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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리뷰

우리는 거꾸로 해도 우리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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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Us)

★★★★


코미디 시리즈 <키 앤 필>로 유명세를 쌓아올리던 조던 필은 돌연 2017년 <겟 아웃>으로 할리우드 감독 데뷔를 선언합니다. 웃긴 줄만 알았던 그가 선사한 신선함은 모두를 열광시켰고, 블룸하우스라는 제작사를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죠.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이 된 그의 신작에 쏠리는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구요. 그런 그가 2년을 기다려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번 <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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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두 자녀를 두고 부족할 것 없는 생활을 이어가던 애들레이드. 간만에 가족들과 함께 여름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지만, 유년 시절 홀린 듯 들어갔던 그 근처 미지의 장소에서 자신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소녀를 마주쳤던 트라우마가 그녀를 괴롭힙니다. 엄습하는 불안에 결국 별장을 떠나기로 결심한 순간, 어둠이 내린 집 앞에 네 명의 괴한이 손을 마주잡고 그들을 기다립니다.


조던 필은 <겟 아웃>으로 관객들의 심리를 한껏 조이는 연출을 자랑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직접 눈 앞에 꺼내놓지 않으면서도 상황과 음악을 적극 활용했죠. 1인용 소파에서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주인공의 시선을 관객과 일치시켰습니다. 그런 <겟 아웃>이 미스터리 장르로 분류되었다면, 대놓고 공포 스릴러를 지향한 <어스>는 그를 한 단계 더 강화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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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전작에 비하면 의도적으로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배치된 요소들부터 많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설정들을 비교적 잔인하거나 섬뜩하게 묘사하죠. 엔딩 크레딧에 '레드'라는 이름으로 표기되는, 애들레이드 도플갱어의 목이 졸리는 듯한 말투가 대표적입니다(왜인지 본토에서는 이 장면이 그렇게 객석의 폭소를 유발했다고(!) 합니다).


물론 <어스> 역시 기승전결은 미스터리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가족이 나타나 자신들을 죽이려 드는 사건부터가 그렇죠. 너무 무섭고 도망을 쳐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도대체 이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일일지 궁금할 테니까요. 존재부터 당황스러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을 이어가니 궁금증은 증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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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직후부터 익히 알려졌듯 <어스>는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나 소품들은 대부분 감독의 메시지와 의도 하에 배치되어 있죠.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이 상징들을 하나하나 해독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기승전결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흥미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당장 벌어지는 사건들을 쫓아가기만 해도 충분히 볼만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됩니다.


바로 그 덕분에 <어스>의 상징들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플러스 알파를 챙겨가려는 관객들의 탐구욕을 자극하기 때문이죠. 알쏭달쏭함과 애매모호함이 특징인 수많은 영화들은 의외로 여기서 실패합니다. 이면에 얼마나 대단한 메시지가 얼마나 대단한 방식으로 감춰져 있건 간에 일단 그를 찾아나서게는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게다가 <어스>는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각자 그럴듯한 답안을 써낼 수 있을 만큼의, 딱 적당한 난이도(?)를 찾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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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스>의 해석은 방향에 따라 결을 달리하기보단 어느 정도의 모범 답안이 존재합니다. 극중 레드의 초반 대사인 '우리는 미국인이다'에 꽤 많은 힌트가 숨어 있죠. 가위를 들고 쫓아오는 괴한들을 상대로 단 한 자루의 총기도 등장하지 않는 점, 초반부 캠페인 방송과 극중 직접 등장하는 장벽, 어느새 잊혀져 등장하지 않는 경찰 등, 사회 계층을 겨눈 정치적 입장 하나만큼은 분명한 셈입니다.


그처럼 영화 외적인 해석보다는 영화 내적인 복선이나 은유를 분석하는 쪽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초반부 애들레이드의 새삼스러운 행동과 대사, 플루토의 복면 속 얼굴, 달리아의 자학과 웃음 등 모든 전말이 맞춰진 후 하나씩 되짚어보는 재미가 대단하죠. 특히 주인공 일행이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날아든 원반이 타월 무늬를 정확히 덮는(=외부의 것이 기존의 것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장면이자 연출을 최고로 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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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똑똑하고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루피타 뇽은 마치 이 배역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 듯한 아우라를 뽐내고, 윈스턴 듀크의 은근한 맹함 덕에 긴장의 완급 조절까지 적절하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는지 궁금했던 영화가 <겟 아웃>이었다면, <어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어디까지 알아듣는지 영점 조절을 하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다음 영화에선 본격적인 발전 내지는 도약을 기대해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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