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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영웅> 리뷰

중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사죄한


<영웅>

★★☆


 2019년 말 촬영을 끝내고 2020년 여름 시즌 대작으로 개봉 예정이었으나 극장에 걸리기까지는 2년을 넘게 더 기다려야 했던 <영웅>입니다.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정성화, 조재윤, 배정남, 나문희, 김고은, 이현우, 박진주, 조우진, 장기용, 김승락, 장영남, 이일화 등이 이름을 올렸죠. 당초 알려진 제작비는 130억 원 규모였지만, 여러 차례 개봉이 연기되며 손익분기점은 35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독립의 결의를 다진 그는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내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피로 맹세합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은 오랜 동지들과 함께 그토록 기다려 왔던 순간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죠.


 여러 이유로 유명한 JK필름과 윤제균 감독의 작품입니다. <해운대>, <하모니>, <공조>, <담보> 등 무난하고 가족적인 영화들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코드 달고 만들어내는 곳이죠. 언제 어디서 찾아도 무난하고 예상 가능한 맛을 내지만, 그 평범한 맛을 위해 투입되는 재료나 진열하는 모양새가 원체 거대하기에 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꽤 주요한 특징입니다.



 그런 곳에서 다름아닌 안중근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뮤지컬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검증된 <영웅>과 그 주인공인 정성화 배우를 데리고 와서 스크린에 옮겼다고는 하지만, 어떤 것을 가지고도 동일한 공식에 녹여 공장제 향기로 귀결시키기에 어쩌면 그 좋은 재료는 기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었죠. 물론 한편으로는 실험적인 시도 없이 순수히 전 세대용 흥행작을 겨냥했다고도 볼 수 있었구요.


 첫 장면에서부터 스스로의 지향점을 큰 소리로 선포합니다. 안중근을 포함한 역사적 인물들을 다룰 땐 그 인물의 실제 유명세와 별개로 영화만의 기준을 확립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작품별로 다루는 방식이 천차만별일 수 있죠. 당장 <명량>과 <한산>만 해도 같은 감독이 만든 속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임하는 이순신의 태도와 감정선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영웅>은 초장부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안중근은 그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역사적 아이콘 그 자체입니다. 관객들 그 누구도 영화 <영웅>에서 정성화가 연기하는 안중근을 본 적도 없는 첫 번째 순간에서부터 아무런 소개도 언질도 없이 등장해서는 비장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처절한 노래를 부릅니다. 시리즈였다면 전편의 마지막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바로 이것이 이번 <영웅>의 지향점입니다. 실존했던 누군가를 창작물의 등장인물로 삼을 땐 그 창작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창작'이 필요합니다.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볼 이유를 만들어 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죠. 끝이 났을 땐 방금까지 보낸 시간 덕에 새로이 알게 된 무언가가 체에 걸러지듯 감상과 함께 남는 것이 좋은 창작물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영웅>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무기화해 영화의 날뛰는 감정선에 활용하기는 하나, 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관객들이 이미 갖고 있는 안중근의 이미지와 기억, 인상에 기댑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 운동가'라는 문장에서 비롯될 수 있는 모든 고조된 감정과 수식들을 꺼내들어 기승전결에 휘몰아칩니다.


 장면과 장면의 온도가 널이 뛸 수밖에 없습니다. 한없이 일상적이고 가볍다가 갑자기 나와 나라의 명운이 걸렸다며 가슴을 부여잡고 한을 토해내니 그 내용과 별개로 당연히 당황스럽습니다. 본인도 그를 알고 있는지 공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졌다 싶으면 비상용 냉매를 들이붓는데, 온도가 내려가는 효과보다도 똑같은 당황의 연장선일 뿐이죠.



 여기엔 뮤지컬 장르가 크게 한몫을 해냈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심지어는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누군가의 내면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러나 <영웅>은 인물과 사건을 배치하는 방식만으로도 이미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습니다. 거기에 입히는 뮤지컬의 껍데기는 감정의 급가속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직 안전벨트도 하지 못해 손을 더듬고 있는데 박차고 나서는 격이죠.


 잔뜩 힘을 실은 뮤지컬 연출은 <알라딘>과 <레미제라블> 등에서 꽤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게 가져다 쓴 장면들이 먼저 눈에 밟힙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장면들을 자신의 버전으로 보여주면 그 이상의 갈채를 받으리라 예상했던 것인지, 그 의중이 궁금할 정도의 용감함이죠. 물론 뮤지컬의 감동을 재현하는 곡들도 분명히 있지만, 충격의 만두 송(...)을 필두로 한 여타의 실망이 더 큽니다.



 김고은의 설희는 영화 내내 여타의 등장인물들과 접점도 없이 겉돌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곡과 비중을 가져가고, 조재윤의 우덕순, 배정남의 조도선, 이현우의 유동하, 박진주의 마진주 등은 곡을 위한 사연을 위한 에피소드형 인물로 소비될 뿐이라 역시 통으로 덜어내도 전개엔 별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토록 저격 실력이 뛰어난 명사수라면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뮤지컬계에서 위용을 떨치던 정성화의 안중근이 몇 안 되는 영화의 장점을 통째로 지탱하고 있는데, 그나마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존재 이유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커다란 위안거리가 되기는 합니다. 영화의 연출 방식 자체가 하나의 연결된 영화보다는 한 곡씩 따로 떼어놓은 클립으로 더 큰 효용을 내는데, 개중에서도 안중근과 (의외로) 이토 히로부미의 곡들이 가장 강렬하죠.



 웃음과 눈물을 모두 노리는 아주 전형적인 안전제일 거대자본 블록버스터입니다. 강점은 더욱 강하게, 약점은 더욱 약하게 한두 발씩 더 나아간 통에 장면과 장면의 온도차가 지나치게 커졌죠. 난데없이 사죄하는 일본 간수 장면을 포함, 이런 영화가 응당 갖춰야 하는 것들의 체크리스트를 다급히 지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국내에서 뮤지컬 영화는 또 한동안 침체기를 겪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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