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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리뷰

착한 영화 컴플렉스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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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


2016년 <오빠생각>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이한 감독의 <증인>입니다. 거기에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 등, 필모그래피만 살펴보아도 신작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죠. 각자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우성과 김향기를 필두로 이규형, 엄혜란, 장영남, 박근형까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초와 연휴 시즌의 포근함을 겨냥한 작품인 듯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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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잠시 접어두고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민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 승진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된 그는 무죄 입증을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합니다.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첫 만남을 뒤로하고, 그 날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순호는 지우에게 조금씩 다가가려 하죠. 그렇게 순호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지우를 이해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법정에서 변호사와 증인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에서 자폐라는 소재(이를 '소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죠)를 활용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고착이 되었습니다. <7번방의 선물>,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일부 배려가 부족한 영화들은 앞뒤 문맥에 구애받지 않는 발언을 특징으로 웃음을 유발하곤 했죠. 어찌보면 가장 쉬운 접근입니다. 다 큰 성인이 자신의 외양과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 묘사였죠.


사건의 전말 혹은 내막을 파악하는 영화들은 또 다른 특징에 집중합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 반경과 종종 비상한 기억력 덕에 결정적인 증거를 목격하지만, 막상 이를 입 밖으로 꺼내놓는 데엔 별도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가끔은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립니다. 한편으로는 이 덕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반전의 카드를 꺼내놓을 수 있고, 영화의 극적 전환에 써먹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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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예의와 존중을 갖춘 영화입니다. 자폐아 본인의 세계와 그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을 병기하며 '이해'라는 단어에 집중하죠. 스스로의 묘사가 넘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자조하기도 합니다. 웃음 유발에 이용하는 순간마저도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에 더 많은 무게를 두죠. 소재의 민감함과 감독 특유의 '착한' 제작 성향은 꽤 잘 맞는 조합입니다.


하지만 정작 삐그덕대는 쪽은 변호사 순호와 살인사건입니다. 순호는 민변으로 활동하다가 로펌에 들어가고, 권력과 타락의 냄새에 조금씩 현혹되는 인물입니다. 위로 올라가려면 때가 좀 묻어야 한다는 대표의 말에도 드디어 자신의 차례를 맞이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엔 지우와 가까워지기 위해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위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승진을 위해 꾹꾹 참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지우와의 에피소드는 그와 거리가 멉니다. 어떻게 보아도 영화가 강조하고 있는 건 그의 따뜻함입니다. 때문에 결국엔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새 순호가 지우와의 만남과 노력을 지속하는 이유도 아리송해지죠. 출세한 변호사와 키다리 아저씨 중 더욱 명확한 목표를 일찍이 잡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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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만남에서 누구보다 겉도는 캐릭터는 다름아닌 검사 희중입니다. 순호에게 너무 많은 개성이 몰리며 설 자리를 가장 많이 잃었죠. 법원 복도에서 뜬금없는 연설을 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설정은 과하고 효용은 떨어집니다. 그토록 지우와 가깝고 따사롭다더니 정작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고 유도하는 건 순호입니다. 난데없는 충고는 지우의 어머니나 선생님 등 어느 누가 가져가도 무관한 역할이었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보여주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은 초중반부에도 조금씩 관찰됩니다. 관객들이 미처 깨닫지 못할까 싶어 등장인물의 입을 직접 빌리는 순간이 점점 잦아지죠. 이 욕심은 후반부를 넘어가며 정점을 찍습니다. 한 편의 공익광고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었고, 기승전결과 캐릭터들은 이를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듣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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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증거가 판을 쉼없이 뒤바꾸는 법정물치고는 그 밖의 것에 정신이 많이 팔려 있습니다.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을 주려 캐릭터들의 일관성을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조금만 따져 보아도 모든 일이 시작된 살인사건부터 허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건이 발생해서 목격자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를 목격자로 만들기 위해 사건이 설계된 수준이죠. 목적을 위한 수단이 잘못되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나은 수단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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