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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리뷰

추리 대신 유리라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

★★☆


 2019년 개봉되어 4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달러를 넘게 벌어들인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이 돌아왔습니다. 극장 개봉되었던 1편과 달리 이번엔 넷플릭스의 품을 향했죠. 주연 다니엘 크레이그가 복귀하고 에드워드 노튼, 자넬 모네, 캐서린 한, 레슬리 오덤 주니어, 케이트 허드슨, 데이브 바티스타, 제시카 헨윅 등 또 한 번 화려한 이름들을 가득 모았네요.



 미스터리한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의 초대를 받고 해마다 열리는 모임에 참석한 그의 오랜 친구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얼굴이자 세계 최고의 명탐정, 브누아 블랑이 함께합니다. 마일스가 머리 잔뜩 써서 기획한 오락용 살인 게임은 어느새 실제 사건으로 번지고, 모두가 용의자가 된 순간 브누아 블랑의 번뜩이는 추리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죠.


 셜록 홈즈부터 에르큘 포와로까지, 20세기에 셔터를 내린 레드오션인 줄만 알았던 명탐정 업계에 브누아 블랑이 나타났습니다. 사회성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의외의 귀여운 면모가 있고,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엔 멋진 활약을 해내는 탐정의 전형이죠. 007로 현장직 체질인 줄만 알았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몸 성히 유지하며 현업에서 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구요.



 이번에도 명탐정이 활약하기 아주 딱 좋은 곳을 무대로 합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외딴 섬, 무엇이든 가능한 억만장자의 초대로 한데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와중 사건이 벌어지고, 용의선상에서는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상황에 필요한 것은 번뜩이는 관찰력과 추리력이죠.


 추리물을 전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야 거의 초인적인 두뇌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내야 하지만, 그 과정은 꽤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죠. 실낱같은 단서를 물고 또 다른 실마리를 발견해 덩굴 뿌리를 뽑듯이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서와 단서가 아닌 것들이 정신없이 풀어헤쳐진 가운데 진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각도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브누아 블랑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고, 이번 <글래스 어니언>은 그런 브누아 블랑의 특징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제목에도, 그리고 그 제목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해설하는 브누아 블랑의 대사에도 아주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있죠. 유리로 만든 양파라, 짐짓 여러 겹으로 되어 관찰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눈만 달려 있다면 그 중심에 있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첫 장면에서부터 유머와 재치가 넘칩니다. 각자 분야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내는 퍼즐을 아들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엄마가 곁눈질로 풀어 버리는(!) 산뜻한 코미디에서부터 지향점이 분명하죠. 한 장면씩만 스쳐지나가는 카메오들은 내로라하는 면면을 한데 모아두었고, 톡톡 튀는 장면들은 브누아 블랑의 말랑한 성격과 맞물려 영화의 분위기를 무엇이든 튀겨지기 좋은 온도로 올립니다.



 무대 준비가 끝난 순간 라이언 존슨은 관객들을(혹은 시청자들을) 브누아 블랑의 시선으로 초대합니다. 단서와 단서가 아닌 것들이 정보의 홍수가 되어 휘몰아치고, 특이하게도 브누아 블랑이 보는 것들은 관객들이 보는 것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십중팔구는 후반부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쯤 사실 앞선 장면은 이런 장면이었다며 설명을 덧붙이는데, 실험적이면서도 용감한 연출이죠.


 때문에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의 반전은 누군가에겐 연출 의도 그대로의 반전일 수도 있지만, 보통의 추리 영화에서 기대하는 극적 연출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김빠지는 직진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점에 빠른 속도로 스러져 버리죠. 순전한 개인차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큰 도박입니다.



 범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거나 사건의 진행 방식이 너무나도 신선해서 흥미롭다기보다는, 설명한 것처럼 사건 자체를 다루는 방식에서 개성을 확보하는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추리물이 되기를 거부한 탓에 일반적인 추리물이 갖고 있는 재미가 부재하죠. 오히려 사건 자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거나 누가 그랬든 별로 상관없는 무미건조한 구성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머릿수에 비해 대부분이 한 덩어리의 조연에 불과한 탓이 큽니다. 누구 한 명이 이렇게 행동하면 나머지들도 별 생각도 고민도 없이 그 뒤를 따르는 식이죠. 처음부터 그런 인물상을 의도하기는 했지만, 누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어야 다채로워지는 용의자 색출 컨셉과는 상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후반부의 아무 의미도 없는 거수식 만장일치는 그 정점이겠구요.



 결국은 나쁜 놈이 나쁜 짓 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권선징악 판결로 귀결되는데, 그렇게 마침표가 찍힌 뒤에도 딱히 영화가 그려놓은 선악 구도에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정보에 정보를 얹어 보는 사람들의 정신을 빠지게 만든 뒤 자신이 그렇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끔 최면을 걸어 사이다 엔딩을 강제하는 인상이죠. 주인공과 악인의 밸런스 보정마저도 유머로 퉁치려는 시도는 썩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대단한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주는 모습마저도 그 가르침의 일부입니다. 주객이 완벽하게 전도되어 어느새 추리는 설 자리를 잃고, 추리의 재료로 준비해 두었던 인물과 사건들은 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살인사건은 팩트를 메다꽂을 완벽할 타이밍을 위해 소비될 뿐, 준비한 팩트의 파괴력이 더 클 순간이 있었다면 영화의 80%는 애초에 필요도 없었죠.



 모나리자 보호 장치의 잠금 소리와 정각 덩 알람(?)마저도 전개상의 음표로 소화하는 스스로의 재치에 지나치게 감탄했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단상에 올라 박수를 기대하는 만면의 미소를 띤 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죠. 너무 신나고 행복해 보여서 일단 동조를 해 주긴 했지만, 막상 쳐 놓고 보니 이게 그렇게까지 신나고 행복할 일인가 싶은 허전함과 허무함이 더 크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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