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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에어> 리뷰

비상한 신발, 비상한 신화


<에어>

(Air)

★★★★☆


 2016년 <리브 바이 나이트> 이후 간만에 메가폰을 잡은 벤 애플렉의 <에어>입니다. 아마존 스튜디오의 투자로 만들어져 스트리밍 공개 예정이었으나, 자신만만하게도 극장 개봉도 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죠. 절친 맷 데이먼을 주연으로 본인 출연도 겸했으며, 제이슨 베이트먼, 비올라 데이비스, 크리스 터커, 말론 웨이언스, 크리스 메시나, 매튜 마허 등과 함께했습니다.



 1984년, 업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이키는 브랜드의 간판이 되어 줄 새로운 모델을 찾습니다. 나이키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는 NBA의 떠오르는 루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의 미래라고 확신하죠. 그러나 이미 시장을 장악한 컨버스와 아디다스가 막대한 돈과 명성으로 그와의 계약을 노리는 상황, 나이키 팀은 조던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 2023년 지금은 전 세계 누구에게 물어봐도 익숙한 업계 최고의 이름들이죠. 그러나 1984년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컨버스는 당연한 1인자였고, 쿨하고 멋진 이미지는 2위였던 아디다스가 갖고 있었죠. 나이키는 이도저도 아닌, 품질도 그닥에 힙하지도 못해서 쓰는 사람들이나 대충 쓰는 브랜드에 불과했습니다.



 <에어>는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던 바로 그 시기, 마이클 조던이라는 대형 신인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초대형 신인이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론 마이클 조던은 당시에도 주목받는 선수였지만, 곧잘 하면 당시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도 있는' 수많은 대형 신인들 중 한 명에 불과했죠. 그러나 소니의 눈은 달랐습니다.


 선수 발굴이라는 단 하나의 사명만을 가지고 나이키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는 정말 우연한 기회와 계기로 마이클 조던에게 주목합니다. 매일같이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누구나 볼 수 있었던 무언가를 보고 살면서 한 번 오려나 싶은 확신에 가득찬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마이클 조던에게 베팅합니다. 컨버스와 아디다스를 놔두고 나이키와 계약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죠.



 물론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나이키가 내세운 조건은 제아무리 나이키 역사상 가장 큰 모험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영향력과 자금력을 등에 업은 컨버스와 아디다스 또한 크게 어렵지 않게 맞춰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죠. 심지어 마이클은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아디다스를 가장 좋아했다는 사실도 공공연했구요. 게다가 아직 어린 마이클의 곁엔 아들의 잠재력을 일찍이 알아본 어머니도 단단히 버티고 있죠.


 <에어>는 하나의 기승전결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과의 계약을 따낸 이야기, 에어 조던이라는 신발이 탄생한 이야기,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팀의 이야기, 그리고 원하고 또 믿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확신을 무기 삼아 앞만 보고 달려가는 투지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리고 영화는 비슷한 듯 다른 그 이야기들을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고 탄탄하게 엮어냅니다. 112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지는 기승전결은 소니의, 나이키의, 소니와 동료들의, 그리고 동시에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입니다. 분명 <에어>가 다루는 하나의 사건은 지금의 나이키와 지금의 마이클 조던을 있게 한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로 충분해 보이는 마법을 부리죠.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엔 탁월한 강약 조절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조연들은 모두 뚜렷한 개성으로 무장했지만,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인 장면 없이 정확한 순간에 등장해 각본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대사와 장면만 꺼내놓은 뒤 다시 정확한 순간에 빠지죠. 각자 등장하는 시간을 따져 보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캐릭터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단순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비법입니다.


 선택과 집중도 훌륭합니다. 마이클 조던과 에어 조던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마이클 조던의 등장을 최소화했습니다. 뒷모습과 옆모습만 등장할 뿐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대사는 많아야 두어 마디뿐이죠. 그럼에도 <에어>가 마이클 조던 이야기라는 데엔 이견을 낼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후반부 극중 모두가 극찬한, 마이클 조던은 영원하리라는 소니의 즉흥 연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구요.



 유머도 빠지지 않습니다. <에어>는 의외로 아주 웃긴 영화입니다. 모든 영화가 아무나 등장시켜서 써먹을 수 있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에어>가 갖고 있는 재료와 상황을 영리하게 활용한 유머죠.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캐릭터들의 개성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고, 이를 다시 영화의 전개나 특징으로 발전시키는 선순환을 이루어내죠.


 무엇보다 놀라운, 그래서 이 영화 최대의 성취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관객들이 이미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제아무리 의류나 스포츠에 관심이 없더라도 마이클 조던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에어 조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그 점에서는 마침 조던을 신은 주인공이 나오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도 동력을 공유하죠.



 농구를, 마이클 조던을, 에어 조던을, 나이키를, 배우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을, 감독 벤 애플렉을, 스포츠 실화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전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겨냥합니다. 이들 모두가 아니라 하나만 만족하더라도 즐길 여지가 충분한 영화죠. 상영이 종료되고 나오는 길, 그러지 않아도 자주 보이던 나이키 로고와 조던 신발들에 괜히 눈도장 한 번씩 더 찍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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