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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아바타: 물의 길> 리뷰

푹 젖어 무거워진 귀국길 캐리어


<아바타: 물의 길>

(Avatar: The Way of Water)

★★★


 전 세계 팬들이 기다려도 너무 오래 기다렸던 <아바타>가 1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속편까지 걸린 기간만 따지면 의외로 할리우드에서는 그렇게 오래 지난 편이 아니기는 하나, 보통은 난데없이 나오거나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나오는지라 '곧 나온다'는 희망 고문이 13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면 길긴 길었습니다. 어쨌든 정말 드디어 선을 보였네요.



 외계 행성 판도라에서 토착민 나비 족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전직 해병 제이크 설리. 적대적인 인간들을 모두 내쫓고 마침내 되찾은 평화는 남은 이들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제이크 또한 네이티리와 함께 네테이얌, 로아크, 투크티리, 키리, 스파이더 등 어엿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죠.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끊기지 않은 복수의 끈은 제이크와 가족들을 또 한 번 커다란 위기에 빠뜨립니다.


 시대와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혁신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았을 줄 알았던 바로 그 때, <아바타> 1편은 할리우드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타이타닉>과 <터미네이터 2>만으로도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던 제임스 카메론은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근래 절대 다수의 흥행작들과 달리 시리즈도 원작도 없이 전 세계 흥행 1위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냈죠.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영화 내 삽입된 타이틀도 새 디자인 없이 파피루스 폰트로 툭툭 쳐서 만들었고(?), 어린이용 입체 영화 정도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3D를 주류 상업 영화에 도입하여 후발 주자들도 대거 양성했죠. 올해 중순 <닥터 스트레인지 2>도 3D 상영이 일부 이뤄지긴 했지만, 이번 속편의 개봉을 앞두고 한동안 전국 극장 구석에 잠들어 있던 3D 상영 장비들도 대거 점검을 거쳤을 겁니다.


 그렇게 돌아온 <아바타: 물의 길>은 다시 한 번 새로운 볼거리로 중무장했습니다. 1편 오마티카야 족이 숲의 사람들이었다면, 2편에 새로이 등장하는 멧카이나 족은 바다의 사람들이죠. 중심부의 거대한 나무를 둘러싸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쉬었던 황홀함은 그대로 바다로 옮겨갔습니다. 가장 작은 것부터 가장 거대한 것까지 하나의 악보 위에서 춤추는 물의 생태계가 눈 앞에 펼쳐지죠.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떨어진 주된 이유로는 티켓 가격의 인상이 지적됩니다. 단기간에 2배 가까이 오른 요금 탓에 사람들은 더 이상 무난한 영화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죠. 일단 보고 판단하기엔 일단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에도 내 돈 값을 해 줄 것 같은 영화를 기다리게 되었고, 이번 <아바타: 물의 길>만큼 그에 들어맞는 영화는 없었습니다.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디스플레이 성능을 자랑하기 위해 틀어놓는 영상에 수천억을 들였다면 나올 법한 광경입니다. 발을 새로 내딛는 곳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경이가 기다리고 있죠. 관객들은 어디서 온 누구든 세상의 규칙과 이치를 처음 배우는 아기의 눈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새롭고 장대해 그 자체에 압도되는 경험을 장장 192분 동안 이어갈 수 있죠.



 멧카이나 족의 생활 방식부터가 그렇습니다. 전편에 이크란, 토루크, 타나토르 등이 있었다면 일루, 추락, 툴쿤이 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모습이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 단계별로 진행되죠. 하나의 종족이 일상과 신성함을 오가는 자신들만의 생활 방식을 소개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틀어 놓으면 홀린 듯 보게 되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마력을 재현합니다.


 그를 통해 이번 <물의 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자연과의 합일에 가족애를 더했습니다. 과거부터 미래,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물의 길'을 바탕으로 어느 곳에서도 하나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이야기하죠. 정확히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를 지칭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대상으로는 가족만한 것이 없는 덕입니다.



