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주머니만한
놀라운 일입니다. 누구도 감히 상상만 해야 했던(?) 바로 그 프로젝트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는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선을 보였지만, 실사판으로 구경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던 포켓몬 세계관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첫 술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지우와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대신 동명의 외전 격 비디오게임을 원작으로 두었습니다.
포켓몬과 인간의 공존이 당연해진 세상, 어릴 적 꾸었던 포켓몬 트레이너라는 꿈을 접고 보험 판매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팀. 어느 날 아버지 해리가 살해당했다는 비보가 날아오지만, 영 소원했던 사이 탓에 팀은 별 생각 없이 대도시 라임 시티로 발길을 옮깁니다. 해리의 거처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놀랍게도 웬 피카츄 한 마리가 튀어나오고,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놀라운 판국에 그 피카츄는 해리가 살아있으니 명탐정인 자신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포켓몬 세상을 실사판으로 즐길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 영화의 내용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최소한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피카츄의 목소리는 이제 무슨 짓을 해도 웃음부터 나오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았습니다. 실제로 레이놀즈는 지금까지도 본인의 SNS에 피카츄 메소드 연기에 도전하면서 몸무게를 80kg 넘게 빼려고 했다는 등(...) 활발하고도 본인다운 홍보를 이어가고 있죠.
그렇게 눈 앞에 나타난 포켓몬 세상은 그야말로 별천지입니다. 첫 장면부터 탕구리를 잡는 트레이너의 모습을 굳이 보여주며 이 영화가 팬들을 위한 영화임을 분명히 하죠.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수많은 포켓몬들부터 지하 클럽에서 벌어지는 포켓몬 배틀('급소에 맞았다!' 등의 해설까지),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설정과 장면들로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팬'은 세대를 초월합니다. 카트리지를 넣어 가며 터치도 되지 않던 게임과 지상파에서 방영되던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팬도 있고, 닌텐도의 최신 기기 덕에 몸으로 직접 포켓몬 세계를 누빈 팬도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실사화에 도전한 다른 프랜차이즈처럼, 동일한 컨텐츠가 시대를 뛰어넘는 인기는 누린 사례와는 살짝 다릅니다.
때문에 <명탐정 피카츄>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한 쪽은 들 만큼 든(?) 성인이고 한 쪽은 어린이입니다.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어렵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명탐정 피카츄>는 그보다 나쁜 수를 둡니다. 양 쪽을 모두 챙기려다 어느 쪽도 챙기지 못합니다. 성인들에겐 어린이 영화처럼, 아이들에겐 어른 영화처럼 보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권력욕과 야망으로 가득한, 흔해빠졌다는 말로도 모자란 악당 캐릭터들의 존재는 최소한의 비중으로도 영화의 개성을 망칩니다. 어차피 허구의 세상과 허구의 괴물들을 등장시키기로 마음먹었으니 다른 설정들도 마구잡이라고 지어내기로 결심합니다. 미지의 용액이 어떤 효험을 내든, 포켓몬의 기술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든 순전히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비중을 가져갑니다.
제목에 들어간 '명탐정'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진하지도 않았던 추리물의 향내는 점차 줄어들어 갈 곳을 잃습니다. 포켓몬 세상에서만 해낼 수 있는, 제작진의 창의력과 원작 이해도에 감탄하게 되는 설정은 찾아볼 수 없죠. 그저 우리가 포켓몬 세상을 실사로 옮겼으니 구경해 보라는, 1차원적인 시각적 장치들만이 구석구석을 채웁니다. 다분히 초보적인 접근입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특유의 개그 코드는 피카츄라는 캐릭터와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아슬아슬한 싱크로율을 이어 갑니다. 피카츄를 포함해 관객 각자의 취향에 어필할 귀여움은 갖추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영화를 지탱하기엔 버겁습니다. 사소한 불만을 덧붙이자면, 포켓몬들의 울음소리나 포켓몬 이름을 이용한 가게 간판 등은 부분적 더빙 내지는 편집으로 좀 더 적극적인 현지화가 절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