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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인어공주> 리뷰

파도에 비치지 못한 후광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숲속으로>, <메리 포핀스 리턴즈> 등 디즈니 영화들과 꾸준한 인연을 유지해 온 롭 마샬 감독의 <인어공주>입니다. 아마 할리우드 역사상 영화 밖에서 가장 많은 말이 오간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국내엔 지난 5월 24일 상륙해 공휴일 특수를 누리고 있음에도 관객수 추이는 꽤 더딘 상황입니다.



 아틀란티카 바다의 왕 트라이튼의 사랑스러운 막내 인어 에리얼은 늘 인간들이 사는 바다 너머 세상으로의 모험을 꿈꿉니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와 기회로 폭풍우 속에서 에릭 왕자의 목숨을 구한 에리얼은 좀처럼 그를 잊지 못하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 에리얼은 사악한 바다 마녀 울슐라와의 위험한 거래를 통해 다리를 얻고, 하나뿐인 운명을 찾아 인간 세계로 향합니다.


 <라이온 킹>, <알라딘>, <정글 북> 등 디즈니 실사영화 시리즈는 언제 어떤 화젯거리가 되어도 수익이라는 확실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만들었다 하면 웬만한 새로운 프로젝트보다 훨씬 보장된 무언가가 있었기에 마냥 놔둘 수만도 없었겠지요.



 그 순번이 이제 <인어공주>에게 돌아왔습니다. 할리 베일리를 주인공 에리얼로 캐스팅하고 조나 하우어 킹, 하비에르 바르뎀, 멜리사 맥카시도 함께 출연했죠. 제이콥 트렘블레이, 아콰피나, 다비드 디그스는 목소리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구요. 캐스팅을 두고 전 세계 팬들의 정말 수많은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 가장 큰 정당성은 영화의 완성도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어본 뚜껑 아래엔 스스로의 선택을 증명할 그 무엇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새롭거나 최소한 오마주한 것도 아닌, 원작의 제목과 각본을 그대로 빌려와 시작된 프로젝트에 '각색'임이 분명한 선택을 했다면 그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 의무마저도 창작의 자유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아쉽지만 원작을 향한 존중이 없다고 보아야 맞겠지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육지 세계와 바다 세계는 예로부터 서로를 경계하고 또 적대시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에리얼과 에릭 왕자는 그런 전통에 반기를 들고 집단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에게는 사랑이라는 자유가 있고, 또 그런 자유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원동력임을 증명하는 과정이죠. 


 에리얼이 울슐라를 찾아가 목소리와 다리를 바꾸고, 3일 내 에릭과 진심어린 입맞춤을 해야 하는 거래 조건도 원작과 동일합니다. 금기시되던 관계를 사랑의 위대함으로 극복하는데, 그 사랑이 목소리나 다리와 같은 부수적이고 외적인 것이 아닌 영혼과 영혼의 만남임을 깨닫게 함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되겠지요.



 문제는 이런 분명한 메시지는 이번 실사판 <인어공주>가 아닌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작의 후광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번 <인어공주>는 아주 약간의 움직임으로도 향하는 목적지가 드러나는데, 다른 영화들은 갖지 못한 그 여유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오히려 그를 흐릿하게 합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에리얼과 에릭의 사랑부터가 그렇습니다. 인간 세계를 동경해 오던 에리얼은 에릭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 맞습니다. 그 순간의 급작스러움과는 별개로 어찌됐건 사랑에 빠진 에리얼은 에릭과 가까워지기 위해 울슐라의 저주도(비록 거래를 하는 순간에는 몰랐지만) 감수하죠. 사랑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는, 철없지만 순수한 형태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같은 순간 에릭이 에리얼과 사랑에 빠졌다고 보기에 영화의 묘사는 다소 애매합니다. 목숨을 구해 준 것 때문인지, 그리고 극중 일종의 초능력으로 묘사되는 세이렌의 노래 때문인지, 둘 다인지 확신할 수가 없죠. 단순히 목숨을 구해 주어 감사를 표하고 싶다기에는 에릭의 행보는 에리얼처럼 사랑에 빠진 청년의 것에 가까운데, 거기에 세이렌의 노래가 개입하면 영화의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이는 세이렌의 노래를 손에 넣은 울슐라의 개입으로 더욱 흔들립니다. 마치 세이렌의 노래라는 능력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에릭의 마음을 삽시간에 가져갈 수 있었던 것처럼 묘사되죠. 유일한 차이라고 한다면 에리얼은 순수하고 착한 반면 울슐라는 거만하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울슐라가 조금만 온건하게 행동했다면 큰 문제 없이 에릭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죠.



