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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똑똑똑> 리뷰

선택의 자유를 건 선택


<똑똑똑>

(Knock at the Cabin)

★★★☆


 <올드> 이후 2년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똑똑똑>입니다. 원제 <Knock at the Cabin>과 비교하면 꽤 귀여운(?) 제목으로 수입되었죠. 폴 트렘블레이의 소설 <The Cabin at the End of the World>을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조나단 그로프, 벤 알드리지, 크리스틴 쿠이, 데이브 바티스타, 루퍼트 그린트, 애비 퀸, 니키 아무카-버드가 함께했습니다.



 딸 웬과 함께 외딴 곳으로 휴가를 온 에릭과 앤드류. 계획한 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 집에서 만든 듯한 무기를 하나씩 든 낯선 방문자 네 명이 문을 두드립니다. 무단으로 침입해 둘을 묶어놓은 이 방문자들은 갑자기 미친 소리를 늘어놓죠. 자신들은 세상의 종말을 막으러 왔으며, 지금 여기서 당신들 셋 중 한 명이 죽임을 당해야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설정만 들어보면 혹합니다. 알면서도 또 속는 기분입니다. 보통 이렇게 한두 줄의 줄거리만으로 호기심을 있는대로 자극시켜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수법(?)은 기승전결을 신경쓰지 않는 B급 영화들의 주 무기지만, M. 나이트 샤말란은 여러 작품들을 통해 왜인지 모르게 그 이상을 바라도 될 것 같은 기대를 주죠. 시간이 빨리 흐르는 섬을 무대로 한 직전 작품 <올드>도 마찬가지였구요.



 다만 이번 <똑똑똑>에서는 하나의 겹을 추가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주인공 에릭과 앤드류 또한 관객과 같은 시선을 공유하죠. 무언가가 벌어져 결과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 전제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 초중반부 내내 걸쳐 전개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뜸 이들의 거처를 찾아온 레너드 무리의 태도부터 어딘가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중 한 명이 기꺼이 죽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것이고,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이끌어내러 온 사람들치고는 너무나 불안해 보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믿음으로 가득차 자신들의 행동에 멈춤이 없어야 하지만, 이들은 시종일관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그 점이 이들의 행동을 더욱 기괴하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인간성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기에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들이 이걸 하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인달까요. 그 이중성은 에릭과 앤드류를 더욱 혼란하게 하고,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이 하나둘 들어맞는 모습은 더한 혼돈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화는 에릭과 앤드류가 레너드 일행을 믿지 않을 이유도 조금씩 제공합니다. 누가 죽겠다는 결심이 늦어질 때마다 세계 각지에서는 기습적인 재난이 일어나지만, 그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은 생방송이 아닙니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나 혐오 범죄의 타겟이 되어야만 했던 둘에겐 이것마저도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뒤틀린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기도 하죠.


 미스터리 장르 영화들이 곧잘 써먹는, 양쪽 모두의 근거를 꾸준히 제공하는 연출의 스케일을 몇 배로 키운 셈입니다. 이 쪽이 맞나 싶다가도 저 쪽이 맞는 것 같고, 저 쪽으로 기울어지다 보면 다시 이 쪽이 유리해지는 상황의 연속이죠. 이를 잘못 의도하려다가는 전말이 밝혀진 뒤에 설정 구멍으로 남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만, <똑똑똑>은 꽤 깔끔한 균형잡기를 선보입니다.



 재난을 예고하는 네 명이 찾아와 한 명의 기꺼운 희생으로 모든 생명을 구원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다니, 얼추 성경 분위기를 내는 덕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는지 필요 이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며 떠먹여 주려 하는데, 샤말란 스스로도 '샤말란 영화'에 갖는 관객들의 편견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살짝 안타깝기도 하죠.


 에릭이나 앤드류, 딸 웬보다도 레너드 역할을 맡은 데이브 바티스타의 섬세한 연기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때처럼 덤덤한 대화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각본이 요구하는 순간엔 그 이름과 덩치에 기대하는 장면도 놓치지 않는데, 그 둘이 합쳐져 말 그대로 묵직한 존재감을 내죠. 간만에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 루퍼트 그린트의 얼굴도 여전히 반갑구요.



 초반부에 형성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후반부까지 균형 좋게 유지하고, 종국까지 따라간 실마리가 밝히는 큰 그림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대화만으로 구성하였음에도 그 범위를 전지구로 자연스럽게 넓히는 등, 자신이 사용하는 소재의 잠재력을 잘 파악하고 있죠. 바깥의 상징에 목매지 않은 채 이야기를 스크린 안에서 유지하려고 한 점에도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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