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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TAR 타르> 리뷰

예술가와 예술 가운데 울렁이는 균형점


<TAR 타르>

(TÁR)

★★★★


 2006년 <리틀 칠드런> 이후 무려 17년만에 복귀한 토드 필드 감독의 <TAR 타르>입니다. 공식 제목에 원어를 병기하는 사례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듯한데, <TAR 타르>의 경우 다른 국가들에서도 동일하게 표기된 것을 보면 감독 쪽의 의도였던 것 같지요. 케이트 블란쳇을 주인공으로 노에미 메를랑, 니나 호스, 마크 스트롱, 소피 카우어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내 개봉은 지난 2월 22일이었구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진취적인 커리어와 태도로 무장한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두려울 것 없이 전진합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비서와 소통하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지만,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 일상은 어느 한 곳 먼저랄 것 없이 아주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죠.


 업계의 거물 리디아 타르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죠. 옳은 선택이라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린 선택이라서 옳다고 주장해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는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갖춰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다채롭게 쏟아낼 수 있고, 그를 뒷받침할 실력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죠.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을 초반부에 그토록 완벽에 가깝게 쌓아올린 영화는 작업이 완료되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진짜 의도를 꺼내듭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흠 하나 없어 보이던 타르는 조금씩 이상한 결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렇게 해도 되나 싶은, 결국 이 사람도 흔히들 권력의 중심에서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만 이중적인 작자가 아닌가 싶은 모습을 서서히 금이 가듯 묘사하죠.


 한 번 가기 시작한 금은 안과 밖에서 동시에 타르를 공격합니다. 하나가 꼬이고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 같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연결되어 더 큰 균열로 합쳐지죠. 설상가상으로 가장 편안해야 할 침실에서도 이유 모를 소음과 방해로 잠을 설칩니다. 정신이 편안할 순간이 없으니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는 것 같고, 이는 구르고 굴러 파괴를 가속합니다.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과 창작물의 경계선이죠. 예술의 정점에 오른 창작물들은 역사상 전 인류에게 막대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를 탄생시킨 인물이 역사적인, 도덕적인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경우도 많죠. 굳이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대중에게 사랑받던 모 연예인이 무슨 짓을 했다는 기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집니다.


 <TAR 타르>는 예술과 권력, 명예, 그리고 도덕이 한데 뭉쳐 이제는 어느 하나를 나머지로부터 깨끗하게 떼어내기란 불가능한 그 상태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창작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도, 그 창작자가 창작물을 만들어낸 순간이라고 볼 수도, 그 창작물이 대중에게 인정받은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죠. 물론 시작점이 중요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형성된 뒤입니다. 명예는 곧 권력이 되어 도덕의 경계를 흐릿하게 합니다. 출발점에서는 바르고 곧았던 사람일지라도, 문자로 적으면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더라도 구름 위에서는 옳지 못한 선택을 내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은 정점이자 전환점이 되어 이제 움직임의 주도권을 자신의 창작물과 재능에 내어주어야 하죠.


 한때는 움직이는 음악을 지휘하고 통제하던 사람이 이제는 음악의 손에 지휘당합니다. 악단의 연주자를 결정하고 연주자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 설 사람까지 결정하던 사람이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써 주길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의 덩어리는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바라보는 곳에 따라 같았던 것도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상황의 파편들을 잘라 모으면 한 사람을 무너뜨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권력과 재능의 흥망성쇠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되기 싫으면 똑바로 행동하라는 등의 특정한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타르의 결정은 그 입지에서 그 상황에 처한 인물이라면 큰 위험부담을 기대하지 않은 채 내릴 법한 것들이죠. 그렇기에 영화가 그리는 사건의 흐름은 더욱 불가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임에도 한편으로는 더욱 가혹하고 잔인하게 보이기도 하죠.


 재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손가락 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물결처럼 늘어진 음표를 함께 통제한다는 점에서 지휘자는 그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블루 재스민>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신경 쇠약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 케이트 블란쳇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더해 그 폭을 한층 넓히구요. 



 'TAR'의 철자를 섞으면 'ART'가 됩니다. 리디아 타르의 일대기는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곱씹게 하죠. 떨어뜨리지 못할 것 같지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막상 떨어뜨리고 싶어도 떨어뜨릴 수 없는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입니다. 현지 제목에도 알파벳 세 글자를 꼭 넣은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예술가의 예술, 예술의 예술가는 순간의 동의어에서 영원한 주도권 다툼의 전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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