 이 결론은 당연히 종족과 세계를 뛰어넘은 사랑의 위대함에 커다란 흠결이 됩니다. 외모가 아니라 영혼과 영혼의 관계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는 주장에 묘약이나 다름없는 초능력이 개입했습니다.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면서 3일 내 입맞춤을 해야 한다는 거래 조건까지 잊게 하는 사기 조항(...)이 들어가는 식의 억지 전개보다 훨씬 심각한 구멍이죠.


 그 사기 조항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강제된 에리얼과 에릭의 사랑엔 조력자들의 피나는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세바스찬, 플라운더, 그리고 스커틀이죠. 사실상 에리얼은 자기 고집에 못 이겨 가는 곳마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천방지축이고, 연애조작단을 방불케 하는 조연들의 공이 커지며 에리얼의 주체성과 능동성엔 또 하나의 커다란 금이 갑니다.



 영화 스스로도 에리얼이라는 캐릭터가 극을 끌고 갈 힘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결코 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화는 울슐라의 수정구슬과 혼잣말을 빌려 부족한 상황 묘사를 벌충하죠. 지금 이래 놓고 사랑에 빠졌다는 건가? 라며 관객들이 당황할 순간 그를 지켜보던 울슐라가 둘이 이렇게나 빠르게 사랑에 빠지다니 분하다며 중얼대는 식입니다. 


 뮤지컬 쪽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노래방 반주 수준으로 격하된 'Under the Sea'를 시작으로 목소리를 잃었음에도 흘러나오는 에리얼의 노래들은 꽤 당혹스럽죠. 차라리 <알라딘> 자스민의 'Speechless'처럼 상상 속 열창이라면 모를까, 딱딱한 표정 연기 중에 튀어나오는 에리얼의 목소리는 연출 미숙을 의심할 수준입니다. 그나마 울슐라의 'Poor Unfortunate Souls' 정도만이 원작을 상회하죠.



 밀린 듯 몰아치는 곡들, 거대해진 스케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작은 캐릭터들이 만난 후반부는 그저 모든 것이 급작스럽습니다. 길었던 서론에 비하면 어차피 결말부는 원작 따라 정해져 있으니 대충 주루룩 보여주고 똑같이 끝내겠다는 안일함으로 가득하죠. 에리얼, 에릭, 울슐라, 트라이튼은 물론 세바스찬, 플라운더, 스커틀 등 누구에게도 집중하지 못한 채 목적 없이 떠돌 뿐입니다.


 <아쿠아맨>,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조금 치사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에 이르기까지 근래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선보였던 바닷속 풍경 또한 비교군 내 최악 자리를 너무나 쉽게 가져갑니다. 심지어는 후반부 트라이튼의 근엄하고 진지한 등장 장면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객석 폭소가 연이어 터지는 등 분장마저도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죠.



 원작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원작에 기대는 영화입니다. 장점들은 이번 <인어공주>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이룩한 것들에서 가져왔으나, 단점들은 온전히 이번 <인어공주>가 내린 선택과 보여준 광경에서 비롯되었죠. 물론 그 장점을 충실히 재현했다면 그것 또한 업적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이번 <인어공주>가 노력한 결과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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