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년들의 동년배 영웅
<아쿠아맨>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DC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속편이 출연진을 일부만 교체한 리부트임이 밝혀지고 기존 영화들과는 무관하다고 알려진 <조커>가 제작되며 세계관의 앞날은 더욱 알쏭달쏭해졌습니다. 한창 <아쿠아맨>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시기, 어쩌다 보니 다른 프로젝트들이 취소되거나 밀리며 DC 유니버스의 유일한 2019년 개봉작 타이틀을 짊어지게 된 영화가 바로 <샤잠!>이죠.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위탁 가정을 전전하고 있는 10대 소년 빌리 뱃슨. 어느 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 프레디를 구해 주고 도망치던 중, 타고 있던 지하철이 영 수상해 보이는 미지의 장소에 도착합니다. 그 곳엔 자신이 고대의 마법사라 주장하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죠. 자신의 힘을 주겠다는 그의 말에 속는 셈치며 주문을 외친 순간, 신들의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 샤잠이 탄생합니다.
샤잠(SHAZAM)은 솔로몬의 지혜부터 머큐리의 속도까지 갖추었다고 해서 각 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딴 단어입니다. 원래 '수리수리 마수리'쯤 되는 단어에 끼워맞춘 것인 줄 알았더니, 코믹스 작가가 작품 내에서 창조한 단어라고 하죠. 포셋 코믹스의 원조 캐릭터와 DC 코믹스의 슈퍼맨 표절 소송, 마블 코믹스의 동명 캐릭터(캡틴 마블)까지 한데 얽혀 복잡한 역사를 자랑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의 능력은 다름아닌 변신입니다. 평범한 10대 꼬마가 '샤잠!'을 외치기만 하면 웬만한 초능력으로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만능 초인으로 변신하죠. 능력의 기원조차도 웬 고대의 마법사가 오래된 전쟁을 이어 갈 자신의 후계자로 간택했다는 것이니, 약간의 유사 과학이 더해진 여느 영웅들과도 결이 다릅니다. 12세 관람가 등급은 아무래도 관람하기에 가장 적절한 연령대를 표시한 것만 같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 톤을 유지합니다. 애초에 들고 있는 카드들이 많지 않고, 이를 대단한 것으로 포장할 욕심도 내지 않습니다. 아마 만화영화를 그대로 실사로 옮기면 <샤잠!> 정도가 가장 정직한 결과물이 될 듯 합니다. 적당한 갈등과 적당한 대립에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교훈이 섞입니다. 귀엽고 깜찍한 맛에 흐뭇하게 보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보통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가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인들은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의 차별 어린 시선을 견뎌야만 하죠. 자신을 낳고 기른 친가족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게 입은 상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치유하게 되고, 가족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재정의됩니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족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는 식이죠.
<샤잠!>도 비스무리한 노선을 선택합니다. 다만 빌리의 경우는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소외가 초능력과 무관하다는 점이 다르죠. 스스로 진짜 가족을 찾겠다고 결심한 탓이며, 때문에 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가 더욱 강합니다. 이는 가족이라는 균형추에서 악당인 닥터 시바나와 정반대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바나는 초능력으로부터도 한 번 버림받은 탓에(...) 손가락질하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이처럼 <샤잠!>은 CG와 액션 등의 외면, 각본과 설정 등의 내면 모두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시바나에겐 엄격했던 시험이 빌리에겐 뚝 떨어지고, 그토록 우울했던 빌리는 샤잠으로 변신하더니 체통(?)을 급격히 잃어버립니다(어쩌면 솔로몬이 사람들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았을지도...?). 야심차게 등장한 7대 죄악은 워낙 몰개성한 탓에 서로 구분조차 가지 않습니다.
야심차게 핵심으로 삼은 무언가가 없습니다. 시바나가 악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나 프레디와 빌리의 우정 등 감정의 전개도 중간 단계를 과감히 생략합니다. 샤잠과 시바나가 정면 대결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산만한 편집과 때 아닌 유머로 무게감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립니다. 예산 탓을 하기에 1억 달러는 <데드풀>의 2배에 <크로니클>의 8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노출된 단점을 덮을 여력을 준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잃을 것이 너무나 많아진 제작사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최대한 안전하게 꺼내놓아야 하는 자리에서 강수를 둘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결과적으로는 정신연령 낮아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정도가 나온 것 같지만, 제작 전부터 이를 지향했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여건과 사정상 나오게 되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본토에서 이어지고 있는 반응 덕에 이미 속편을 확정지었고, 제임스 완 사단이라 불린 데이빗 샌드버그 감독도 복귀를 예고했습니다. <왕좌의 게임> 메이지 윌리엄스와 남매라고 해도 믿을 애셔 앤젤을 비롯한 아역들이 머리 한 개씩 커 버리기 전에 어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죠. 그렇게 <라그나로크>에서 슥삭 사라진 판드랄 덕에 실업자가 되나 싶었던 재커리 리바이도 영웅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