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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반> 리뷰

수리 없이 도색만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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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반>

★★


2015년 <차이나타운>으로 장편 데뷔한 한준희 감독의 신작, <뺑반>입니다.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염정아, 전혜진 등 차기작 목록도 꾸준히 늘려가고 있는 배우들이 모였네요. 특히 조정석은 데뷔 이후 첫 악역 연기에 도전하며 관심을 모았습니다. 제작비만 해도 무려 130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설 연휴를 겨냥한 영화치고는 스케일이 크죠. 코미디나 외화 등 여러 영화들 가운데 국산 액션 쪽을 정조준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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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된 내사과에서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윤과장과 함께 활동한 경위 은시연.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을 잡기 위해 수사망을 조이던 그녀는 무리한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오명을 쓰고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됩니다. 팀원은 고작 두 명, 가진 건 없지만 실력만큼은 최고인 뺑반. 계속해서 재철을 주시하던 시연은 뺑반의 미해결 사건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렇게 뺑반과 거대 세력의 쫓고 쫓기는 질주가 시작됩니다.


뺑소니 전담 수사반. 조합만 놓고 보면 <베테랑>과 <분노의 질주>의 장점을 뒤섞을 기회입니다. 배우들 역시 최소한 한 번 이상 '쿨한' 연기를 해 왔던 사람들이고, 재력과 인성이 반비례하는 악당이 등장하니 슈퍼카로 눈요기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뺑소니 전담이라는 소재가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무언가 분명한 방향성이 있으니 그렇게 정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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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는 비교적 흥미롭습니다. 하나둘씩 꺼내놓는 캐릭터들의 첫인상부터 강렬합니다. 류준열의 민재는 사건 현장만 보더니 사고 상황을 기계처럼 정확히 계산하고 예측합니다. 이 정도의 감과 실력이면 주목을 받을 법도 한데, 그저 생글생글 넉살이나 부립니다. 조정석의 재철은 오락영화 악당다운 과장을 아슬아슬하게 모아 두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출신, 말더듬이라고 받았을 놀림에 사이코패스 기질과 엄청난 재산이 더해져 폭군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단칸방 경찰들이 어떤 활약으로 끌어내릴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얼굴들이 뒤섞이는 가운데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점부터 서서히 드러납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설정, 캐릭터들을 받아들이느라 처음부터 눈치채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인 은시연이죠. 시연은 '주연급'이라는 단어로 수식할 수 있는 캐릭터들 중 가장 무색무취합니다. 근거도 바탕도 없이 일단 자존감부터 내세우고 보는 건 개성이 아닙니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과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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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이라는 배우에게서 흘러나오는 가장 1차원적인 이미지만을 소비합니다. 상부에 보고도 없이 단독 행동을 일삼는 부하 직원을 문책하지만 막상 본인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그것이 자신만의 당당함이라 착각합니다. 영화는 은시연을 입체적으로 만들 그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가족사나 개인사, 심리적 구멍 등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채워나갈 빈 자리마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은시연에겐 주인공으로 하나의 영화를 지탱할 동력이 한참 부족합니다. 이 한계는 중반부를 넘어가며 여실히 증명됩니다. 은시연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난 채 민재와 재철의 대결 구도로 흘러갑니다. 둘이 잘 싸우고 있는 도중에 자신이 주인공임을 잊지 말라는 듯 끼어듭니다. 실제로 민재에겐 과거와 현재, 명과 암 등 영화의 기승전결에 걸칠 모범적인 잠재력이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엉뚱한 곳에 잡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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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동력이 떨어지며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부족한 동력을 손에 잡히는 모든 곳에서 끌어오려 합니다. 민재와 재철의 대결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가족 신파가 더해지며 영화의 분명한 지향점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아슬아슬하던 재철의 만화적 매력마저 안전 영역을 벗어나며 실없어집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팀원들이 다 각자 움직이는 터라 영화의 중심이 '뺑소니'일 이유도, 전담'반'일 이유도 없습니다. 애초에 재벌 악당과 뺑소니라는 소재의 연결점은 딱 한 번의 교통사고에 불과합니다.


만듦새도 삐그덕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파티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잠입한 시연은 커다란 통신 이어폰을 낀 귀를 보란 듯이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반대쪽 귀는 머리로 덮었습니다!). 이후 벌어진 도심 추격전에서는 도주 차량의 동선을 통째로 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까는 스파이크 대신 권총으로 타이어를 노리는 데 만족합니다. 청장 한 마디에 저격수가 탄 헬기가 출동해 동료 경찰을 조준합니다. 관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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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바랐던 슈퍼카들의 질주마저 함량 미달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하나둘씩 드러나는 한계점들의 여파를 여지없이 온 몸으로 받아냅니다. 그에 대비하거나 벌충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쿠키 영상에 등장한 새 캐릭터마저 영화 내내 여러 캐릭터들에 걸쳐 재활용되었던 몰개성의 반복입니다. 문신과 담배, 실소와 허세에 이르는 겉치레만으로 속편에 다다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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