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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 Dec 09. 2021

경계를 넘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

케이팝 다시 보기 #7. 유퀴즈 민희진 편을 보고 나서



'. 내가 좋아한 것들이 다 이 사람 디렉팅이었네.' 


민희진 대표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케이팝 오타쿠가 되고도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유퀴즈에 나온 저 표현이 다 맞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애가 봤을 때도 뭔가 새롭다,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다 그녀의 작품이었다. 혁신의 기준점. 그녀는 회츄에 깔맞춤 모자를 쓰고 귀여운 부츠를 신고 인터뷰를 하러 나왔다.


사실 오빠 뒤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름까지 알기는 어렵지 않나. 그렇지만 그녀는 다르게 일해왔고, 그 결과물들로 그녀의 이름을 (어쩌면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자신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렇게 CBO가 됐고 이제는 하이브의 신규 레이블 대표로 2022년 새로운 걸그룹 론칭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1년 전부터 꾸준히 연락을 했으나, 이제야 유퀴즈에 출연하게 된 것도 "제작자가 너무 나서면, 주인공이 되는 가수들이 가려질 수 있으니까"하고 염려를 다고 말하며.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공채 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사내 등기 이사가 되기까지, 그 15년 동안 그녀는 아마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관점으로 일했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 취향은 대중음악 쪽이 아니었다는 게 신기했다(최근에 인스타 팔로우를 하면서 아 정말 쉽지 않은 취향의 소유자구나하고 생각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그런 그녀는 주류 시장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고 한다. "비쥬류가 비쥬류일 수밖에 없는 게 어렵거든요." 그런 그녀가 주류 시장이 재미있게 봤던 건, 많은 대중 분들께 재미를 소개할 수 있어서라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라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무 자체가 특이했다. 처음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했을 때, '디자인만 잘해야지'가 아니라,  어떤 그룹으로 보이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우리 오빠가 어떤 상품으로 소비되고 한 철 장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쩌면 이런 사람들로부터 시작한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면 " 큐에 작업이  수가 없어요." 기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 목표까지의 일관성 있는 구성.  시각적 구현에 음반을 완결성 있게 가져가는 힘(자본...?). 가수가 앨범을 내고 나오는 콘텐츠들이 하나의 서사로 묶여있다.


그냥 나오는 것, 그냥 움직이는 것은 없다. 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로고(맞아, 엑소 컴백 때마다 변하는 그 로고 너무 부러워했었지, 그것도 그녀의 작품), 포스터, 앨범 사진, 포토들, 무대 콘셉트 및 의상, 사전 프로모션과 전시... 이 외의 모든 요소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괄한다. 이전에는 영역별로 분화되어 진행했다. 재킷은 누가, 디자인은 누가, 스타일링은 누가, 이런 식으로. 규합의 개념은 없고 개별 외주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외부에서 구해와서 작업하고 보면 헤드 디렉터는 없고, 결국 사장이 디렉터인 그런 형태다. 그러나 그녀는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었다.


"가수가 순히 옷을 어떻게 입느냐, 어떻게 보이느냐가 콘셉트가 아니라, 리가 뭘 말하고 싶은지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담는 그릇을 기획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전과는 다른 프로세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녀는 말했다. 녀시대가 데뷔기 전인 2007년, 대략의 방향성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제가 제안하고 싶었던 내용들 있었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서. 제가 하고 싶은 게 있었고." 이미지보드를 그려서 '제가 생각하는 걸그룹은 이랬으면 좋겠고, 제가 생각할 땐 이런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의 모음을 들고 간 거다. 수만리에게. 그 보드를 본 수만리는 "재밌다. 다른 부서에도 브리핑해주지 그래?" 신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오너가 실무자를 믿어준다는 건 굉장히 벅찬 감정일 것이다.


일을 재미있게 할 줄 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재미는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깊이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 그런 이 만들어내는 파동. 이런 사람의 작은 움직임은 결국 깊게 파여 길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경계를 넘는 천재의 삶



민희진의 역작으로 불리는 핑크 테이프. f(x)녀시대의 대되는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돌의 전형적인 모습을 탈피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녀 안에 계속 있었던 욕구였다고.


"장히 색다른 모험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같이 일하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야 했어요."


"디자인이 안 된 핑크색 테이프. 아직도 집에 그 목업이 있어요.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VHS세대요.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가 상상하지 못한 어떤 스토리가 담긴 음반이었으면 좋겠다'하연상시키는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f(x)의 두 번째 앨범인 핑크 테이프의 티저 영상이었던 아트 필름은 녀가 직접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게 8년 전 영상이라니 말도 안 된다.


 "표현하려고 했던 그림 자체가, 이 친구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 만에 촬영하는 게 말이 안 된다(외주로 하루 와서 촬영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냥 내가 찍자 했어요. 하루 종일 촬영했는데 f(x)는 워낙 합이 잘 맞았어요. 콘셉트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소화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결과물도 잘 나온 것 같아요."


