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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렌필드> 리뷰

수혈도 잊고 마냥 줄줄


<렌필드>

(Renfield)

★★☆


 <레고 배트맨 무비>, <투모로우 워>의 크리스 맥케이가 내놓은 <렌필드>입니다. 니콜라스 홀트와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인공으로 아콰피나, 벤 슈워츠 등이 함께했죠. 그 유명한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 <드라큘라>의 등장인물이었던 렌필드에게 초점을 맞추어 현대적인 각색을 끼얹었습니다. 제작비는 6500만 달러를 들였으나, 전 세계 흥행 수익 2400만 달러에 그치며 쓴웃음을 삼켜야 했지만요.



 드라큘라에게 취업사기(?)를 당하고 24시간 밤낮없이 그에게 순결한 제물을 바치는 직속 비서 렌필드. 남들과 다른 직장 생활에 점차 피폐해져 가던 찰나,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친구 레베카를 발견하며 지금껏 가슴 한 켠에 숨죽이고 있었던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제발 이 지겹고도 유혈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였죠.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트와일라잇> 즈음부터 한창 유행했던, 정적인 앵글의 흑백 화면에 어울릴 고전 캐릭터들의 재해석처럼 보입니다. 어둠 속에서 피를 갈구하는 제왕 드라큘라를 꼰대 상사쯤으로 치환해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의 애환을 다루다니, 아이디어는 충분히 흥미롭죠. 드라큘라가 아닌 부하 렌필드의 시선과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끄는 접근도 신선함에 도움이 되구요.



 배우 조합도 나쁘지 않습니다. 소재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웜 바디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니콜라스 홀트, 그리고 90년대부터 장황하게 이어진 과장된 연기 덕에 본인을 연기하는 영화까지 찍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만남이죠. 어느 모로 보나 이 각본에 이 배우들을 출연시켰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구석들이 영화 곳곳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주연과 조연들이 더해집니다. 렌필드가 첫눈에 마음을 이끌린 레베카, 그리고 그 레베카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좀 더 거대한 판에 입장시킨 벤 슈워츠의 테드 로보가 있죠.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시리즈의 중세 판타지쯤 되던 영화가 갑자기 로맨스와 범죄 느와르에도 한 발씩을 담그니 각본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벌어진 각본은 어떤 관객의 마음을 빼앗아야 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애초에 초능력자들을 등장시키는 영화치고는 스케일은 아담한 편이라 화려한 볼거리는 준비해둔 것이 없고, 누구나 겪어 보았을 직장인의 애환을 센스 넘치게 빗댈 줄 알았더니 사랑인지 아닌지 본인도 쉽게 인정하지 못할 어정쩡한 러브라인과 왜 나오는지 모를 조직 폭력배들이 한가득이죠.


 게다가 스스로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을 꽤 즐기는 영화입니다. 썰고 찢어지고 피가 튀는 유혈을 오락적으로 활용하는데, 소소한 개그나 로맨스에는 당연히 아주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죠. 언급한 그 두 개가 영화를 지탱하는 커다란, 그리고 몇 되지 않는 기둥들이라는 것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결함이구요. 가진 재료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독이 되었달까요.



 때문에 파편들만 놓고 보았을 때엔 매력적이거나 시선을 잡아끌 대사, 연출, 장면, 설정이 왕왕 있지만, 이를 하나의 기승전결에 매끄럽게 녹여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들을 죄다 집어든 바람에 어느 한 쪽만 있었다면 그나마 애정을 가졌을 관객들마저도 참아야만 하는 구간을 사서 만들어 버렸죠.


 렌필드를 주인공 삼아 제목까지 <렌필드>인 영화를 기획했다면, 조금 더 렌필드에 초점을 맞춘 영화여야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영화는 렌필드의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훨씬 집중하죠. 렌필드의 과거사는 소위 '아무 데서나 굴러먹던 애 거둬서 잘 키워 줬더니' 하는 정도밖에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렌필드는 현재에 불만족하며 새로운 것을 꿈꿉니다.


 지금의 렌필드에게 새로운 것이라면 평범한 삶으로의 복귀일 것이고, 그것은 렌필드의 평범했던 과거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어떤 근거도 보여주지 않는데다가, 현재의 렌필드가 그나마 만족하는 소소한 행복들은 대부분 드라큘라가 준 능력 덕분에 가능했죠. 출발점부터 모순이었으니 렌필드는 영화를 홀로 지탱할 재료가 되지 못합니다.



 드라큘라를 무찌르려는 제 3의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이 드라큘라를 마주칠 때마다 이 지겨운 직장 좀 때려치고 싶다며 주인공에게 하소연하는 개그성 캐릭터에나 딱 맞는 그릇이 바로 렌필드입니다. 그런 캐릭터를 억지로 이 환한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에 끌어다 놓으니 다른 곳에서 힘을 빌려올 수밖에 없었죠. 처음부터 그랬던 캐릭터를 그렇지 않다고 끝까지 우기기엔 준비한 말이 딱히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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