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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더 메뉴> 리뷰

셰프 특선 차례상


<더 메뉴>

(The Menu)

★★★★


 2011년 <당신을 몇번째인가요?(What's Your Number?)> 이후 <왕좌의 게임>, <쉐임리스> 등 TV 시리즈로 둥지를 옮겼던 마크 미로드가 장편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랄프 파인즈,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가 뭉친 <더 메뉴>죠. 예고편에서부터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와 서스펜스로 눈길을 사로잡을 작품으로, 오는 12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외딴 섬에 위치한 최고급 레스토랑 호손. 디너 180만 원, 단 12명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초대에 참석하게 된 타일러와 마고. 존경받는 셰프 슬로윅이 내놓는 예술적인 요리에 타일러는 환호하지만, 마고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짐을 감지합니다. 무언가 이상했던 분위기가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음이 서서히 밝혀지지만, 눈치챈 순간은 이미 늦었습니다.


 도입부에서 설명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는 물음표에서 출발해 받아들일 사람이 능동적으로 흡수하고 유추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비디오게임을 할 때 기본적인 조작과 방향을 알려 주는 튜토리얼을 별도로 구성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초반부 스테이지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게임이 있죠. <더 메뉴>는 단연 후자입니다.



 첫 장면은 선착장입니다.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남녀의 이름은 타일러와 마고입니다. 잔뜩 차려입고 배를 타러 와 있는데, 한 끼에 1250달러짜리 식사를 어렵게 예약해서 왔다고 합니다. 같이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오늘의 식사는 결코 흔한 기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주인공인 동시에 제 3자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게 되죠.


 배에서 간단한 캐릭터 소개를 겸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교차됩니다. 간단한 요깃거리로 오늘의 코스가 시작되는데, 타일러는 재료 하나하나의 이름을 줄줄 외면서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환희에 젖습니다. 반면 마고는 어설프게 타일러가 먹는 것을 따라하더니 괜찮다며 고개를 애써 끄덕이죠. 짧은 장면으로 캐릭터의 초기 방향성을 빚어냅니다.



 섬에 도착한 순간 서스펜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직원 숙소라며 보여준 곳은 이토록 명망 있는 레스토랑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협소한데, 직원들은 그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로 이어진 가족과도 같으며 셰프는 그들을 이끄는 영혼의 지도자로 묘사되죠. 이 사람들 좀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과 인상들이 하나둘씩 싹틉니다.


 <더 메뉴>는 바로 이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활용합니다. 단순히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계량하고 손질하죠. 지금 이 순간은 바로 다음 순간과 이어질 수도, 영화 전체를 관통할 수도, 앞의 장면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퍼즐 조각들을 가장자리가 아니라 가운데부터, 그것도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으며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갑니다.



완급 조절도 훌륭합니다. 물음표에 물음표를 더하는 구성은 자칫 기다리는 사람의 흥미를 한순간에 통째로 잃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적당한 순간에 일부를 해소해준 뒤 더하기를 이어나가야 하죠. 영화는 다양한 조연들을 활용해 주인공인 마고, 타일러, 셰프 슬로윅을 뒤로 미루고 있음에도 그를 눈치채지 못하게끔 시선을 유도합니다. 조연들의 물음표가 풀려나가는 것만 보아도 일단은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죠.


 각 테이블의 비밀과 사연이 하나둘씩 밝혀지며 관객들과 손님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영화가, 레스토랑 호손이 내놓으려는 진짜 이야기에 한 숟가락씩 가까워집니다. 표면적으로는 초면인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에 모으는 여느 영화들이 그러하듯, <더 메뉴>의 손님들 또한 특정한 군상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물들이죠. 다만 자신이 그러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불친절한 영화들 중 가장 친절한 영화는 접근하려는 의지부터 꺾어놓기도 하지만, 친절한 영화들 중 가장 불친절한 영화는 일종의 탐험심을 일깨웁니다. <더 메뉴>는 얼핏 불친절한 것처럼 보이는 와중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단서를 흘립니다. 감독이 곧 셰프가 되고 영화가 곧 요리라는 듯 이걸 보려고 돈을 낸 것이 아니냐며, 끝에서는 다 알게 될 거라며 독려하는 유머까지 준비되어 있죠.


 알게 모르게 산재한 유머는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서스펜스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마치 들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닫게 되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입 안에서 이렇게 어우러진 향과 맛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부재료와 같죠. 이처럼 영화는 스스로의 방향성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깨닫게 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능동적으로 나아가기. 종국에 완성되는 그림은 바로 이 능동적인 움직임과 이어집니다. 슬로윅의 표현을 빌리자면, 셰프는 평생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 한 입의 순간을 위해 연구와 수련을 거듭해 완벽을 추구해야 하죠. 그러나 슬프게도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피를 토해 가며 기울인 노력은 그 게으르고 나태한 입에게 과분하기까지 합니다.


 존중이란 상호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희미해져 버린 그 출발점을 찾기엔 너무나 지쳤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세세히 따져 가며 움직이기에 자신은 이미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오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결코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 그 이상을 증명해 왔고, 그 뜻을 기꺼이 따를 사람들도 내 곁엔 충분히 많습니다.



 지치고 시달린 뒤의 몽롱하고 멍한 상태에선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하늘에서 뭐가 떨어져도 두렵지 않은 바로 그 상태에서 왼손에 권력, 오른손에 능력이 있다면 벌어질 법한 심판의 장입니다. 내가 완전히 옳지는 않으며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감히 나보다 옳기에 그를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곧 법이고 규칙입니다.


 그런 광기의 순간에도 깊숙한 곳 나라는 주체가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출발선에는 허름한 뒤집개와 고기 패티가 있었고, 한 입 베어문 뒤 행복한 신음을 내는 손님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재능이 있음을 뿌듯해하던 내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꿈꾸던 모습이지만, 가끔은 그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앗아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설명되지 않아 가끔은 종교적이기까지 한 이질감을 무기 삼아 개연성의 빈 자리를 과감하게 건너뛰기도 하고, 손님들은 물론 관객들의 숨통까지 조이는 강렬한 비주얼과 연출로 의구심의 불씨마저도 짓밟아 없앱니다. 작품성과 상업성의 경계에서 양 쪽의 약점을 나머지 한 쪽의 강점으로 지탱했죠. 셰프 슬로윅과 감독은 정말로, 즐거운 저녁을 완성하기 위해 각자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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