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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스위치> 리뷰

뒤집어 입어도 그대로


<스위치>

★★★


 2017년 <그래, 가족>을 내놓았던 마대윤 감독 신작, <스위치>입니다.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을 주연으로 둔 가족 영화인데, 장르를 생각하면 알려진 손익분기점이 145만 명으로 꽤 높은 편이죠. 당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어 실제로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왜인지 제목을 바꾸어 해를 넘긴 1월 4일 개봉되었습니다.



 캐스팅 0순위 천만 배우이자 자타공인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 박강. 그러나 막상 크리스마스 이브에 끌어안을 것이라곤 연말 시상식 트로피뿐, 유일한 친구이자 뒤처리 전문 매니저 조윤을 붙잡아 거하게 한 잔 한 뒤 택시를 잡아탑니다. 다음날 아침, 낯선 집에서 깨어난 그에게 생전 처음 보는 꼬맹이 둘이 안겨 오고, 성공을 위해 이별했던 첫사랑이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순간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몸도 바뀌고 팔자도 바뀌면서 겪게 되는 체험 삶의 현장입니다(문득 이제는 <체험 삶의 현장>을 언급하는 것도 옛날 사람 취급받기 딱 좋아 보이네요). 멀리 가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2000년 개봉작 <패밀리 맨>이, 단순히 비슷한 소재만 갖고 떠올려 보면 <아빠는 딸>, <내안의 그놈>, <수상한 그녀> 등이 이어지네요. 굳이 몸이 바뀌지 않아도 전개의 유사성을 놓고 보면 <톱스타> 등도 있겠구요.



 보통 이런 영화는 평소에 자신과는 요만큼도 상관이 없다고 여기던 누군가의 입장에 처하면서, 무시하거나 멸시하던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전개입니다. 때문에 출발점의 주인공은 성격 면에서나 개성 면에서나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죠. 명예나 인간성 따위는 없이 돈과 여자만 밝히던 <스위치>의 박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쪽의 전개는 훨씬 가볍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지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심각해지려고 하면 표면만 살짝 훑고 지나가는 것에 만족하죠. 하루아침에 톱스타에서 매니저가 되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의외로 박강은 평소에 매니저를 감정적으로 괴롭히거나 뿌리깊게 업신여기지는 않았더랬습니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그 상황만의 기회를 포착하고 앞으로 나아가죠.



 그런데 또 그렇게 박강이라는 인물의 추진력에 집중해, 어떤 상황에 처하건 결국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교훈을 주는 영화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순간의 소소한 웃음을 위한 에피소드로 소비되고, 전체적인 방향성은 이렇게 소위 말하는 '골때리는' 상황 그 자체에 맞춰져 있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신기하고 신비하며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식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아주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갈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받고 걸어가기 시작은 하는데,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굳이 속도를 내거나 멈추지도 않죠. 분명 무언가를 보장하지만 내려놓음이 필요한 샛길이 있으면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저 앞으로 계속 터덜터덜 나아가는 영화입니다.



 때문에 꽤나 무색무취합니다.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고, 개성이자 개성이 아닙니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거나 무언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착하다고 해야 할지 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걸 지적하거나 따지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은 마음에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도 감수해야 하겠죠.


 무언가 평가를 하려면 영화가, 각본이, 캐릭터가 내리는 선택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선택 자체가 많지 않은 느낌입니다. 자유롭게 살던 톱스타가 자고 일어났더니 두 아이의 아빠이자 무명 배우가 되었지만, 잠시의 충격은 접어두고 열심히 노력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렇다할 큼직한 악역도 사건도 없이 그저 흘러 흘러 결말부를 향하죠.



 그렇게 다다른 도착지 또한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직전까지는 가족 영화에 가까웠던 흐름이 갑자기 못다한 사랑 영화로 급선회한 것 같다는 느낌이 있기는 하나, 그마저도 지금까지 으쓱해 왔던 어깨 한 번 더 으쓱하면 잊어버릴 정도이긴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명절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명절 특선 영화에 택시를 타고 미리 가 버린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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