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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리뷰

작아지고 줄어든 퇴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Ant-Man and the Wasp: Quantumania)

★★


 비교적 늦게 합류했지만 이제는 원년 멤버들 중 한 명이 된 앤트맨이 돌아왔습니다. 조금만 스케일이 작아져도 디즈니 플러스로 밀려나는 와중, 더 작아졌음에도 돌아온 3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죠. 1편과 2편의 페이튼 리드가 다시 메가폰을 잡고,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마이클 더글라스, 미셸 파이퍼와 함께 조나단 메이저스, 빌 머레이, 캐서린 뉴튼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상을 구했음에도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우리의 앤트맨, 스캇 랭. '땅콩'이라 부르며 예뻐하던 딸 캐시는 어느새 훌쩍 커서는 반 다인 재단의 도움으로 양자 영역 연구까지 해내는 영재가 되어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스캇 일행은 다시 한 번 양자 영역으로 빨려들어가고, 그 안에서 결코 입 밖으로 낼 일 없을 줄 알았던 비밀들과 마주하며 세상의 운명을 건 전투를 시작합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등으로 평행 세계와 시간선 이야기를 꺼내들었던 마블이 이번에는 양자 영역으로 향합니다. 앤트맨 시리즈 전편들에서 살짝 맛은 보여주었지만, 타노스도 없어진 마당에 세계관을 이어나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셈이죠. 자기가 커질 수 없다면 남들을 커지게 만들어서 보이는 규모를 키우면 됩니다(?).



 접근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마냥 귀여운 꼬마였던 캐시가 사실은 엄청난 모범생이었고, 최첨단 장비 몇 개 쥐여 줬더니 무려 양자 영역과 소통하는 기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뭣도 모르고 양자 영역으로 보낸 신호에 반응한 존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양자 영역에서 잃어버렸던 재닛의 30년엔 이 세상과 우주를 뒤흔들 음모와 사건들이 한아름 숨어 있었다는 설정이죠.


 이렇게 간단하지만 복잡한 설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사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랬고 알고 보니 그랬다는 설명이자 해명이죠. 하나의 캐릭터에, 어쩌면 하나의 영화에 한 번만 활용해야 하는 치트키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익숙했던 얼굴들에게서 쏟아지니 새삼 생소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 캐릭터들이 맞나 싶은데, 시리즈 전편들과 어벤져스 시리즈까지 합치면 다소 의아한 출발이죠.



 여차저차 양자 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아바타> 시리즈의 판도라를 지향하듯 거주하는 생명체들의 외모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율법과 질서도 지구와는 딴판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원주민들과의 대화, 교통수단, 우주선 조종법 등 여긴 정말 특이하고 괴상한 세계라는 인상을 주는 데에서 정확히 그치는 일회성 장치들이 등장과 동시에 차례대로 휘발되어 사라집니다.


 이것이 이번 <퀀텀매니아>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마치 멀티버스처럼 또 하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듯 양자 영역이라는 개념을 이끌고 들어왔으나, 정작 보이는 것은 스쳐가기 위해 양산되는 외계 행성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토르가 자기 뽕에 취해 다 깨부쉈던 곳,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술 한 잔 하러 들렀던 곳, 닥터 스트레인지가 포탈로 들어갔다가 얼핏 봤던 곳과 아무런 구별점이 없죠.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은 그저 이질적인 광경이 되려는 일념으로 중구난방입니다. 보통 관객들에게 무채색과 직선이 익숙한 풍경이라고 판단했는지, 원색과 곡선을 뒤죽박죽 섞은 뒤 인물과 무대를 랜덤으로 생성해 제멋대로 배치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죠. 이 곳을 정말 하나의 영역이자 통일된 세계로 묘사하려는 일관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앤트맨 시리즈는커녕 마블 유니버스를 넘어 <스타 워즈>, <스타 트렉>, <닥터 후> 등을 뭉쳤으니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잘 붙어있을 리 없습니다. 타노스의 왕좌를 이어받을 조나단 메이저스의 캉부터가 그렇죠. 지금껏 죽인 어벤져스가 한 트럭이라며 손가락만 까딱여서 우주를 정복할 것처럼 굴더니, 더 신비한 우주선 엔진과 그보다 더 신비한 핌 입자 앞에서는 맥도 추지 못합니다.



 뼈대 없이 설정들로만 각본을 지탱하려는 판타지/SF 창작물들이 빠져들고 마는 스스로의 함정입니다. 센 것, 더 센 것, 더 더 센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어내 거칠 것 없이 참전시키니 상식 선의 설정 구멍이 범람하고 기존의 기둥마저도 위태롭죠. 양자 영역이 너무도 새롭고 생소한 나머지 주인공 스캇부터 관객들까지 그 누구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달까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안이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극중 캐시는 불의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손해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하는 열혈 10대로 묘사되는데, 세계의 멸망이 걸린 이 사단이 문자 그대로 캐시 때문에 벌어졌음에도 그 책임은 극중 누구도 캐시의 것이라는 지적조차 하지 않은 채 맹목적 정의감을 포장하기 바쁘죠.


 스포트라이트가 워낙 뻔하니 영화가 지금 누구를 영웅이자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하는지 눈치는 쉽게 챌 수 있지만, 정작 그 역할을 주체적으로 해내는 캐릭터는 스캇을 포함해도 없습니다. 스캇, 재닛, 캉, 캐시, 호프, 행크 등 인물은 인물끼리, 사건은 사건끼리, 나아가 인물과 사건끼리 섞이지 못하는 가운데 잊어버릴 쯤 되면 억지로 끌려나와 존재감을 확인당하죠.



 앤트맨이고 뭐고 없이 그냥 양자 영역 원주민들과 캉을 다루었어야 하는 각본을 억지로 앤트맨 시리즈에 욱여넣은 격입니다. 아 참, 스캇/재닛/호프/캐시/행크라는 사람이(그리고 개미도) 있었지! 라며 가뜩이나 흐늘대는 이야기를 휙휙 꺾어 나풀대죠. 여기에 마블 역사상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CG와 캐서린 뉴튼의 충격적인 연기력 등이 자잘하게 더해지면 슬픈 시너지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조나단 메이저스의 캉이 목적과 동력 등 가장 흥미로운 인물임은 확실하나, 이마저도 독립된 캐릭터였을 때의 이야기에 불과하죠. 특히 상대적으로 부족한 배우 이름값을 고려하면 굉장한 성취가 맞지만, 한편으로는 (TV 시리즈인 <로키>를 제외하고) 그런 잠재력의 본격적인 등장과 활약을 이렇게밖에 다룰 수 없었다는 점이 시리즈 3편인 이 영화에겐 독으로 작용합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일관성입니다.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가, 최소한 모든 것을 담을 그릇을 보여주려고 했다가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제목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인 영화가 앤트맨 영화도, 와스프 영화도, 양자 영역 영화도 아닌 무언가가 되었으니 그저 볼거리가 심심하다는 평범한 불평으로 털어낼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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