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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카운트> 리뷰

눈 감고 잽만 툭툭


<카운트>

★★★


 2010년 <해결사>를 내놓았던 권혁재 감독이 13년만에 돌아온 <카운트>입니다. 정확히는 2020년 중순 촬영을 마쳤으나 지금에서야 개봉되었죠. 진선규를 주연으로 성유빈, 오나라, 고창석, 고규필 등이 이름을 올렸고, 제작비 50억 원을 들여 손익분기점은 1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2일 개봉되어 현재까지 관객수 35만 명을 기록했으니 전망이 딱히 밝지는 못하죠.



 198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1998년 지금은 평범한 고등학교 선생인 시헌. 남은 건 고집뿐, 죽어도 굽히지 않는 마이웨이 행보로 주변 사람들의 속만 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한 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승부 조작으로 기권패를 당한 윤우를 보고 복싱부를 창설하고, 영문도 모른 채 레이더망에 걸려든 학생들과 함께 좌충우돌 복싱부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일단은 '주류에서 밀려난 문제아들이 세상에 날리는 유쾌한 한 방' 정도의 줄거리로 정리할 수 있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만화를 비롯한 창작물에서 성장형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기 딱 좋은 설정이죠. 주인공은 다루기에 따라 성장하는 주체인 학생이 될 수도 있고, 가끔은 그를 이끄는 스승이 주인공 자리를 가져가기도 합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주연급 조연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죠.



 <카운트>도 최소한 처음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남은 건 악과 깡뿐이라 남의 시선이나 의견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선생이 살면서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을 마주칩니다. 백날천날 보는 실력 없는 꿈나무들 사이에서 정말로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유망주를 발견한 것이죠. 다시는 끓지 않을 것만 같던 피가 달아오르고, 마침 그런 끓는 피로 때려부술 장애물도 등장하니 금상첨화입니다.


 이런 줄거리는 보통 스승과 제자에 초점을 맞추는 와중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경쟁자를 한 명 설정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주인공만큼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나 스포츠맨십 따위는 갖다 버린 상대 선수 혹은 스승이 되겠죠. 혹은 같이 훈련받으면서 주인공의 실력을 부러워한 나머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마는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들은 주인공 일행의 전진에 좋은 양분이 되죠.



 그런데 <카운트>는 여기서 이 일반적인 전철을 거부합니다. 경쟁자도 있고 동료도 있는 것은 맞는데, 딱히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승부 조작으로 그 위치에 올라간 상대인 터라 타고난 천재인 주인공이 때려눕히면 그만입니다. 특이하다고도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일회성 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메인 악역으로 쓰기에는 애초에 억지를 쓰지 않고는 그럴 수가 없죠.


 악역이 힘이 없는 것에 더해 또 하나 중요한 설명은 바로 '타고난 천재'라는 주인공의 설정입니다. 윤우는 말 그대로 타고난 천재라 그토록 악명높다던 시헌의 훈련에도 별다른 문제 없이 적응하고 시합만 했다 하면 연전연승입니다. 정말로 승부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이길 수가 없는데 성격마저도 고분고분하고 올곧은 완성형 캐릭터죠. 갈등의 해결사가 될지언정 갈등을 유발하는 광경은 없습니다.


 달리 말해 윤우는 성장형 캐릭터의 조건에 위배됩니다. 시헌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저 정정당당한 경기장만 있었으면 똑같은 결과를 얻어갔을 인물이라는 거죠. 이는 가뜩이나 어딜 비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스포트라이트의 밝기를 줄이는 선택입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던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 전제조차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 빈 자리는 역시나 통으로 잘라내도 전체 줄거리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조연들에게 돌아갑니다. 보기에 따라 캐릭터 자체가 웃기고 재미있고 사랑스러울 수는 있어도, 그 순간 이상의 유기적인 역할을 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 전혀 없으니 누가 어떻게 나오건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복싱이 팀 스포츠가 아니라도 해도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나마 시헌 쪽은 원치 않았던 금메달로 인생이 뒤틀린 스포츠 스타라는 흥미로운 설정에 실화라는 양념이 더해지며 어느 정도의 입체성을 확보하지만, 그는 박시헌이라는 개인에 한정될 뿐 제자들과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틱틱대면서도 챙겨주는 츤데레 선생님 이상도 이하도 아닌 터라 그 캐릭터만의 개성을 확장하지는 못하죠.



 그래도 기본적으로 '착한 영화'라는 일관성을 갖춘 재료들을 모나지 않은 전개로 이은 덕에, 소소한 에피소드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스포츠 드라마나 실화의 전달 등 영화가 부수적으로(혹은 혹시 모르니 중점적으로) 노렸을 효과는 크게 발현되지 못했지만, 한 번쯤 따뜻하게 보고 지나가기에 큰 부담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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