스스로의 분량에 도무지 감사할 줄 모르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죠. 호크맨과 닥터 페이트가 끝내줄수록 이 둘의 그림자도 같이 커져 그들을 기어이 집어삼킵니다.


 억지로 잡아늘려 <터네이셔스 D>까지 참전시킨(...) 최후반부 시퀀스는 재촬영분을 편집하다가 오디오를 죄다 날려 먹었는지, 입과 목소리가 충격적으로 따로 노는 광경까지 보여줍니다. 전개를 보아도 이 영화의 제목으로 정녕 '블랙 아담'이 적절하긴 한지 고민케 하죠. 그래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블랙 아담인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인지, 칸다크인지 끝까지 결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눈 돌아가는 거대자본 액션은 근래의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초심의 강점이었습니다. <블랙 아담>은 그를 새삼스레 꺼내들어 마음껏 전장을 누비지만, 거기서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리는 순간 무너지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가만히 앞만 보고 싶어도 여기 좀 보라는 듯 귀를 간지럽히는 구멍들이 너무 많죠. 그만큼 장점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나쁜 판단으로 가득하다는 반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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