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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원피스 필름 레드> 리뷰

고무처럼 늘어나는 실험 정신


<원피스 필름 레드>

(ワンピース フィルム レッド)

★★★☆


 국내엔 2020년 초 개봉되었던 <스탬피드> 이후 2년만에 돌아온 원피스 극장판 신작, <원피스 필름 레드>입니다. 24년 전 원피스 시리즈 최초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감독을 맡았던 타니구치 고로가 감독을 맡았죠. 본토 일본에서는 지난 8월 개봉되어 185억 엔의 수입을 올렸는데, 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동시에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9위를 기록했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디바 우타.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첫 라이브 콘서트가 음악의 섬 엘레지아에서 열리고, 루피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과 함께 수많은 우타의 팬들로 공연장은 가득 차죠. 드디어 전 세계가 애타게 기다리던 우타의 등장과 함께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녀의 정체와 함께 드러난 원대한 계획은 모든 이들을 경악케 합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스탬피드> 이전 영화인 <필름 골드>와 엇비슷한데, 마침 이번 <필름 레드>도 <필름 골드>와 마찬가지로 원작자인 오다 에이이치로가 총제작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15개의 극장판들을 무작위로 나열해 놓고 어떤 것이 오다 에이이치로가 참여한 작품인지 구별하라고 하면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배경 지식으로 알고 보면 어딘지 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출발하는 이번 <필름 레드>는 제목에 들어가 있는 붉은 이미지에 한껏 집중한 영화입니다. 원피스 시리즈에 붉은 색이라고 한다면 빨간 머리 샹크스가 대표적일 텐데, 이번 극장판이 내세운 새로운 주인공급 캐릭터 우타는 다름아닌 샹크스의 딸이죠. 원피스의 역사와 함께했던 샹크스에게 장성한 딸이 있었다니, 이만한 화젯거리가 또 없습니다.


 거기에 꽤나 실험적인 시도를 더합니다. 우타는 노래노래 열매를 먹은 인기 연예인입니다. 노래를 통해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성대까지 타고났으니 시너지가 어마어마하죠. 이 때 실험적인 시도라면 바로 무대 연출이 될 텐데, 보통은 극중 BGM으로 한두 곡 삽입되곤 하는 OST가 우타의 입을 빌려 그 비중을 엄청나게 키웠습니다.



 여기서 엄청나게 키웠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극중 우타의 목소리는 나즈카 카오리가 맡았지만, 노래할 때의 목소리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가수 Ado가 맡았죠. 이번 극장판은 거의 Ado의 개인 앨범 수준으로, 무려 7곡이 20분 분량으로 등장하는 통에 본의 아니게 영화의 장르 자체를 뮤지컬로 분류해야 하나 싶은 지경입니다. 원피스 극장판에 기대할 만한 요소는 아니기에 분명한 진입 장벽이 되죠.


 그래도 그 예상치 못한 장애물만 극복한다면 의외로 꽤 짜임새 있는 각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실사 영화에 비해 개연성이나 설득력을 아주 빡빡하게 챙기지는 않는 편인데, 보통은 그를 이용해 설정 구멍들을 조용히 지나가려는 영화들이 종종 있죠. 기껏 선악 구도를 어렵게 만들어 두었다가 우리는 친구라는 이야기 한 마디로 하하호호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그림이 대표적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필름 레드>는 그러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합니다. 주어진 인물과 설정들을 조합하여 이들의 관계와 감정선을 최대한 말이 되게 연출하려 하죠. 여느 만화영화였다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어쩌면 설명할 시도조차 은근슬쩍 하지 않을 장면이나 전개가 사실은 이런 연유 때문이었음을 덧붙이며 탑을 쌓아올려갑니다. 훌륭한 분위기 전환 수단도 되겠구요.


 여기에 애니메이션 극장판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액션 연출을 더합니다. 루피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매번 쓰는 똑같은 기술이더라도 극장판의 스케일로 보면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도 마치 캐릭터별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듯 팬서비스에 열을 올리죠. 특히 토트 무지카와 벌이는 최후반부의 대결은 원피스 시리즈 팬이라면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1권부터 등장해 생선에게 팔이 잘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극중 캐릭터들의 파워 밸런스가 상향 평준화되며 세계관 최강자 자리에 오른 샹크스의 덕도 굉장히 큽니다. 마냥 강하다고만 나왔을 뿐 도대체 선원 개개인이 어떻게 싸우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던 빨간 머리 해적단의 전투를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죠. 이것만으로도 <필름 레드>의 존재 의의를 다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다만 난데없이 등장했음에도 루피나 샹크스를 비롯한 주인공급 위상을 확보해 주기 위해 우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릴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역대 극장판 중에서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비중이나 활약이 가장 떨어지는 편입니다. 루피 정도나 주인공 자리를 겨우 지킬 뿐, 조로와 상디를 비롯한 기타 동료들은 한두 번의 기술명 원샷에 만족해야 하죠.



 극장판이라는 수식에 아주 충실한 영화입니다. 극장판용 일회성 에피소드에 써먹겠다고 원작의 설정을 아주 해치지는 않으면서도 약간의 각색과 조정을 통해 나름대로 탄탄한 기승전결을 만들어냈죠. 연재 20년이 넘어가면서 같은 팬들도 '팬'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없는 거대한 집단이 되어 버렸는데, 2022년을 위한 존중과 실험의 경계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모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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