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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스트레인지 월드> 리뷰

이상한 세상 대모험


<스트레인지 월드>

(Strange World)

★★★


 작년 11월 <엔칸토> 이후 1년만에 돌아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신작, <스트레인지 월드>입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감독 돈 홀과 작가 꾸이 응우옌이 공동 감독을 맡았고, 제이크 질렌할, 자부키 영-화이트, 데니스 퀘이드, 가브리엘 유니온, 루시 리우, 앨런 튜딕 등이 성우진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1억 2천만 달러를 들여 지난 11월 23일 개봉되었네요.



 전설적인 탐험가 예거 클레이드의 아들 서처 클레이드. 25년 전 미지의 장벽 너머를 찾아 사라진 아버지를 뒤로한 채 조국을 구원할 에너지원이자 식물 '판도'를 발견한 공적으로 국가적 위인이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영원할 것만 같던 판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충해에 시달리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아들 이든, 부인 메리디언, 동료 칼리스토 등과 함께 영 내키지 않는 모험을 떠납니다.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가득한 모험입니다. 비슷한 영화를 대라고 하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꽤 많은 영화들을 줄줄이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죠. 보통 특이한 동식물이나 초현실적인 자연법칙 등으로 개성을 확보하게 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마치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변신 로봇들에 익숙해지듯 아주 찰나의 눈요기 이상을 제공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사실 '스트레인지 월드'라는 제목에서부터 딱히 신선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이상한 세상'이라니, 지금까지 나온 동종 영화들의 편 수를 생각해 보면 작명에서라도 약간의 노력은 더 기울였여야 할 것 같지요. 아마 후대의 모험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쥘 베른의 1870년대 책도 <해저 2만리>라는 제목으로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말입니다.


 여느 모험물이 그렇듯, <스트레인지 월드> 또한 주인공들의 여정을 가족애와 녹였습니다. 당췌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생각조차 없는 것 같은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죠. 변주라고 한다면 할아버지까지 3대를 등장시켜, 어릴 적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느새 자신의 모습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깨달음이 있겠습니다.



 거대자본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답게 볼거리는 풍성하고 다채롭습니다. 마치 <아바타>가 그러했듯 하나의 생태계를 통째로 창조하여 시각화했는데, 생태계 자체의 설득력보다는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외양에 조금 더 치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만의 강점을 십분 이용하죠. 어디서 무엇과 맞닥뜨려도 몽실몽실하고 따스해 보여 눈이 꽤 포근합니다.


 게다가 이 디자인적 특성들이 후반부의 전개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적어도 아무런 방향성 없이 그저 상품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과거 디즈니 캐릭터들에 비하면 최소한의 도의는 지킨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생각나는 사례들로는 <겨울왕국 2>의 도마뱀 브루니나 <스타 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포그 정도가 있겠네요.



 그러나 그를 제외하면,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서처와 이든을 비롯한 주인공의 모험 자체는 꽤나 평이한 편입니다. 분명 수십 년 동안이나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야만의 세계였던 곳이 주인공들의 임무 성공을 위해 깜찍하게 변모하죠. 물론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해야 하는 순간도 많지만, 그렇기엔 먼저 나서서 진지할 때도 더러 있는 더라 마냥 용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본 자체가 후반부에 드러나는 본격적인 실체에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거와 서처, 서처와 이든, 클레이드 패밀리, 아발로니아의 미래 등 지나치게 많은 갈등이나 관계를 단 하나의 고리에 걸어 지탱하고 풀어갑니다. 비교적 무관해 보이는 것들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박수 짝짝 치고 해결되어 버리는데, 칼리스토나 메리디언 등은 선악과 주조연의 경계에서 이도저도 아닌 신세가 되죠.



 또한 주인공인 이든을 비롯한 탐험대 인원 모두(심지어는 강아지까지) 다분히 의도적인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캐릭터를 집단의 대표로 기능하게 하는 접근은 충분히 위험하죠. 해당 캐릭터가 절대적인 선이나 옳음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칫 집단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오인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정말 그렇게 마냥 착하게 묘사하면 캐릭터의 매력이나 개성이 밋밋해집니다.


 그런 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선언이나 다짐은 영화 밖을 향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든은 농부가 되라는 아버지와 탐험가가 되라는 할아버지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테니 강요하지 말라고 소리치죠. 문자 그대로만 놓고 보면 자신의 꿈을 좇는 아들의 외침이지만, 주인공 집단에서 아버지 서처와 할아버지 예거만 백인 남성 캐릭터인 터라 당연히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주인공 일행의 모험과는 줄기가 분리되어 있는지라 서로의 양분을 빼앗습니다. 나아가 이 모험마저도 사실은 더 거대하고 내밀한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전물로 전락할 여지가 있죠. 영화의 초점이 서처의 모험에서 이든의 전진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딱딱하고 부자연스럽다는 결론인데, 단순한 모험물로는 나쁘지 않았던 터라 아쉬움이 한 발짝 더 나아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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