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는 고난의 학교 졸업생임을 명심한다
인재는 고난의 학교 졸업생이다.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반드시 대학에 다니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편의를 본 사람이 아니며, 위대한 기술자와 발명가가 반드시 기계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발명의 모체는 편의보다 곤궁이었으며,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고난이라는 학교였다.
- S. 스마일즈의 「자조론 」중에서 -
바람이 어떻게 부는 지 문제가 안 된다.
돛을 제대로 세웠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고통의 아픔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
고통을 극복할 의지가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고난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문제가 안 된다.
위기를 극복한 상처에서 꽃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잔뜩 쌓였던 눈도 봄기운이 되면 저절로 녹는다.
깊고 지루한 어둠도 새벽이 되면 온대간대 없이 사라진다.
고난은 인내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고난은 공부의 근성을 가르치고 끈기와 투지를 배우게 한다.
고난을 통해 강한 자는 겸손을 배우고 약한 사람은 부족함을 채운다.
고난의 학교는 이론이 아닌 경험을 가르친다.
이처럼 고난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고난을 겪지 않으면 오만해지거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고난이 있기에 성장하고 진보의 밑거름이 된다.
루터는 “고난이랴 말로 내 서재에 있는 가장 좋은 책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배불리 먹고 마시며 편하게 공부해서 인류의 스승이 된 것이 아니다. 고난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고난 너머의 인생의 보화를 찾은 것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로버트 다윈 (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은 19세기 이후 인류의 문명 및 자연과학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다윈의 아버지는 다윈을 법률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 다윈이 따라와 주지 않자 신학대학으로 전학시켜 목사를 시키려고 했다. 당시 법률가나 목사는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다윈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빈둥거리며 지냈고 오로지 자연에만 흥미를 쏟아 부었다.
다윈에게 기회가 왔다.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로 가서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생물들을 관찰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몇 달 동안 배를 타는 일도, 새로운 생물들을 만나는 일도 남들은 모두 다 귀찮아하며 기피했지만 다윈은 달랐다.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몇 달 동안의 거칠고 지루한 항해를 지겨워했지만 그는 새로운 세상에 더욱 열중했다. 고향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연구를 계속하여 끝내 진화론을 탄생시킨다.