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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리뷰

애써 단단한 척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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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Glass)

★★☆


<라스트 에어벤더>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블록버스터 목록을 꼽으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영화입니다. <식스 센스>로 오래도 버틴 아성을 한 번에 무너뜨린 이 영화 덕에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재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죠. 게다가 그 바로 다음 작품이었던 <애프터 어스>마저 크게 고꾸라지며 최소한 대작들에게는 영원한 안녕을 고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은 작아진 그릇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새로운 명가인 블룸하우스와 손을 잡고 <23 아이덴티티>라는 영화를 내놓았죠. 제임스 맥어보이를 필두로 무려 23개의 자아를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신인 발굴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샤말란은 성공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영화 말미에 자신의 오래된 전작을 연결시키는 도박을 걸었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글래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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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가 불가능한 24번째 자아 비스트를 깨운 케빈. 다른 인격들은 비스트가 몸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제물을 준비합니다. 한편 아무도 모르게 마을 치안을 책임지던 의문의 남자 데이빗은 뉴스에서 보았던 비스트라는 존재를 찾아 헤매는 중이었죠. 마침내 우연히 마주친 둘은 격돌하지만, 이내 붙잡혀 정신과 의사 엘리의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정신병원에 먼저 감금되어 있던 엘리야까지 세 명이 한 곳에 모이게 되죠.


정말 대담합니다. <23 아이덴티티>의 끝자락에 15년도 넘은 영화 <언브레이커블>을 연결시켰습니다. J.J. 에이브람스가 <클로버필드> 시리즈를 가지고 할 만한 작업을 샤말란도 도전한 셈입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언브레이커블>의 인기나 명성이 아주 대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때문에 <23 아이덴티티>에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한 순간 이것이 세계관의 단서임을 곧바로 알아챈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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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던 두 편의 영화를 하나의 시리즈로 매듭짓습니다. 동네 자경단을 자처한 데이빗에게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초능력의 소유자가 악당 노릇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보다 골치아픈 일은 없겠죠. 비스트의 귀환을 염원하는 자아들 역시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구요. 거기에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천재 엘리야와 이 모든 것이 정신병에 불과하다는 의사까지 등장했으니, 무대 준비는 끝이 났습니다.


영화는 샤말란이 어떤 생각에서 이 영화를, 이 시리즈를 빚어내기 시작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힙니다. '나도 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유행이자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된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자신도 얼마든지, 심지어 더 교묘하고 고상하게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리려 합니다. 주인공의 대사로도 쉴새없이 언급하는 코믹스의 영화화 작업이나 잡지 표지에 폰트까지 그대로 옮긴 'A True Marvel' 등 힌트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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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샤말란은 자신의 접근을 지나치게 신성시합니다. 각본이 갖고 있는 의미론적 측면에 영혼을 쏟아부은 나머지 그를 뒷받침할 상황과 설정, 개연성을 제대로 준비해두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영웅들의 세상을 열어가는 이야기와 그 안의 사람들은 꽤나 치밀하게 구조화되고 시각화되어 있습니다.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면 여기저기서 맞춰지는 퍼즐 조각에 감탄할 여지가 꽤 많습니다.


극중 데이빗은 초록색, 엘리야는 보라색, 케빈은 노란색을 자신의 색으로 갖고 있습니다. 중반부 코믹스 서점의 네온사인을 보면 '영웅'은 초록색, '악당'은 보라색입니다. 노란색은 어느 쪽도 아닌 중립을 의미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이 각자의 색은 종반부 세 명의 인물에게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깊이를 받아들일 준비조차도 시켜 주지 않습니다. 욕심이 앞선 나머지 작은 그릇에 먼저 담고 싶은 것만 정신없이 담아 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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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 <23 아이덴티티>에 이어 다시 한 번 인격이 이렇게나 많을 필요를 딱히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라는 문장은 클릭을 유도하는 싸구려 유튜브 동영상 제목에나 어울릴 무언가로 남고 말죠. 자아를 쉴새없이 오가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오래 지나지 않아 소극장 원맨쇼로 변모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전작에서부터 그토록 갈고 닦았던 비스트라는 존재입니다.


<23 아이덴티티>는 비스트라는 자아를 신적인 것으로 고조하고 묘사했습니다. 영화 말미에 딱 한 번, 그 직전까지의 기대와 공포를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으로 등장했죠. 하지만 <글래스>는 비스트마저 남용하며 무게를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힘도 그리 강력하지 않은 것 같고, 말 몇 마디에 신념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9살 헤드윅과 다를 것이 없죠. 특히 비스트가 될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상의를 주섬주섬 벗는 모습은 슬슬 우습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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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화가 세 주인공의 능력을 실재하는 초능력과 정신병의 일환 사이로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각 인물들은 물론 관객까지 의심의 주체로 넣으려 했기 때문이죠. 이들이 과대망상에 빠진, 그저 평균 이상의 신체능력을 지닌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의심을 시작했다면 능동적으로 근거를 찾으려 하겠지만, 영화는 근거를 주지 않습니다. 의심과 회의의 대상은 너무나도 쉽게 영화 자체로 옮겨 갑니다.


이들을 과대망상이라고 여기는 접근엔 물리적인 근거가 크게 빠져 있습니다. 변신할 때마다 온몸의 핏줄이 곤두서고 맨 벽과 천장을 기어오르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과대망상이라고 우깁니다. 과학적인 척, 치밀한 척, 완벽한 척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납니다. 심지어 모든 것은 설명될 수 있다던 의사가 케이시의 손길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며 치료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엘리야의 천재성과 계획성은 초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비범하게 치밀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전체로 시각을 확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우주의 비밀에 접근했다는 해석은 지나칩니다. 그러기에 구멍은 너무 많고 규모는 너무 작습니다. 오사카 타워 운운할 때도 과연 이 영화의 주머니 사정으로 타워 내부를 등장시킬 수나 있을지부터 의심스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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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것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언가 굉장하고 엄청난 것을 다루고 있다는 큰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맞추어 훨씬 대단한 것으로 변신을 시켜 주길 기다리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각 인물의 과거사를 반복하고 쓸모없는 설정을 덧붙이는 등 사족을 이리저리 매달아 놓았습니다. 어쩌면 과대망상이라는 진단명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애초에 <글래스>의 초능력자들은 그런 외부의 의심에 휘둘려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슈퍼히어로들이 가질 지 모르는 고민들은 사랑, 우정, 고통 등 어디까지나 자신의 인간적인 측면에 한정된 것이어야 하죠. 지금껏 신나게 보여준 능력 자체에 대한 회의는 그야말로 시간낭비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시도를 흥미로울 뻔하게 한 접근 자체엔 의미가 있지만, 그 안엔 역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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