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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Jun 07. 2017

글로벌 인재는 정보 지혜 상상력을 통섭한 예술작품

글로벌 인재 만들기

     

■ 행복의 높은 가치는 정보에 지혜를 더하고 상상력을 곱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상상력이 없는 영혼은 망원경이 없는 천문대와 같다”- 헨리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미국 작가)

     

 '창조경제'가 모호하다는 논란에 대하여 박 대통령이 정리하였다. “창조경제란 창의성을 우리 경제의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가수 싸이가 ‘시건방 춤’의 최초 안무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한 일을 두고 창조경제 모범 사례라고도 했다. ”

창조란 의미 자체가 한 가지 고착된 의미가 아닌 주변 생활에서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손에 서 컴퓨터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는 스마트폰,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과 통섭, 아이디어로 새로운 산업을 찾아내는 것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문제는 창조에 대한 개념 정의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창의적인 기업, 문화, 도시, 개인으로 전환하여 앞에 놓인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가치 증진에 있다고 본다.

가치를 정신가치와 물질가치로 양분할 수 있다. 정신가치는 도덕과 양심, 믿음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물질가치는 국민소득, 주거 수준, 시장이 합의한 경제적 가치,  토지와 자본 , 노동 등의 실체가 보이는 가치를 의미한다. 어느 것 하나 손상되어서는 균형을 지키기 어렵듯이 정신과 물질이 공존하는  공감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공감은 누군가와 함께 느끼는 정서로, '의미 공유'의 핵심으로 근본 원칙인 인간성과 생활의 고락을 같이 지켜나가는 것이다.

     

사진:이주하 작가


인재는 상상력의 결과.

 

피카소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었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게 된다.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루이 파스퇴르는 실험자가 가진 ‘환상’은 그의 능력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창조적인 일에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피카소는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수많은 과학자나 예술가들은  상상력이 단순히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상력은 마음속에서 태어나고 진실로 이끈다. 이런 상상력은 우리들의 열정과 연습으로 가능해진다.

상상력은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심리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는 이상의 가치는  200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서 <나무>에서 새로운 관점을 알게 해 준다

 “ 수세기 전부터 인간은 우리를 땔감이나 종이의 원료로만 생각해왔어. 하지만 우리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니야.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 있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각하고 있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고통을 받고 기쁨을 느껴.”  인간에 대한 풍자이지만 상상력의 힘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상상력이야말로  신선한 의식 개혁이라고 본다.

     


행복은 인생의 목표이자 이상

     

알렉산더 포프는 행복과 인생에 대한 위트 있는 말을 집어냈다 “ 바로 곁에 있는데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 학자에게 물어보라 그 사람들은 모른다. 이것을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한다. 뭔가 해야 행복하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행복하다는 이들도 있고, 행복을 쾌락이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만족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그러니 다들 행복을 행복이라 말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첫 머리에서 행복이란 좋은 삶, 덕이라고 정의했다.

“ 오 행복이여. 인생의 목표이자 목적이여! 행복 쾌락 안락 만족! 그대 이름이 무엇이든 영원히 탄식을 부추기면서 삶을 견디게도 하고 죽음을 무릅쓰게도 하는 것, 바로 곁에 있는데도 잡을 수 없고, 바보도 현자도 지나치며 정확히 못 보는 것”

롤스는 덕이나 종교가 행복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합리적인 인생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행복하다고 볼 수 있는 정도를 이렇게 표현한다. “ 어느 정도 우호적인 상태에서 세운 합리적인 인생 계획을 성공적으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앞으로도 그 계획으로 잘돼나갈 것이라는 합리적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계획대로 잘 살아가고 있고 가장 중요한 열망들을 현실에서 성취하고 있고 앞으로도 행운이 따라줄 것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커다란 행복, 작은 행복이 따로 없다. 이것은 물체처럼 형체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형이하학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행복은 보관해둘 수 없다. 유효기간이 있기에 지금 즐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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