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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파벨만스> 리뷰

가족사진으로 개인전


<파벨만스>

(The Fabelmans)

★★★☆


 202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내놓고도 쉬지 않은 스티븐 스필버그 신작, <파벨만스>입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손잡고 감독, 제작, 각본까지 1인 3역을 담당했고, 가브리엘 라벨을 주인공으로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주드 허쉬, 세스 로건, 오크스 페글리 등이 함께했습니다. 원어 발음은 '페이블맨스'에 가깝지만, 그걸 들어보기도 전에 확정되었는지 국내 제목은 <파벨만스>가 되었죠.



 난생 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 아빠 버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며 충격에 빠지죠.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미치의 응원 덕에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갑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영화입니다. 얼마 전 개봉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과 뿌리를 공유하는 이 영화는 그보다는 좀 더 담백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죠. 운명처럼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인생에도, 영화에도 한 발씩 더 나아가게 되는 일기와도 같은 구성입니다. 러닝타임도 151분으로 다소 긴 편이지만, TV 드라마처럼 소소하게 흘러가는지라 무리없이 볼 수 있죠.



 새미는 최소한 영화에 한해서는 꽤 운이 좋습니다. 재능과 애정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를 뒷받침할 환경이 꼭 따라오는 것은 아닌데, 그를 응원하고 북돋아 줄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으니 틔운 싹에 물이 부족할 날이 없습니다. 물론 영화 일로는 어엿한 가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있긴 하나, 그마저도 첫 카메라를 선물해 준 사람인 동시에 진심으로 새미를 아끼기에 하는 말이었죠.


 이미 꽤 알려졌다시피, <파벨만스>는 다름아닌 스티븐 스필버그 본인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긴 작품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 성씨인 '파벨만'을 빌려 자신이 영화를 향한 사랑을 싹틔웠던 시절의 개인사를 담아냈습니다. 에피소드 각색도 거의 없이, 심지어 새미가 미치와 베니의 관계를 우연히 알아내는 과정마저도 가까운 가족들조차 영화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실화였다고 하지요.



 실화를 영화화하는 작업엔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스필버그쯤 되는 감독이면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도 하나의 작품이자 고백이 됩니다. 자신의 눈에 보였던 세상, 그런 세상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 담아낸 자신만의 세상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죠.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불가피한 것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이 바로 영화고 인생입니다.


 때문에 전개나 사건 자체의 독특함을 갖춘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새미는 비교적 온건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새미가 누구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보고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그렇게 새미는 영화를 좋아하고 촬영에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의 주인공이 되는데, 학교에서 그를 괴롭히던 동급생마저도 두 손을 들 지경이죠.



 오히려 정말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새미의 엄마 미치는 딱히 제대로 된 캐릭터가 아닙니다.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는 과신에 사로잡혀 있는 디즈니 공주형 인물이죠. 가족에게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미안한 것은 잠시, 자신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순응한 것일 뿐이라는 순진무구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스필버그 입장에서야 어찌됐건 사랑하는 어머니였겠지만, 스크린 안에서 도움이 되는 설정은 아니죠.


 게다가 이번 각본처럼 자신의 과거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처럼 마냥 유복하거나 평탄하지 않았다는 고백엔 배부른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그 의도의 순수함을 잃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미치를 묘사하는 방식처럼 그래도 사실은 다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포기하거나 내려놓지 못하는 최후의 고집을 만났을 때 부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밖에 없구요.



 기승전결 동안 무언가를 탄탄히 쌓아올려서 완성하는 전개가 아닙니다. 고정된 시선 앞에 같은 결과 무게로 지나가는 사건들을 하나씩 바라볼 뿐이죠. <E.T.>를 포함해 가족과 인생을 다룬 스필버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이야기의 뿌리가 되었던 뼈대를 갈고 닦아 전시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목소리라면 살을 붙이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물론 스필버그라면 그래도 보고 들어줄 사람들이 많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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