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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맨> 리뷰

왕관을 쓰려는 자 아껴서 잘 써라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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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맨>

(Aquaman)

★★☆


이것저것 열심히 닦던 악몽에서 아직까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DC 유니버스. <배트맨 대 슈퍼맨>과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을 거쳤던 이들은 <원더우먼>으로 반등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저스티스 리그>가 고꾸라지며 세계관 대격변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속편들은 대부분 창고로 가야 했고, 잘 출연하고 있던 배우들에게도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캐스팅 소문들이 돌고 있죠.


그 와중에 혼자 단단한 뚝심을 지키고 있던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제임스 완 감독의 <아쿠아맨>입니다. <컨저링>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7>으로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마당에 완전히 적응한 그는 계속되는 DC 유니버스의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았죠. 자신의 영화는 다를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 자신감에 해묵은 의심은 서서히 기대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아쿠아맨>은 마침내 개봉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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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와 아틀란티스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서 커리. 인간 세계에서 아쿠아맨이라 불리며 소소한 구명 활동을 이어가던 그의 앞에 메라가 나타납니다. 아서의 이부 형제인 아틀란티스의 옴 왕이 인간 세계와의 전면전을 원하고 있으니, 그에게 적법하게 맞설 유일한 사람인 아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오래 전부터 자신을 인간이라 여기던 아서는 그를 거절하지만, 점점 조여오는 옴의 손아귀에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자신만의 볼거리를 선보였지만, <아쿠아맨>만큼 본격적으로 바닷속 광경을 꺼내놓은 영화는 없었습니다. 도시부터 생물까지, 형형색색의 볼거리로 무장하고 규모를 한껏 키우죠.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의 속편에서 외계 행성 판도라의 바다로 모두를 놀라게 해 주리라 예언했지만, 어쩌다 보니 <아쿠아맨>이 선수를 쳐 버렸습니다.


거기에 슈퍼히어로 영화의 교과서적인 매력이 더해집니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능력과 능력이 만나죠. 기본적으로 초인 수준의 힘을 자랑하는 아틀란티스인들은 물론, 물고기와 대화하는 아서, 물을 조종하는 메라 등 각자의 이름표나 마찬가지인 능력들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물리적인 힘을 기반으로 하기에 액션의 합은 짧고 굵습니다. 묵직하면서도 시원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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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맨>은 2018년의 DC 유니버스 영화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제아무리 독립된 영화를 지향해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아쿠아맨>은 전부터 이어져 온 세계관의 한 퍼즐이며, 비교적 강력하고 성공적인 경쟁작들과의 대조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른 영화들에서 유지해 온 세계관을 함께 지탱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매력까지 선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쿠아맨>은, DC 유니버스는 여전히 오류의 출발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눈을 감아주어야 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어물쩡 넘어가 주어야 하는 지점부터 너무 많습니다. <저스티스 리그>에 나왔던 메라는 아틀란티스의 마더 박스를 지키러 온 아서를 만나 옛날 이야기를 합니다. 메라의 부모가 전쟁 중에 전사하며 아틀라나 여왕이 메라를 거두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서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지금까지도 원망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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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쿠아맨>을 보면 메라의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 있고 아서는 어머니를 지극히 그리워합니다. 옴은 아서가 아틀란티스에 온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불과 1년 전 개봉작임에도 불구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많고 큽니다. 영화를 건너갈 필요도 없습니다. 평생을 아틀란티스만 쫓아다닌 학자는 동네 주민과 사진까지 같이 찍는 아쿠아맨의 정체를 혼자만 모릅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활약을 목격한 세상의 사람들이 아틀란티스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나아가 보자면, <저스티스 리그>가 낳은 세계관 최대의 걸림돌은 다름아닌 슈퍼맨입니다. 지나치게 초월적이고 강력합니다. 독립된 영화에서 악당을 시원하게 때려잡은 것은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 슈퍼맨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는 다른 영화에선 아주 큰 설정 오류가 되죠. 특히 슈퍼맨에겐 물리적 제약이 없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만 해도 미국의 파티에 있다가 멕시코의 재해를 수습한 모습이 나온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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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요철에도 불구하고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쿠아맨>을 오로지 <아쿠아맨>이라는 단일 영화로만 보겠다고 결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지나치게 표면적으로 접근하고 묘사합니다.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는 마련되지 않고, 대부분의 동기는 1차원적인 수준에서 발현됩니다. 누군가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아이디어는 얼렁뚱땅 넘어간 뒤 거기서 발현된 행동만을 여기저기 늘어놓습니다.


만타는 아버지와 함께 해적질을 하다가 아쿠아맨이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뒀다는 이유로 복수심에 불타 악당이 됩니다. 메라는 단순히 아서가 옴 왕을 저지할 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에 자신의 가족과 왕국을 등집니다. 옴은 실질적인 힘인 아틀란의 삼지창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한낱 타이틀에 지나지 않는 오션 마스터에 집착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오션 마스터가 무언가 대단한 존재로의 진화라고 착각하기에 딱 좋습니다. 말은 되지만, 노력하지는 않은 설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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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서는 아틀란티스의 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은 왕이 될 재목도 아니고, 어머니를 데려간 곳엔 발을 붙이기 싫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하지만 옴의 힘을 보고 물 속에 들어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하며 어느새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옴의 힘을 보고 위기를 느낀 건 메라를 비롯한 아틀란티스의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서가 왕족이기만 하면 굳이 혼혈일 필요가, 육지와 바다라는 두 세계의 연결고리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영화는 아서가 갖고 있는 뿌리와 소속감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결국 두 세계 모두를 이끌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레 발현되어야 했죠. 하지만 아서가 혼혈 내지는 외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고통을 받는 묘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도 딱히 불편한 건 없지만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생각 좀 하다 보니 설득을 당해 왕좌에 오르는 그림이 되고 맙니다.


바다의 왕이라는 자격마저도 오로지 선천적인 혈통과 능력에 전부를 의존합니다. 깊은 곳의 상처를 스스로 회복해 나가며 그 이상의 무언가로 거듭나는 성장형 전개가 아닙니다. 잘못된 곳으로 특별하기에 특별하지 않습니다. 아쿠아맨은 그저 운이 좋고 혈통과 능력을 타고났기에 그 위치에 올랐을 뿐, 오히려 지금껏 그렇게 하지 않고 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어리석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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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는 독자 혹은 관객이 영웅에게 자신의 일부를 투영하며 존재 의의를 가지게 됩니다. 초인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는 고민과 겪게 되는 갈등은 지극히 인간적이거나 공감이 가능한 것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그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쿠아맨>은 선천적인 자격과 엄청난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모든 상황을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합니다. 가뜩이나 초현실적인 것이 완전히 남의 것이 되어 버립니다.


블랙 만타는 왕위와 종족 전쟁이라는 거대한 줄기를 끊임없이 겉돌다 이도저도 아닌 악당으로 각본에서 잊혀집니다. 이제는 솔로 영화에서도 캐릭터의 머릿수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세계관 전작들과 같은 단점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진정한 무언가는 한낱 물리적인 것에 묶여 있지 않다'는 메시지조차 진부하다고 느낄 만한 지금 이 시점에서 <아쿠아맨>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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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시리즈 출신 감독 아니랄까봐 살짝 질릴 때까지 남발하는 점프 스케어와 간간이 보이는 잭 스나이더식 슬로모션도 있습니다(심지어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애나벨 인형도 있습니다!). 액션과 볼거리는 분명히 준수합니다. 오락 영화와 슈퍼히어로 영화의 교집합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쿠아맨>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했습니다. 목적지는 멀어져 가는데 퇴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만족할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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