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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자백> 리뷰

에두르고 서두른 진실


<자백>

★★★


 2009년 <마린 보이> 윤종석 감독이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자백>입니다. 일정대로 진행되었어도 대강 10년만의 신작이었으나 거듭된 연기로 3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졌네요. 게다가 우연찮게도 소지섭, 김윤진, 나나 모두 간만의 복귀작이었던 터라 더욱 기다리기가 아쉬웠을 거구요. 첫 촬영이 2019년 말이었음을 생각하면 본의 아니게 소위 말하는 창고 영화가 된 셈입니다.



 유망한 사업가 민호, 그런 그의 내연녀 세희. 큰 계약을 앞두고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걸려 온 전화에 민호는 한 외딴 호텔로 향하고, 같은 전화를 받고 먼저 와 있던 세희와 마주칩니다. 방 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괴한의 습격으로 정신을 잃고 깨어난 민호는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가 되고, 사건을 맡게 된 변호사 신애와 함께 무죄 입증을 위한 사건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기 시작합니다.


 줄거리가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면 본인의 기억력을 칭찬해도 좋습니다. <자백>은 2017년 국내에도 개봉되었던 오리올 파올로 감독의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죠. 이탈리아에서 한 번, 인도에서 두 번 리메이크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각본이고, 이번 <자백>은 네 번째가 되겠습니다. 감독의 전작 <더 바디> 또한 국내에선 <사라진 밤>으로 만들어졌으니 더욱 익숙할 만도 하겠구요.



 영화의 현재 시점은 민호가 피신해 신애를 만난 숲 속 별장에 맞춰져 있지만, 거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는 서로의 진술이 재현된 화면들이 러닝타임을 채웁니다. 민호가 진술하면 신애는 그것의 허점을 짚고, 나아가 민호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사실 이런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며 또 자신만의 진술을 내놓죠. 영화는 그를 하나하나 영상으로 재현해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식이구요.


 법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님에도 법정물의 재미를 가져갑니다. 민호는 처음 보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드러내고 싶지 않고, 신애는 유죄가 뻔한 높으신 분의 위증을 진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기 때문이죠. 의뢰인과 변호사라면 응당 같은 편이 되어야 하지만, 거짓으로 진실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쌓여가는 거짓 탓에 경계는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이 상황의 유일한 제 3자인 관객은 자연스레 탐정이자 형사가 되어 능동적으로 퍼즐을 맞추게 됩니다. 보통 퍼즐이라는 것은 완성된 그림을 아는 상황에서 주어진 조각들의 위치를 찾아가며 맞추게 되는데, 여기서는 완성된 그림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상황마다 몇 개씩 튀어나오는 조각들을 테두리만 보고 덩어리로 만들어가야 하죠.


 이 때 나온 조각들이 어느 쪽에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는 것은 기본, 애초에 유효한 조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실이 존재하는 와중 그를 완벽히 대체해야만 하는 또 다른 진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거짓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라고 해도 진실이 아닙니다. 의뢰인이 원한다고 해서, 혹은 변호사가 내놓았다고 해서 꼭 정답이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자백>은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완전한 진실과 민호를 이 궁지에서 빠져나가게 할 새로운 진실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동종 영화들이 보통 출발점에서 하나를 내놓고 다른 하나를 밝혀나가는 전개인 탓에 이는 <자백>만의 강점이 되죠. 서로 애매하게 섞이거나 비슷하지 않으면서 둘 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자백>은 그에 성공하구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진실 공방은 분명 <자백>의 중심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그토록 열심히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토록 열심히 만들어낸 거짓말이 바꾸는 상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백>은 진실 공방 자체에 너무나 많은 열과 성을 기울여 버린 나머지 그 앞과 뒤는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 기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대단한 생각을 해냈다는 사실에 취한 것이죠.


 다시 말해 영화는 민호가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방법으로 신애와의 대화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분명 민호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고, 사회적 위치 덕에 그 범위도 상당히 넓죠. 그러나 이렇게 영화의 필요에 따라서는 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 들어가게 됩니다. 철두철미함과 어설픔을 오가는 오류는 신애 또한 피해갈 수 없구요.



 거듭되는 반전은 긴장을 유지하기엔 좋을 수 있어도 캐릭터의 일관된 개성에는 큰 방해물이 되기도 합니다. 반전 영화라는 것이 보통 대사 한 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거나 선과 악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사실이 이렇다면 그 전 이 장면에서 저럴 필요는 없지 않았냐는 찌꺼기들이 쌓입니다.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면 그 찌꺼기는 흐름을 막을 만큼 커지기도 하죠.


 이러다 보면 오히려 과정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실 공방에 그토록 공을 들여 놨는데, 보다 보면 어차피 영화가 원하는 결과는 정해져 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죠. 진실과 거짓이 아니라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잣대가 뚜렷해집니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속일 대담함은 있어도 불의를 정의라고 우길 용기를 내기는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세운 가장 큰 무기에 발목을 잡힌 셈입니다. 진실과 거짓의 흐릿한 경계에 영화의 전부를 걸어 유효한 성과를 냈지만, 그것이 너무나 완벽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떤 소재에도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의문엔 전혀 대비하지 않았죠. 쉬운 길을 어렵게 갔다는 지적으로도 번지기 쉽겠구요. 아쉽게도 철저함과 서투름을 오가는 것은 민호와 신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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