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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리뷰

노래도 안 하는 노래하는 악어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Lyle, Lyle, Crocodile)

★★☆


 버나드 웨이버 작가가 1965년에 출간한 동명의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둔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입니다. 윌 스펙과 조쉬 고든이 메가폰을 잡아 하비에르 바르뎀, 콘스탄스 우, 윈슬로 페글리, 스쿳 맥네어리 등이 이름을 올렸고, 우리의 주인공이자 노래하는 악어 라일 역은 바로 그 숀 멘데스가 맡으며(!)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본토엔 지난 10월 초 개봉되었으나 국내엔 아직 소식이 없네요.



 문화예술 업계의 밑바닥을 전전하던 중 우연히 애완동물 가게에서 노래하는 악어를 만난 헥터. 라일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무대에 서기만 하면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는 라일의 무대 공포증 덕에 헥터는 큰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헥터 대신 라일의 집에 새로 들어와 살게 된 소년 조쉬는 라일을 만나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합니다.


 동화를 원작으로 두었든, 아니면 무엇을 원작으로 두었든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어린이들을 위했지만 어쨌든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여지가 있는 작품이 있고, 정말 순전히 어린이 관객들만을 노린 탓에 다른 관객층이 보기엔 영 쉽지 않은 작품이 있죠. 보통 후자는 그를 무기 삼아 무엇이든 제대로 설명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번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또한 아주 정확하게 그 후자에 들어맞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조쉬는 영화가 목표로 삼은 어린이 관객들이 스스로를 투영할 주인공이죠.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던 일상이 기적과도 같은 라일의 등장 덕에 술술 풀려나갑니다. 친구와 가족은 성공하고 악당은 실패하는 과정에 자신의 활약상이 크니 이보다 뿌듯할 수가 없죠.


 이 기승전결엔 이렇다할 설득 구조가 없습니다. 마치 주인공이 하늘이 내린 운명의 존재라도 되듯 주변 모든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 그의 조력자를 자처하고, 슬프게도 그런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극소수의 반동 분자들만이 파멸을 향하죠. 제목만 보면 라일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상은 조쉬의 성장기인 셈입니다. 아주 많은 면에서 올해 초 개봉된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과 공통점이 많은 영화죠.



 원작이 갖고 있었을 고유의 개성이자 장점들은 실사화 과정에서 대부분 떨어져나갑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라일의 외모가 되겠죠. 원작에서는 단순하고 망충한 디자인으로 특유의 감성이라고 부를 만한 구석이 충분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실제 악어에 지나치게 충실해지면서 어린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매력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숀 멘데스의 이름값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하는 장면에서야 처음 한두 번 귀를 기울이게 되나, 그를 제외한 대사는 전무한 터라 차라리 라일의 목소리가 아니라 영화의 삽입곡이나 OST들을 독점해 부르는 편이 더 나을 뻔 했죠. 영화 내내 노래하는 캐릭터로 숀 멘데스를 데려다 썼으면 최소한 Treat You Better 한 소절은 불러 줘야 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라일의 등장으로 만사가 형통해진 조쉬네 이야기도 충분히 말이 안 되긴 하나, 그에 일부 가려진 라일 쪽은 더욱 처참합니다.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설정 하나에 묶여 영화의 모든 화근을 자초하는 식이죠. 원작 소설이 1960년대에 나왔음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조쉬의 친구를 잘나가는 틱톡커로 설정할 정도로 현대적인 각색을 했다면 라일의 데뷔를 무대로 고집하는 선택은 당연히 자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쉬네 부모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조연들은 도무지 선악은커녕 정상 비정상도 종잡을 수가 없고, 아끼고 아껴 하나씩 풀어주는 숀 멘데스의 사운드트랙도 딱히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동일한 캐스팅으로 원작의 그림을 살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면 언급했던 단점들을 뿌리부터 막으며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실사화가 거의 모든 면에서 큰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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