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Jul 15. 2023

<카지노> 리뷰

뭐 하나 걸리겠지 싶어 패만 주구장창


<카지노>

★★


 작년 12월부터 공개되기 시작해 지난 주에 마지막화인 16화를 공개하며 막을 내린 디즈니 플러스의 <카지노>입니다. <롱 리브 더 킹>과 <범죄도시>의 메가폰을 잡은 강윤성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최민식을 주인공으로 손석구, 이동휘, 이문식, 허동원, 김민재, 김홍파, 허성태, 김주령, 임형준, 민성욱, 손은서, 이혜영, 최무성, 오달수, 니코 안토니오, 김민, 벰볼 로코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죠.



 우여곡절 끝에 필리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카지노의 왕이 된 차무식. 뒷세계에 넓게 뻗친 어마어마한 영향력 덕에 그의 말 한 마디면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마저 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는 항상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법, 매 순간 자신의 자리는 물론 목숨까지 오가는 줄타기를 각오해야 하죠. 이번에야말로 그를 끌어내리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전반부의 얼개는 주인공 최민식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와 꽤 닮아 있습니다. 물론 그 영화에서는 업계와 전혀 무관하던 세관 직원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렸지만, 업계 밑바닥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으로 가장 높은 자리를 넘보게 되는 전개기도 하죠. <카지노>는 여러모로 훨씬 본격적이고 어두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총 16부작을 8부씩 나누어 시즌 1과 시즌 2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쭉 촬영된 시리즈를 단순히 공개 시기만 나누었기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시즌제 드라마와는 조금 다릅니다. 예전에는 OTT로 공개되는 드라마 시리즈의 큰 장점이자 승부수 중 하나가 전체 시즌을 한 번에 공개하여 에피소드별로 일주일씩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구독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 휴방기까지 가지고 있네요.


 어찌됐건 그렇게 펼쳐지는 <카지노>의 방향성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고사성어 '화무십일홍'을 헷갈려 '권무십일홍'으로 알고 있는 정팔과 무식의 대화죠.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은 영원할지언정 권력을 쥐는 사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무식 또한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언젠가는 그 정상을 내주어야 할 운명인 것이죠.



 물론 뒷세계에서는 그 방식이 좀 더 잔혹할 뿐입니다.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표현이 일반적으로는 고꾸라뜨려 다시는 이 바닥에서 설치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를 뜻한다면, 법보다 강력한 수단이 말 몇 마디면 가능하고 심지어는 주머니에서도 튀어나오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다르죠. 경찰마저도 범인을 경찰서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에게 산지 직송해주는 곳인지라 모든 수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시즌 1은 주연급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들이 본 무대에서 자리를 잡는 과정입니다. 각 인물들을 소개하고, 이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죠.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이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예측하게 하는 준비입니다. 물론 그런 것치고는 차무식의 과거사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오승훈의 등장이 지나치게 늦기도 하지만요.



 이를 통해 전반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 차무식이겠죠. 모두가 하지 않으려고 하는 험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서, 그것도 너무나도 여유롭게 해내는 그는 떡잎부터 남달랐습니다. 그냥 공부를 했어도 성공했을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자신이 세운 철칙은 어기지 않으며 신의를 누구보다도 소중히 생각하죠. 그야말로 업계에 흔한 양아치나 건달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입니다.


 이 특징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반복적으로 증명됩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마저도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기만 한다면 용서하는 대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가차없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는 등 마냥 물렁하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다소 장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차무식이라는 캐릭터의 개성을 공들여 쌓는다는 의미도 되겠죠.



 의외로 이처럼 강렬하고 무지막지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각본치고는 그에 대적할 인물이 부재합니다. 손석구의 오승훈, 허성태의 서태석, 이혜영의 고 회장, 벰볼 로코의 다니엘 등 적대 관계에 있거나 언제든 그렇게 발전할 수 있는 인물들은 여럿이지만, 일부 에피소드로 소모될 뿐 각본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대립 관계는 딱히 찾아보기 어렵죠.


 바로 이 지점이 시즌 2를, 그리고 결말부가 포함되는 바람에 나아가 시리즈 전체를 망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카지노>에 등장하는 인물은 무려 17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인물들이 차무식이라는 거대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퍼져 있기만 합니다. 각본의 기세에 맞물려 균형추를 만들거나 탑의 재료가 되기는커녕, 그저 뭔가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꺼내 쓰고 버리는 카드 패에 가깝죠.



 기껏 꺼내놓고 쌓아놓은 것들은 후반부 내내 아무런 의미 없이 소모되거나 잊혀집니다.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떡밥이나 복선은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잊혀지고, 그토록 열심히 설명해 둔 설정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전개는 제멋대로 폭주해 절벽으로 떨어지죠. 지금까지 이렇게 행동했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예측은 아무런 예고도 근거도 없이 부서지길 되풀이합니다.


 찰리, 소정, 필립, 석우 등 일부 조연들은 쓸데없이 많은 비중을 가져간 뒤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고, 고 회장이나 양상수 등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던 인물들은 통째로 덜어내도 전개에 별 영향도 없습니다. 마지막에서야 갑자기 튀어나와 설치는 인물도 마찬가지죠. 애초에 주연급으로 깔아 둔 캐릭터들마저 직전까지의 움직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으로 몸부림을 치기에 조연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습니다.



 각본에 뚜렷한 방향성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매 에피소드를 직전 에피소드만 보여준 뒤 릴레이 집필이라도 시킨 것 같죠.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쉰다는 표현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정말로 이들을 한 무대에 풀어놓기만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는 데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기본 줄거리를 읽고 맨 마지막 에피소드만 보는 것이 앞선 이야기들을 상상으로 채워넣어 이해에는 더 나은 방법이 될 겁니다.


 때문에 마지막 에피소드나 시즌이 다 망쳤다고 말하는 일반적인 사례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 사례들은 보통 잘 가다가 응? 하면서 다 무너지는 결말인데, <카지노>는 이렇게 줄기와 가지의 구분 없이 제멋대로 뻗어가고 있었으니 언제 어느 곳에서 끊어도 같은 이야기가 나올 구성이었습니다. 한 곳에서 마침표를 찍으면 똑같이 마침표를 기다리던 나머지 모든 곳이 물음표로 끝나 버리는 격이죠.



 권력과 인간 관계의 허망함을 다루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 정도면 추상화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무질서입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제목이 '카지노'인 이유조차 망각한 것처럼 보이죠. 지정된 사람이 아주 정확한 시간에 아주 정확한 각도로 바라보아야만 무언가 보일락말락하고, 그를 제외한 모든 시선에서는 하나의 그림으로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지탄을 받아야 할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파벨만스>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