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나 봄바람이 지나가면
<슈렉> 이후 드림웍스의 최고 효자 시리즈로 군림하는 <드래곤 길들이기>가 돌아왔습니다. 2010년과 2014년에 이어 등장했으니 나름대로의 주기를 지켰군요. 3부작을 모두 감독하게 된 딘 데블로이스와 제이 바루첼, 아메리카 페레라, 제라드 버틀러, 케이트 블란쳇, 조나 힐, 키트 해링턴, 크리스틴 위그 등 화려한 성우진도 함께했습니다. 정식 개봉일을 기준으로 해도 본토인 미국보다 3주나 일찍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친구 히컵과 투슬리스의 활약으로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버크 섬. 그러던 어느 날 전 세계의 나이트 퓨어리를 모두 사냥하겠다는 일념에 불타는 사냥꾼 그리멜의 등장으로 애써 쌓아 온 평화를 바람 앞 등불이 됩니다. 이에 족장 히컵은 수 세대에 걸쳐 지켜 온 터전인 섬을 떠나 전설 속의 히든 월드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하죠.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에 헤롱대는 투슬리스를 다루기는 영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과 투슬리스는 지금껏 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유대감을 지닌 사이입니다. 누구보다도 대담하고 뚜렷한 개성으로 서로에게 엮여 있죠. 히컵은 남자 중의 남자여야 하는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허우대는 허약하고 패기도 부족합니다. 그런 히컵이 최강이자 최악의 존재라 알려진 나이트 퓨어리 투슬리스를 만납니다. 드래곤은 무조건 죽여야만 하는 해악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세상에 새로운 광명을 비춥니다.
날 수 없는 드래곤은 드래곤이 아닙니다. 히컵은 투슬리스의 꼬리 날개를 치료합니다. 용기 없는 족장은 족장이 아닙니다. 투슬리스는 히컵의 자존감을 바로세웁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빈 자리를 채우며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이 유대를 시각적으로도 공고히 하기 위해 영화는 주인공의 한 쪽 다리를 희생하는 과감함까지 발휘합니다. 충격적이면서도 감탄스러운 전개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3>는 그 여정이자 우정의 최종장에 해당합니다. 인간과 드래곤은 너무나 다릅니다. 얼핏 공존이라 부르지만 따져 보면 공존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활 양식에 드래곤의 자리를 내 준 것에 불과합니다. 평생의 벗으로 삼고 인간과 동일한 존재로 대우한다 해도 대우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종족과 종족의 완벽한 평행 관계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영화는 또 한 번의 과감함을 발휘합니다.
투슬리스의 연인 위치로 등장하는 라이트 퓨어리와 전설의 사냥꾼 그리멜 등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얼굴들은 영화가 지향하는 이 주제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히컵에게 아스트리드라는 인간 짝이 있듯 투슬리스에게도 짝이 필요합니다. 드래곤은 인간의 눈과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라이트 퓨어리가 인간을 경계하고 그리멜이 히컵의 흔적을 밟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균형추가 흔들립니다. 2편을 거치며 드래곤 사냥꾼들의 직접적인 방해는 더 이상 받지 않아야 정상인 상황이지만, 마침 온 세상의 나이트 퓨어리를 노리는 그리멜만 히컵의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투슬리스가 알파 드래곤이 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모든 준비를 마친 후죠. 라이트 퓨어리는 그리멜의 비밀스런 명령이라도 받은 듯 일관성 없는 행적을 이어갑니다.
영화는 그를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늘립니다. 그리멜이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고, 투슬리스와 라이트 퓨어리가 함께 비행을 하며 필살기(?)를 연마하는 사족의 시간을 가집니다.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영화가 히컵과 투슬리스의 우정에 집중하는 탓에 언급한 '수단'들의 마침표는 놀랍도록 얼렁뚱땅 찍히죠. 그토록 무시무시하다던 그리멜의 퇴장은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근래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존중하는 작품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여지를 남기고 수명을 이어가려 애를 씁니다. 결국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빠져 박수를 쳐 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다릅니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모험은 끝이 났지만, 그들의 우정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3부작은 각각 탄생과 성장, 퇴장이 되어 추억 한 켠에 자리를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