"시장이 반응한다, 대중들이 열광한다, 그 기분은 엄청나요. 저의 기본 본업 자체가 그림을 만드는 일이기 에, 음악을 들으면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되거든요.  그림들 중에 확신에 차서 다가오는 게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게 한 번도 비껴 나간  었어. 이  거다 하고 생각해서 했는데 안   없었요." 으르렁 비하인드를 풀며 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일을 너무 이 했어요. 비를 한 달에 4~5개씩 찍을 때도 있었어요. 앨범을 한 달에 4~5개씩 내기도 했고요. 근데 저는 이런 생각을 매번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나는 고통스럽게 살까.' 자학하고. 자기 검열도 심했어요. 물론 기쁘게 사는 어떤 찰나가 있는데, 그 찰나마다 '이게 행복인가? 이게 행복의 끝인가?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번아웃이 와서, 퇴사했어요."


"그만뒀는데 아직 못 다 한 일이 생각나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고. 나 그거 잘할 수 있는데.' 이게 너무 크니까.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어요."


자기가 가진 재능을 견디지 못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삶. 천재의 삶은 녹록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천재도 열심히 사는데 나 자신은 얼마나 매 순간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가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다.



스스로 정해온 삶의 규칙을 지키며
스스로 일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



혼자 며 살았다고 한다. "항상 입조심해야지, 언행 삼가야지, 스스로 그랬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는 늘 남을 위해서 살았지, 스스로를 위해서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가 저한테 이런 걸 강요한 건 아니었고 그냥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그랬어요." 유퀴즈에 나가면 울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자기님, 그만큼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던 그녀에게 하이브 수장, 힛맨뱅으로부터 CBO(브랜드 총괄) 제안이 온다. "사옥 이전까지 얘기해주신 건 아니었는데, 랜딩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사옥'이라는 피지컬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옥까지 같이 스스로 확장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사소한 선택이 좋은 브랜딩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들로 각각의 선택지들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행보, 하이브 레이블 'ADOR'의 대표가 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아이돌 콘셉트 장인이 만드는 걸그룹은 어떨지 기대 한 몸에 받는 중이라고. "자신 있게 준비하고 있는데 꼴 보기 싫을 수 있으니까." 실제로 음악을 만드는 제작자, 매니지먼트를 하던 분들이 사장이 되는 경우는 있었어도 텐츠를 직접 만들던 사람이 사장이 되는 건 없던 일이라. 다른 트레이닝 방식, 다른 오디션... 그녀는 자신의 행보가 '시장에 굉장히 다른 제작 방식과 시각을 제안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생각만 했었던 것들을 눈앞의 실체로 만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치를 최대로 녹여낸 제작물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 그녀의 말대로 느슨해진(?) 케이팝 시장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기대된다.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일





"이돌 업에서는 어린 친구들로 일을 만들어 가 때문에 일하는 과정이 단순히 그냥 일이 아니라 사실 훈육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연습생들의 부모님과 또래라는 그녀는, 제작자로서 책임감이 남다르다 했다. 그런 면에서 친해져야겠다는 생각 가졌다고.  명씩 불러서 요리도 해주고 산책도 하고. "육아가 어렵더라고요." 하며 웃었다.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대중들이 말해줬을 때 되게 기분 좋은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세계관'과 '아티스트'라고. "자연스럽게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미숙한데 노력 많이 하거든요. 우리는 즐겁게 해 보자. 그럼 굉장히 다른 바이브가 나올 거다. 이렇게 말해요."


그녀는 일도,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앞선 나의 일, 나의 성과, 나의 사람들.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냥 가수가 아닌 아티스트를 만드는 사람. 자본도 맞지만 그 기반엔 사랑이 있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다.



용기




" 개를 잘하면 나는 자기 증명이 끝날  알았든요. 근데 자기 증명은 끝없이 이어지더라고요. 장벽이 더 커지는 거라서. 내가 나를 계속 이겨야 하는 게임이에요. 그리고 같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대안과 보험까지 생각해야 해요. 책임감이죠. 막중한 책임감과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해내야 하는 투쟁심. 투쟁심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맞는 것 같아요. 싸워내는 것."


점심시간에 이 날의 유퀴즈 이야기를 안 했다면 아마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다. 티빙을 켤 시간조차 없었던 요즘이라. 최근, 나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용기다. 이 날의 유퀴즈를, 민희진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용기를 얻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야지, 가만히 있지 말아야지, 바보처럼 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이건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도 느꼈다.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를 드러내고,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본인 입으로 '나 잘해요!'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데려가겠나. 나를 잘 아는 사람,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명확히 아는 사람용기 있게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다.


더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일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오늘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내일의 기회를 만듭니다. 모두 화이팅!

- 민희진 :)



이 날의 플레이리스트


* 민희진 총정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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