 그런데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썩 매끄럽지만은 않습니다. 안식처를 찾게 되려면 누군가가 외부로부터 위기 상황을 맞이해야 할 텐데, 이번 <물의 길>은 갈등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성장기와 사춘기 아이들이 그득 등장하니 번갈아 가면서 사고를 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커져 버린 일을 책임지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모습을 반복할 따름이죠.


 때문에 극의 진행이 꽤나 딱딱합니다. 아이들 중 하나가 어떤 동기가 됐건 제이크가 하지 말라던 짓을 하다가 기어이 사고를 치고, 제이크는 두 번 말하지 않겠다며 그러지 말라는 그림이 반복됩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들 모두 각자 가족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깨닫게 되지만, 결국 설리네 가족들이 지극히도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그 외의 조연들이죠.



 이 가족애라는 가치도 피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대부분은 정말 말 그대로의 가족입니다. 어떤 위기 앞에서도,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도 나를 위해 나서줄 수 있는 사람들이죠. 물론 훌륭한 가치긴 하지만, 종족과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품의 뿌리에 위치하기에는 다소 평면적입니다.


 오히려 악역인 마일스 쿼리치 쪽이 서사 측면에서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체의 기억과 의식을 주입한 몸뚱아리의 존재론적인 회의를 다룰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리치의 핏줄에서 생겨나는 유대감과 선악의 본능을 파고들 수도 있었죠. 실제로 영화에서는 양쪽 모두 어느 정도 발을 담그기는 하나, 어쨌든 주인공은 설리네 쪽이기에 비중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설리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출생, 혼혈, 이방인 등의 내적, 외적 갈등은 이미 인간에서 나비 족이 된 제이크가 1편에서 더 포괄적인 측면으로 접근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토루크 막토의 자식들보다야 휠체어 신세였던 전직 해병이 일개 인공 부족원이 되어서 겪는 수모가 더 컸을 테니까요. 사고를 치는 것도, 고민하는 것도 다들 뭉쳐서 엇비슷하게 행동하니 개성 확립에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구요.



 이들을 제외한 멧카이나 족 쪽은 대우가 훨씬 좋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훌륭한 재료들을 잔뜩 준비하기는 했으나 정작 기승전결의 기여도는 미미한 편이죠. 케이트 윈슬렛을 데려온 로날은 툴쿤들이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아도 무관한 수준이고, 족장인 토노와리는 어째 1편 오마티카야의 전사들 중 한 명이었던 쯔테이보다 임팩트가 부족합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1편에서 먹혔던 지점들을 분석하는 데엔 성공했으나, 그를 뛰어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것이라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1편의 많은 장점들은 그것들을 모두가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기에 유효했죠. 무대를 숲에서 바다로 바꾸어 신선도를 연장할 수는 있어도 그를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바타> 1편의 신화에서 각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흥행작들에 비해 크지 않았는데, 이번 2편은 그조차 한 발 뒤로 물러섰죠. 인간과 나비, 지구와 판도라가 종족의 멸망을 걸었던 1편에 비하면 이번 클라이막스는 달랑 한 가족을 두고 벌이는 사적인 설욕전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규모를 커 보이게 하려니 오히려 다들 왜 여기에 천문학적인 자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지 의아한 설정 구멍으로 번지구요.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물러선 채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쥐어 주려니 전개도 산만합니다. 심지어 그 산만한 가지들의 끝은 모두 3편으로 넘겨 버려 무엇 하나 매듭지어진 것이 없죠. 중반부쯤 되면 누가 누구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 퇴장할 것이라는 대강의 그림이 이미 그려집니다. 극중 투크티리의 말마따나 풀려나자마자 다시 묶이길 반복하는 그 주기 하나만 줄여도 되었겠지요.



 구상해 놓은 것들 한 트럭 중 영화에 넣을 것들을 고르고 골랐을 것이고, 고른 것들을 또 5편까지의 속편들에 나누어 담았을 겁니다. 나누어 담은 뒤에는 각 영화의 기승전결에 맞추어 또 몇 번을 다듬고 쳐냈을 텐데도 여행길 돌아오는 캐리어마냥 꽉꽉 들어차 있네요. 똑같은 이야기도 제임스 카메론의 판도라에선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처음부터 충족할 수 있는 기대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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