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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뷰

세대를 건넌 버저비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


 숱한 명대사와 명장면들로 시대의 아이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슬램덩크>가 극장판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고, 나카무라 슈고/엄상현, 키무라 스바루/강수진, 미야케 켄타/최낙윤, 카사마 쥰/장민혁, 카미오 신이치로/신용우 등이 목소리를 맡았죠. 지난 1월 4일 개봉해 국내에서도 관객수 280만 명을 돌파하며 깜짝 돌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 그 중엔 어릴 적 형과의 약속을 잊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 송태섭이 있습니다. 촉망받는 농구 천재였던 형을 따라 농구공을 들었지만, 비극적인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형의 그림자는 뜻하지 않게 남겨진 모두의 마음 속 구석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죠. 전국 대회의 시작과 함께 만나 버린 최종 보스 산왕공고와의 대결엔 너무도 많은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창작물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작품이죠. 각자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창작물로 만들어질 정도의 이야기라면 충분한 극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겠으나, 그것의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경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큰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죠. 반대로 실화가 아닌데 지나치게 극적일 경우 그것대로 약점이 될 수도 있겠구요.



 거기에 더해 신경써야 할 장르적 특징들도 있습니다. 소재로 하는 종목의 인기나 규칙이 진입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눈 앞에서 무언가 펼쳐지고는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등장인물들이 이토록 깊게 몰입하는 게 맞긴 한지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얼핏 보아도 얼마나 만들어지기 쉬운, 혹은 어려운 순간인지를 한 번에 알 수 있어야 하죠.


 그렇다고 너무 표면적으로만 다루어서도 안 됩니다. 대충 촌각을 다투는 점수 차를 집어넣어 막판 역전하는 그림은 물론 긴장감 넘치기는 하나, 하고 많은 종목 중 하필 이 경기를 선택한 이유 또한 증명할 필요가 있죠. 주인공들이 종목을 바꾸어 이런 것에도 도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이미 만족한 팬들의 배부른 소리일 때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자신의 입지와 위치를 아주 세심하게 분석하고 고려했습니다. 껍데기만 보면 추억의 만화를 극장판으로 옮겨 온 대규모 프로젝트처럼만 보이나, 사실 비슷한 규모와 명성을 지녔던 극장판들의 파급력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죠. 오히려 실패했을 경우엔 언제적 시리즈를 지금 들고 왔냐는 분석이 차고 넘쳤을 만한 간극을 극복해야 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큰 덩치는 시간을 건너 극장판으로 제작되었을 때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 됩니다. 팬들을 끌어모으기엔 단순히 극장판이 제작된다는 소식 자체로 충분하지만, 팬이 아닌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엔 0이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야 하죠. '나 슬램덩크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은 가려던 발길조차 돌리기 딱 좋고, 그렇게 무너진 시리즈 극장판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장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추억의 캐릭터와 줄거리는 원작 팬들에게, 농구라는 대중적인 스포츠의 극적인 승부는 영화 팬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모르고 봐도 재미있지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오래된 무언가를 간만에 혹은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수식을 가져갔죠.


 원작 시리즈의 주인공인 강백호 대신 송태섭을 극장판의 주인공으로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겁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새롭지만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팬들에게도 새삼스러운 선택이죠. 모르고 보면 전형적이지만 안전한 스포츠 드라마, 알고 봐도 신선한 조연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니 양쪽 모두의 시선을 이끌 수 있습니다.


 구조는 어느 쪽으로나 예측 가능한 선에서 탄탄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던 형과의 인연을 농구에,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경기에 녹여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송태섭의 성장과 비상을 그리죠. 산왕고등학교가 얼마나 엄청난 팀인지, 그럼에도 그들을 이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경기의 전개와 함께 펼쳐놓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로 조각을 맞춰나갑니다.



 스포츠와 가족 드라마로 대중성을 잡는다면 팬들을 붙잡는 것은 캐릭터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실화가 아닌 실화로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죠. 그것과,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하나로 묶기에 추억이라는 커다란 단어마저도 너무나 작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 장면들, 대사들이 시간을 건너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상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지니죠.


 그리고 영화 또한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것을 기다려왔던 팬들을 위해 무엇 하나 아끼지 않습니다. 송태섭과 산왕고등학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강백호와 정대만 등 다른 캐릭터들을 대표할 만한 순간들 또한 잊지 않았죠. 여기에 시각과 청각을 적극 활용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장면 연출이 더해지며 말 그대로 러닝타임을 지배하고 주무릅니다.



 신드롬을 부활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되살린 추억을 즐기는 순간조차도 또 다른 추억으로 남길 자격을 얻었죠.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만은 않게 만드는 데엔 누구나 상상하는 것보다 여전히 훨씬 많은 방법이 있음을 수도 없이 새로 깨닫게 되네요. <타이타닉>과 <슬램덩크>가 지배하는 극장가라니, 회복된 2023년의 극장가가 이럴 줄은 과연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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