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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대외비> 리뷰

정치 범죄 자판기


<대외비>

★★☆


 2019년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이 4년만에 복귀한 <대외비>입니다.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이 뭉쳐 촬영은 지난 2020년 중순부터 2021년 중순까지 마무리되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를 두 번 넘긴 올해 삼일절에야 개봉을 맞이했네요. 당초 <대외비: 권력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으나 중간에 부제가 사라져 지금의 제목으로 굳어졌습니다.



 1992년 부산, 밑바닥 정치 인생을 끝내고 싶은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금뱃지를 달 것이라 확신했지만, 정치판을 뒤흔드는 권력 실세 순태에게 버림받으며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합니다. 판을 뒤집어 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해웅은 부산 지역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입수하고, 순태 또한 그 문서의 존재를 알게 되며 점차 해웅의 숨통을 조여 옵니다.


 정치판과 주먹이 얽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나라를 위한 사명감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이는데, 실상은 더욱 어둡고 더욱 폭력적이죠. <내부자들>, <부당거래>, <베테랑>,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등 충무로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로 그 소재입니다. 선과 악 따위는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된 곳을 지배하는 것은 더 독하고 더 악한 놈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매번 다른 이름들을 걸고 나오기는 하지만, 캐릭터들의 역할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판의 실상을 모르기에, 혹은 어설프게 알고 있기에 남들은 결코 하지 못할 미친 도전을 해내는 인물입니다.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라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없지는 않지만 다소 부족한 능력으로 맨땅에 헤딩부터 시작하죠.


 그의 곁에는 그 과정을 도와 줄 주먹 혹은 브레인 한 명이 상주합니다.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인공보다는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렇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넘보는 인물이죠. 중반부까지야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내면서도 각본의 필요에 따라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한 긴장 상황도 영화의 큰 동력이 되구요.



 마지막으로 그런 주인공 일행과 맞서게 되는, 각본상의 악역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이 판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이 판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뒷세계의 절대자죠. 근본도 없는 주인공 일행의 등장에 처음엔 코웃음도 치지 않지만, 이내 세력을 확보해 가는 움직임을 조금씩 경계하면서 서서히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저지하려 나섭니다.


 사실 이런 구성은 굳이 정치 범죄물이 아닌, 소위 말하는 왕도물의 정석이기도 합니다. 열혈 주인공이 적당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최강자와 맞설 존재로 성장하는 그림이죠. 그러나 같은 공식을 사용한다면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음이 여러 동종 장르 전작들로 증명이 되어 온 터라 정치 범죄물에서 특히나 애용되는 공식이 되었습니다.



 뻔한 공식을 자기만의 기승전결로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모범 사례들의 경우 모두 같은 구성을 채택했음에도 단 한 줄의 대사, 단 한 명의 인물, 단 한 개의 장면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대표할 만한 정체성이 수두룩하죠. 물론 결과적인 분석이겠지만, 그 개성의 유무가 바로 영화의 장르적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분기점이 되겠습니다.


 일단 인물부터 살펴보자면, 애석하게도 <대외비> 쪽에서 보여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정치 입문생, 이 바닥에서 잔뼈 굵은 조직 폭력배, 그리고 말 한 마디면 부산은 물론 정계까지도 쥐락펴락하는 세도가. 문장으로 정리했을 땐 그럴듯한 이 셋은 의외로 영화 내내 자신의 쓰임새를 다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르는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약한지, 어느 것은 할 수 있고 어느 것은 할 수 없는지 영화 스스로도 마땅한 기준을 세우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전현직 국회의원도 아닌 동네 아저씨가 정계에 입문했는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다는 사람과는 이미 아는 사이입니다. 그런 그가 시달리던 사채업자는 전화기만 들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주먹만 내밀면 지는 일이 없죠.


 해웅과 순태는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해웅은 도움을 마다할 만큼 청렴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먼저 순태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는지, 필도는 자기 돈도 못 갚아서 쩔쩔매던 사람의 무엇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지, 투표함에 손을 댈 노력으로 해웅을 건드릴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 앞서 놓친 전편이라도 있는 듯 당연히 설명될 것이라 기대한 너무 많은 것들이 화면을 그저 스쳐 지나갑니다.


 다시 말해 누가 들어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결과는 물론 전개까지 다 정해져 있는 설계 도박판과 같습니다. 누가 들어와서 어떤 패를 뽑건 이미 판돈과 승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관건은 이 판이 설계되었다는 것을 끝까지 들키지 않는 것인데, 시작부터 그런 향기를 대놓고 폴폴 풍기면서도 그걸 가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판돈도 걸지 않고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선 건질 게 딱히 없습니다.



 대외비라는 소재마저도 영화의 중심과 제목까지 차지할 자격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 정체를 끝까지 숨겨 영화의 긴장과 재미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별것도 아닌데 우습기까지 한 방법과 경로로 유출되어 그 대단하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벌벌대는 모습에 가깝달까요. 무엇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것이 더 큰 반전입니다.


 차라리 중반부에 등장하는 투표함이 각본이 요구하고 관객들이 단어의 무게감에 기대할 만한 '대외비'에 한층 충실한 소재입니다. 영화도 그것을 알고는 있는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소재를 그렇다고 우기기 위해 기자 캐릭터를 난데없이 끌어들이죠. 당연히 그런 단순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물론 영화의 방향성과도 겉돌며 악수의 악수가 될 수밖에 없구요.



 이 바닥에 선악이란 의미를 잃은 지 오래라는 문장이 영화의 길이가 될 때까지 또아리를 틀었습니다. 각본과 무관한 예고편용 명대사들의 무게감도 과하고, 무엇이든 비어 보이는 곳이라면 빠짐없이 덧바른 폭력성마저도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지만, 예고편 정도만 보아도 그려지는 그림에서 제자리걸음으로 숨에 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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