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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재벌집 막내아들> 리뷰

부자가 망했더니 삼 일 먹을 것도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

★★☆


 산경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TV 시리즈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재벌집 막내아들>입니다. 정대윤, 김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아 송중기, 이성민, 신현빈, 윤제문, 조한철, 김신록, 김남희, 박지현, 박혁권 등이 이름을 올렸죠. 지난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16부작으로 막을 내렸고, 6%대의 시청률로 출발해 최종회는 26%를 넘어서며 충분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순양그룹의 충직했던 머슴, 윤현우. 순양 가문에서 시키는 것이라면 이유불문 절대 충성을 바쳤던 대가는 허무하게도 집안 싸움에서 이어진 자금 세탁의 제물이었죠. 등 뒤에서 자신을 겨눈 총성을 마지막으로 눈을 뜬 곳은 다름아닌 1987년 어느 자동차의 뒷좌석이었습니다. 게다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순양의 충신 윤현우가 아닌, 순양의 막내아들 진도준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인 집안의 막내아들로 환생한다니, 한 줄만으로도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입니다. 그것도 개천에서 용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던 몸에서 피라미드 맨 위의 몸으로 깨어났으니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자신을 무너뜨린 집안을 내부에서부터 갉아먹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는 오지 않을 새로운 기회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도 있겠죠.



 게다가 그 둘은 완벽히 분리된 길이 아닙니다. 잘만 하면, 한 수 한 수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죠. 물론 절대 쉽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고, 심지어는 없던 실수를 만들어서도 자신을 파멸시키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적들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윤현우는, 진도준은 그 길을 가려는 의지로 가득하구요.


 바로 이 지점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가장 큰 동력입니다. 윤현우이자 진도준인 우리의 주인공은 매 에피소드마다, 매 순간마다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그 자리는 자신이 스스로 향한 길이기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갈 수밖에 없었던 길이기도 하죠. 순양이라는 재벌 그룹의 지분을 두고 벌이는 살얼음판 위의 거대한 수 싸움입니다.



 권력 다툼을 다루는 창작물에서 주인공은, 최소한 주인공의 자리에 있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남들보다 유리한 설정들을 가져갑니다. 조금 더 똑똑하거나 사리에 밝으며, 정 안 될 때엔 남들보다 특별히 운이 좋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고 회귀한 덕에 그는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큰 돈이 더 큰 돈을 만드는 세상에서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보다 더할 수 없는 기회입니다. 게다가 그 미래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니, 바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시청자죠. 실제 사건들에서 차용한 세계관 덕에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 줄기, 못해도 가지 하나씩은 차지하고 있는 사건들을 알고 있는 것은 비단 진도준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을 예상하고 맞추어 보는 재미까지 보장한다는 것이죠.



 진도준을 제외한 주조연들의 존재감도 그림의 완성도에 한몫합니다. 3루에서 태어났음에도 자신이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어쨌든 그 곳에서 구른 경험이 없지는 않기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아는 진도준조차도 놀랄 만한 수를 꺼내들며 주인공과 시청자를 함께 당황시키고, 그마저 타개해내는 과정은 또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보장하죠.


 기업의 지분을 놓고 벌이는 업계 전문가들의 다툼이기에 자칫 그 자체가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은 다른 인물의 입으로 부연 설명을 더하는 식으로 전진합니다. 이렇게 움직이다니, 저렇게 해서 요렇게 할 생각인 것 같은데 역시 대단하다는 식으로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죠. 애초에 과정가 자체 단순화되기도 했지만, 작품의 설득력과 시청자의 이해라는 경계선을 적절하게 파악했습니다.



 물론 일등공신은 단연 이성민 배우의 진양철 회장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에서 지금의 순양을 만들어낸 인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도준조차도 그 속내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죠. 엄청난 카리스마와 존재감으로 매 에피소드, 매 순간의 결정적인 전개와 긴장감을 책임지는 인물입니다. 예상을 벗어나면서도 그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가 지는 데 계속해서 성공하면서 무게감을 배가하죠.


 순양 가문의 자식들이야 당연히 진도준과의 적대 관계에 있지만, 진양철 회장은 조금 특별합니다. 적, 동료, 스승, 경쟁자, 할아버지라는 모순적인 개념을 한데 모아 언젠가는 무너뜨려야 할 최후의 보스인 동시에 세상 모두가 자신을 등졌을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위치에 있죠. 드라마는 진양철의 그 입지를 십분 활용해 전개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그것이 정점에 이르는 후반부의 폭발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들이 알고 있듯 <재벌집 막내아들>은 아마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화로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진도준의 이 많은 노력, 자신의 집안과 순양 집안을 둘러쌌던 그 많은 이야기들, 심지어는 진양철 회장과의 관계마저도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단 한 개의 에피소드는 공든 탑을 이렇게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반증한 최악의 전개였죠.


 <스카이 캐슬>, <왕좌의 게임> 등 역사적 명작의 반열에 들기 직전, 마지막 에피소드나 마지막 시즌으로 무너져버린 사례는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정도나 규모에서 그들을 능가하죠. 단순히 괴상하거나 뜬금없는 결말이었다면 차라리 나았겠으나, 직전까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트럭으로 밀어 버리는 선택지는 이러면 골때리겠다는 말장난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쓸데없는 비중으로 전개를 방해하더니 기어이 마지막화에서 정점까지 찍어 버린 신현빈 배우의 서민영 검사, 마지막화의 충격적인 8000억-7000억 후시녹음 등 짚고 넘어가야 할 크고 작은 요철들이 산재해 있지만, 마지막화는 이 모든 논의마저도 종식시켰습니다. 어차피 엉망진창으로 박살나버린 폐허에서 이것저것 지적해 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작품성이라는 것은 그를 바탕으로 남은 것이 나중의 무언가를 예고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비슷한 재료들로 비슷한 이야기를 꾸려나갈,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 줄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교본이 되죠. 그러나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사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이보다 나쁠 수 없죠.



해결되지 않은 복선도, 훨씬 매끄럽게 풀어낼 수 있었던 실마리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매달려 있는 손가락들을 무시한 채 셔터는 내려와 버렸고, 남은 것은 충격과 공포에 전율하는 시청자들뿐이죠. 누가 대단하게 책임을 져야 할 일도 아니었지만, 이런 결말이 각본과 촬영을 거쳐 세상에 나오기까지 누구의 제동도 없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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