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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서치 2> 리뷰

사과의 기술


<서치 2>

(Missing)

★★★★


 2018년 신인 감독 아니쉬 차간티가 단돈(?) 88만 달러를 들여 무려 7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서치>가 돌아왔습니다. 아니쉬 차간티는 제작으로 넘어갔고, 1편에서 편집을 담당했던 윌 메릭과 닉 존슨이 공동 감독으로 나섰죠. 스톰 리드와 니아 롱, 켄 렁, 다니엘 헤니 등이 이름을 올렸구요. 본토에는 지난 1월 20일, 국내엔 그보다 한 달 늦은 2월 22일 개봉으로 잡혀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비극을 딛고 서로를 믿으며 지금껏 달려 온 엄마 그레이스와 딸 준. 엄마의 새 남자친구를 볼 때마다 아빠를 잊은 건가 싶어 짐짓 마음이 불편했던 준은 두 사람의 여행이 영 탐탁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귀국 날짜에 맞추어 마중을 나갔지만, 왜인지 도착 시간이 한참 지나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죠.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걱정은 이내 확증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번져나갑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조금 더 나아가면 <신비한TV 서프라이즈>까지, 진실과 거짓을 주무르는 TV 프로그램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어쩌면 나의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흥미 덕분이었죠. 홀린 듯 보다가 떨어진 턱을 붙잡고 벌어진 입을 가리는 순간은 반복됩니다.



 <서치 2>는 바로 그 재미를 111분의 러닝타임에 온전히 녹여낸 영화입니다. 주인공 준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으로 키웠으나 사춘기를 맞이하며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10대입니다. 엄마가 새 남자친구와 있을 때마다 영상으로만 남아 있는 아빠 생각이 절실하고, 그럴수록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원망스럽기만 하죠.


 그렇다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가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의 빈 자리에서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죠. 영화는 엄마의 실종으로 그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구요. 사라진 엄마를 찾아 기계를 잘 다루는 10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는 동시에, 10대이기에 할 수 없는 장애물들을 만나며 사건 해결의 굴곡을 한 땀 한 땀 경험합니다.



 <서치 2>는 주인공부터 무대까지의 설정들을 부품 단위로 늘어놓은 뒤 그 하나하나의 효용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합니다. 1편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핸드폰, 스마트워치 등 전자기기 화면만으로 영상을 구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한데, 그 기계와 기계를 사용하는 인물의 특징을 십분 활용해 사건의 기승전결을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하죠.


 종종 인기를 끄는 두뇌 트레이닝이나 테스트들을 보다 보면 이 문제들을 이리저리 풀어내는 스스로의 탁월함에 감탄하게 만드는 구조가 많습니다. 스스로의 명석함에 새삼 뿌듯해지는 함정(?)이죠. 이리저리 널린 단서들을 조각 삼아 커다란 퍼즐이, 그것도 2D가 아니라 보는 방향에 따라 바뀌는 3D 퍼즐이 맞춰진다면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입장에서 이것보다 신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하나의 장치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단순히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만 해도 그렇죠. 할 말을 빠르고 정확하게 입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틀린 철자와 잘못된 띄어쓰기를 느릿느릿 입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썼다가 지운 뒤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 말을 이모티콘이나 상대 텍스트에 표시하는 감정 표현으로 대신하는 사람도 있죠.


 기계에 능숙하기에 잡아낼 수 있는 것, 기계에 서툴기에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힌트와 복선으로 바꾸어 극적 전환점을 끝없이 만들어냅니다. 나중에 어떻게든 활용하리라 예상되는 것들은 아니나다를까 남김없이 회수되죠. 예측을 힘들게 하겠다고 뜬금없는 것을 가져오면 설득력이 무너지고, 그걸 막으려다가 뻔한 전개가 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미묘한 지점을 능숙하게 넘나들죠.



 게다가 화면에 담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를 따라가는 데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용의선상에서 범인을 밝히는 추리 영화들이 저지르는 또 다른, 대표적인 실수마저도 피해가죠. 등장인물들을 최소화했음에도 그들의 관계도를 끝없이 파고들어가며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데, 단순히 머릿수만 늘리며 사라져도 무관한 조연들을 양산하는 각본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영화였다면 제약이 될 법한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셈입니다. 그것도 그 영역에서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게 하겠다는, 누군가 따라한다면 자신의 아류작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자신감으로 가득하죠. 이런 노력을 들여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속편으로 돌아온 자신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 같습니다.



 스크린 밖을 향하는 거대한 메시지나 울림까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안에서 이 정도의 밀도를 자랑한다면 굳이 밖을 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끔 실화가 아닌 기승전결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비슷한 각본들의 책장에 파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의 동력이라면 그걸 비집고 나와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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